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동화
활처럼 휘어진 숲을 따라 아래로 내려오면
나지막한 언덕이 하나 있어요.
그 언덕에는 특별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죠.
나는 가늘고 까만 나무.
내가 심어진 이 언덕은 계속 움직임이 있어요.
깜박... 깜박... 깜박...
이렇게 미세한 진동이 느껴질 때면
니는 불안해지곤 했어요.
이것이 인간들이 말하는 지진인가?
나는 언덕에 심어져 있기에 도망갈 수도 없는데
정말 지진이라면 어떻게 하나 무서웠어요.
왜 이렇게 자주 일정하게 움직이는지
불안해지곤 했죠.
그러다 알게 됐죠.
이 언덕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나는 언덕을 도와 어떤 일을 하는지를 말이에요.
우리는 다른 나무들과 달리
꽃도 피지 않고
열매도 열리지 않아요.
늘 가늘고 빼빼 마른 몸으로 흔들리는 진동을
온몸으로 느끼면서 살아야 하죠.
우리 검은 나무들은 생긴 건 화려하지 않지만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답니다.
움직이는 언덕에 심어져 그 언덕 아래 놓인
중요한 보물을 보호하고 있거든요.
그 보물은 어떻게 생겼냐고요?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하얀 접시 위에
말랑말랑 반짝이는 검은 구슬이 놓여 있는
그런 모양이랍니다.
검은 구슬은 세상의 모든 것을 지켜보는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데요.
너무 약하고 다치기 쉬워서
움직이는 언덕이 깜박깜박 리듬에 맞춰
구슬과 접시를 보호하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언덕에 심어진 우리 까만 나무들이
구슬 속으로 들어가려는 먼지들을 걸러주고 있어요.
만약 우리들이 없다면 움직이는 언덕이
민숭민숭하고 하나도 예쁘지 않을 거예요.
우리가 수두룩 빽빽하게 심어져 있고
살짝 휘어지기까지 하면
얼마나 언덕이 아름다워지는지 몰라요.
우리는 움직이는 언덕의 아름다움까지
담당하고 있는 소중한 존재랍니다.
언덕을 도와 검은 구슬을 지키는 일은
평소에는 큰 문제가 없지만
가끔 먼지 나라의 나쁜 세균들이 침입을 하면
안전 점검을 위해 까뒤집혀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럴 때 두려움에 파르르 떠는 언덕 때문에
내가 아주 심한 멀미가 날 때가 있는 데요.
그게 좀 힘들어요.
그렇지만 우리가 얼마나 천하무적인지 아세요?
태풍이 와서 거리에 심어진 나무들이
다 뽑혀서 날아가는 순간에도,
우리 움직이는 언덕 위 가녀린 나무들은
비바람에 뽑히진 않거든요.
비바람에는 안 뽑히지만
불은 조심해야 해요.
불에는 홀라당 태워먹을 수 있으니까요.
그리고 내가 심어진 이 언덕 위의 나무들은
함박눈이 펑펑 쏟아지는 날에는 좀 힘들어요.
눈이 내리면 할짝 휘어진 우리 나무들 위로
하얗게 눈이 쌓이거든요.
늘 까만 나무였던 우리들이 유일하게 하얗게
변신을 하는 순간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럴 때는 너무 차가우니까 재빨리 잘 털어주어야 해요.
아, 또 하나!
움직이는 언덕은 깜박깜박 리듬을 타는 일을
절대 잊어버리면 안 돼요.
그러면 하얀 접시 위의 수분이 완전히 말라버리거든요.
인간들 논밭에만 가뭄이 드는 게 아니랍니다.
하얀 접시와 까만 구슬에 가뭄이 들어
물기가 사라지면,
쫙쫙 갈라지는 듯한 따가운 고통을 느껴야 하거든요.
그러니 리듬을 잘 탈 수 있는 언덕이 되도록
내가 옆에서 잘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우리 까만 나무들이 가장 슬플 때는
비바람에도 뽑히지 않던 내 친구들이
가끔 너무나 어이없이 뽑혀 버릴 때가 있어요.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친구가 갑자기
두 개의 움직이는 언덕 사이로 볼록 솟은
(코) 미끄럼틀을 타고 떠나버리더군요.
아마 검은 구슬을 지키는 일보다
더 멋진 세상을 구경하러 떠난 것이겠죠?
그런데요.
남의 일인 줄만 알았던 일이
어느 날 갑자기 나에게도 찾아올 수 있더라고요.
오늘은 내게 그런 일이 생겼어요.
내가 너무나 어이없이 그냥 툭 뽑히더니
아래로 미끄러지기 시작했어요.
이러다간 바람에 날아가고 말겠어요.
"어... 어... 이건 아니야!
친구들과 헤어지기 싫어!"라고 외쳐보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죠.
나는 필사적으로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서
움직이는 언덕 아래의 검은 구슬을
소중히 받치고 있는 흰 접시에
나를 푹 꽂을 수 있었답니다.
그리고 결심했어요.
"좋아! 움직이는 언덕에서 살 수 없다면
나는 그 아래 흰 접시와 검은 구슬을
직접 지키면서 살겠어."라고 말이에요.
무사히 구슬 아래 흰 접시에 정착한 것을
자축하면서요.
그런데 그때부터였어요.
흰 접시가 신음을 하기 시작했어요.
"아... 아파... 누가 나를 찌르고 괴롭혀."
움직이는 언덕은 고통을 느끼는 흰 접시를 위해
더 부지런히 많이 움직이기 시작했어요.
언덕이 부지런히 깜박깜박 리듬을 타야
흰 접시를 충분히 적실 수 있는 물을
만들 수 있거든요.
이럴 때는 촉촉한 물을 가득 채워
빨리 고통을 씻어내야 한답니다.
드디어 물이 가득 차오르기 시작했죠.
그 와중에 나는 정말 혼란스러웠어요.
방금 전까지 나는 움직이는 언덕을 도와
깜박깜박 리듬을 타던 까만 나무였는데?
그런 내가 흰 접시와 검은 구슬을 바로 옆에서
직접 지키려고 했더니, 그건 안 되는 거래요.
지키고 싶은 내가 고통을 주고 있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죠.
이제 물은 너무 많이 차올라서
나는 숨을 쉬기가 힘들었어요.
"움직이는 언덕아! 이제 그만해. 멈춰!
이러다가 나는 여기서 떠내려갈 것 같아."
그때였어요.
움직이는 언덕에서도 한참 멀리 떨어진
저기 아래쪽에 위치한 손가락 마을에서
검지 기둥이 출동을 하더니
스치듯 가벼운 동작으로
물에 잠겨 캑캑거리는 나를 살짝 잡았어요.
너 때문에 눈 찔러서 따가워 죽는 줄 알았네."
응? 속눈썹?
나는 움직이는 언덕의 까만 나무였는데...?
내 이름이 속눈썹이라는 것을 듣자마자
후... 하고 불어오는 입김의 온기를 느끼면서
내 몸이 두둥실 날고 있네요.
전에 지니 가던 구름이 말해줬는데요.
세상에는 내가 있던 언덕 말고도
움직이는 언덕들이 많이 있대요.
어떤 움직이는 언덕 밑에는
파란 구슬이 숨겨진 곳도 있고,
갈색 구슬이 숨겨진 곳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여러분!
나는 이제 다른 언덕을 구경하러 떠나요.
혹시 더 멋진 언덕을 찾게 되면,
바람결에 소식을 전하도록 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