네모 그리기는 너무 어려워!

아빠 유치원 2

by 마이드림

아빠와 놀이를 하다 보면 몸이 점점 피곤해지곤 했다.

처음에는 이유를 몰랐는데 같은 말을 하고 또 하고

여러 번을 반복해야 하는 기다림 때문이었던 것 같다.


대화라는 것이 상대방과의 상호작용이어야 하는데

치매인 아빠와는 내가 더 많은 말을 하면서

분위기를 이끌어야 하니까,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었다.


아빠는 단순한 그림을 보고도 혼자서는

그걸 따라 하질 못하셨다.

네모, 세모, 동그라미 같은 가장 기본이 되는 형태를 말이다.


예를 들어 빨간 동그라미, 파란 동그라미를

반복해서 그리는 패턴을 그린다고 하면

반복되는 색깔도 찾질 못하셨고,

동그라미의 모양도 계속 달라졌다.


아빠의 머릿속에서 이 색은 무슨 색이고

이 모양은 무슨 모양이다라고 저장되었던

것들이 모두 날아가 버린 듯 보였다.

학습되었던 것들이 모두 멈춤인 상태!


아빠랑 놀이를 하다 보니 많은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미 알게 된 상태였고

다른 방법은 없었다. 그냥 반복을 할 수밖에.


그래도 다행인 것은 하면 할수록 조금씩 늘었다.

처음엔 아무것도 이해를 못 해서 눈만

끔벅이는 상태였다가, 조금씩 나아지면서

눈빛이 달라지셨다.

나는 아빠의 상태를 눈빛을 통해 알 수 있었다.


동그라미가 좀 그려지기 시작하면서

세모와 네모도 그려보기로 했다.

동그라미를 연습해서 그릴 수 있게 됐으니

세모, 네모도 금방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내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한 거였다.


세모까지는 그래도 괜찮더니,

네모는 그려지질 않았다.

아빠에게는 아무리 그려도 따라 그리기 자체가

되질 않는 그림이 네모였다.


그런 상태로 시작한 네모 그리기였는데도

계속 연습하면 결국은 나아질 수 있음을

아빠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반복해서 그리기도 안 되고,

(뭘 그리는지를 그리다가 잊어버림)

똑같이 그리기도 안 되었지만

(처음 그림과 점점 모양이 바뀌어감)

반복 연습은 그것들이 다 가능해질 수 있음을

아빠가 보여주셨다.


물론 모든 그림이 다 되진 않았다.

연습에 의해 손이 익숙해진 그림만 잘 되고

새로운 그림을 보여드리면 다시 멈춤 상태!

그래도 완성되는 결과물이 나왔다는 것이

너무 희망적으로 느껴졌다.

느려도 반복하면 결국 되는구나라는 확인이

사람을 기운 나게 했다.


나에게 가장 기뻤던 순간은

드디어 아빠의 손이 네모 그리기를

해냈을 때였다.

그렇게도 안되던 네모 그리기가 되는 순간

다른 그림들도 처음보다 잘 그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참 잘했어요"라며 박수를 쳤더니

아빠도 나를 보며 따라서 박수를 치셨다.

내가 "따라 해 보세요"를 너무 많이 해서

박수도 따라 하셨나 보다.


그래요. 아빠!

우리 둘 다 수고했으니 박수를 치자고요.




분명 놀이를 하자고 시작한 것이었는데,

처음의 우리는 굉장히 많이 지친 얼굴이 되곤 했다.

생각처럼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계속 잠만 주무셨던 아빠가

갑자기 나랑 놀이들을 하려니까 하품이 멈추질 않으셨다.

아빠도 있는 힘을 다 쓰고 드러눕는 아기가 되고,

나도 온몸의 에너지가 빠져나간 듯 피로감이 몰려왔었다.

아빠의 모든 결과물들은 그렇게 많은 과정들이

생략되어 있다.


완성된 그림만 보면 단순하고 쉬운 네모인데

아빠의 네모는 잠만 자고 싶은 무거운 눈을 떠가며

아주 어렵게 완성한 네모였다.

그래서 나는 그 네모가 좋았다.


너무나 귀하고 예쁜 네모였다.


패턴.jpg
네모그리기어려워 (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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