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임을 인증하지 못하는 건 슬픈 일이다
아빠가 우리 집에 2주간 와 계시는 동안에
제일 마음이 아팠던 날은,
본인이 본인임을 스스로 인증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눈앞에서 봐야 했던 날이었다.
부모님께서 이사를 하시기 전에
통신사와 통화를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인터넷+집전화+핸드폰 등이 결합된 상품으로
아빠가 옛날에 가입을 하셨던 것이 있었는데,
이사하는 집으로 주소를 변경하는 과정에서
딸인 내가 대신 통화를 하게 되었다.
다른 건 미리 적어두었던 것으로 가능했는데
본인 확인 절차 과정에서 아빠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야 한다기에 전화를 바꾸게 됐다.
"본인이 맞으십니까?"라고 물으면
"네"라고 한마디만 하시면 되는데,
아빠는 그 말을 듣고 이해를 못 하셨다.
가만히 눈만 끔벅끔벅하셨다.
긴 말도 아니고 "네"라고만 하시면 되는데
그 대답을 못하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아빠가 편찮으셔서 그런 거니까
좀 기다려 달라고 상담사에게 양해를 구했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기다리는 중이고,
자꾸만 시간이 가고 있는데,
아빠는 대답도 못하시고 계속 멈춤 상태였다.
도저히 안 되겠어서 내가 옆에서
"아빠, 네라고 대답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다.
그럼 내 이야기를 듣고 대답을 하셨냐면
그것도 아니다.
아빠는 계속 대답을 안 하시고
전화기 너머에선 기다리고 있는 상태가 이어졌다.
이걸 어쩌나? 싶은 생각만 들었다.
그날은, 아빠가 자연스러운 전화통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눈으로 직업 본 날이었다.
2주간 매일 아빠와 같이 놀면서
아빠가 되게 좋아지셨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가족한정이었다는 걸
그날 알았다.
반복되는 놀이와 손동작에 한해서만
좋아지고 있었던 거였다.
상담사에게 "네"라고만 대답하면 되는데
그 짧은 한마디가 아빠에겐 간단한 말이 아니었다.
마음이 너무 이상했다.
아빠가 옛날에 직접 가입했었던 상품인데
이제는 직접 통화도 못하시게 됐고,
본인 확인인데 당사자가 대답을 못하니
그 순간의 정적이 너무나 길게만 느껴졌다.
내가 누군지 알고 말할 수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예전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치매로 완전히 달라진 아빠를 보며
너무 쓸쓸하고 슬픈 기분이 들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고 살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던 그 일은,
사실은 너무나 감사한 일이었던 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