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참 이상했어요.
언니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커지는데
나만 도무지 자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내가 처음 눈을 떴을 때
언니들은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었어요.
"어쩜 이렇게 작고 귀여울까."
"너 이제부터 우리 막내 해라."
"우리가 너를 지켜줄게."
그렇게 저마다 나를 사랑스럽게 봐주었답니다.
태어나 보니 언니들이 많아서 든든했고요.
거기다 나를 너무 예쁘게 봐주는 언니들이 있어
얼마나 신났는지 몰라요.
언니들이 잘해주어서 좋을수록
왜 나만 언니들과 다르게 생겼나
어떤 날은 궁금하고,
어떤 날은 속상했는데요.
시간이 조금 흐르고 나니까
저절로 알겠더라고요.
나는 상추가 아니라는 것을요.
상추 언니들이 자라는 이곳에
내가 어쩌다가 함께 있게 됐는지 모르지만
언니들은 나를 막내라며 참 예뻐해 주었어요.
언니들이 물을 실컷 마시는 날이면
나는 언니들의 배려를 느낄 수 있었어요.
작고 여린 잎인 내가 물을 세게 맞아
어디 아프거나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언니들이 넓은 몸으로 가려주고
내가 물을 먹기 좋게 한 방울씩 똑똑
떨어뜨려 주기도 했답니다.
그렇게 나는 언니들에게 사랑받는
작은 잎이었어요.
왜 나는 저렇게 좋은 언니들처럼
상추가 아닌 걸까 속상했지만
나랑 제일 친했던 막내언니가 말하곤 했죠.
"상추가 아니면 어때?
너는 너 자체로 이미 예쁜 아이란다.
귀여운 너를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아지는데!"
"언니! 그럼 나 상추가 아니어도
언니들이랑 계속 같이 있을 수 있는 거야?"
"음... 그건... 어쩌면 힘들지도 몰라.
우리들은 언젠가는 이곳을 떠나야 하거든.
언젠가 우리들은 헤어지게 될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꼭 기억해 줘.
우리들이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를.
우리들이 헤어지게 될 날 같은 건
영원히 오지 않길 바랐어요.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요.
그날따라 평소와 달리 부산스러웠어요.
우리 언니들이 떠날 준비를 하는 날이래요.
"언니들! 어디로 가는 건데?
우리 이제 못 만나?"
"언젠가 말했었던 헤어지는 날이
바로 오늘인가 보다.
우리들은 이제 싱싱하게 잘 자랐으니
맛있는 쌈이나 샐러드가 되기 위해 떠나야 해."
사실 난 그동안 매일 기도했어요.
"우리 상추 언니들이 떠나는 날에
나도 같이 따라갈 수 있게
내 잎도 무럭무럭 자라서 상추 언니들처럼
넓고 커지게 해 주세요"라고 말이에요.
그런데, 아무리 열심히 물을 먹고
아무리 잎이 커지게 해달라고 기도를 해도
나는 언니들처럼 자라질 않았어요.
언니들처럼 멋진 상추가 되고 싶었지만
나는 여전히 너무 작지 뭐예요.
제일 친한 막내 언니가 늘 나한테
말하던 것이 있었어요.
"행복아!
우리가 다르게 생겼다는 건 각자가 할 일이
다르기 때문일 거야.
네가 늘 행복하라고 우리들이 너의 이름을
행복이라고 지어준 만큼, 혹시 헤어져도
언제나 행복하게 지내야 해. 알았지?"
"싫어. 언니들이 떠나고 나 혼자 남아서는
하나도 행복하지 않을 거 같아.
언니들! 나도 등에 태워서 데려가 주면 안 돼?"
억지를 부려 보았지만 사실 나도 알고 있었어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막상 이날이 오고 보니,
언니들이 하나씩 똑똑 떼어져 담길 때
분위기도 정신이 없었어요.
언니들의 이동 준비는 끝나가네요.
제일 많이 수다 떨었던 막내 언니가
똑 떼어지던 순간, 나는 안 되겠다 싶어
있는 힘을 다해 몸을 날려 언니의 등에 매달렸어요.
"언니! 나도 같이 갈래...."
하마터면 나는 바람에 날려 떨어질 뻔했어요.
우리 언니들이 매달린 나를 위해
위아래서 소중히 감싸주지 않았다면
나는 그대로 바닥에 곤두박질쳐서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말았을 거예요.
그렇게 나도 언니들과 이동을 하게 됐답니다.
우리가 배정된 곳은 대형마트 채소 코너였어요.
우리 상추 언니들 말고 옆자리에 있는
다른 채소들도 보았지만,
나처럼 생긴 채소는 볼 수가 없었어요.
사실 고향 밭을 떠나기 전에는
좀 무서웠거든요.
나만 상추 언니들과 모양이 다르다고
버려질까 봐 말이에요.
그래서 상추 언니들 사이에 꼭꼭 숨어서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어요.
다행히 언니들의 넓은 잎으로 나를 잘 숨겨주었죠.
고향땅 떠난 후에는 언니들 품에 붙어 있으니
더 좋기도 했어요.
하나도 외롭지 않았고 이 순간에도 언니들과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너무 좋았어요.
그렇게 마트에서 계속 같이 살고 싶었는데,
우린 또 이동을 하게 되었답니다.
언니들은 이 집이 아주 마음에 든다고 했어요.
오자마자 물이 가득 담긴 넓은 그릇에
푹 담겨 마음껏 몸을 적실 수 있었거든요.
비 맞듯이 위에서 맞던 물과는 달리
깊고 넓은 물에 푹 잠겨 목욕을 하는 경험은 새로웠어요.
나는 너무 작아서 깊은 물이 무서웠지만
언니들이 잘 잡아주고 나도 찰싹 붙어 있어서
물에 대한 공포도 잘 이겨냈죠.
근데요. 큰일이 생겼어요.
늘 언니들과 함께 있어서 무섭지도 않았고
외롭지도 않았었는데, 마지막으로
수도꼭지 아래서의 개인 헹굼 샤워가
기다리고 있지 뭐예요.
수도꼭지 아래에선 내 생을 통틀어
가장 큰 두려움을 느껴야만 했어요.
막내 언니 등에 매달려 있던 내가
흐르는 물에서 미끄러지지 않고
잘 버틸 수 있을지 공포가 밀려오더라고요.
만약 언니 등에서 떨어지기라도 하면
나는 저 아래 무시무시한 개수대 구멍으로
빨려 들어갈 거 같아 무서웠어요.
그때 막내 언니가 말했어요.
"행복아! 너무 걱정하지 마.
넌 지금까지 용감하게 우릴 따라왔잖니.
언니한테 있는 힘을 다해서 매달려 있어.
나도 있는 힘을 다해 너를 붙잡을게.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 밥상 위까지
꼭 함께 가보자."
수도꼭지 아래서의 마지막 헹굼 샤워는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어요.
고향 밭에서는 마시라고 주는 물이었는데
이건 강제 씻김을 당하는 물이다 보니
얼마나 미끄러운지 언니 등에 매달려 있기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래도 언니가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서
내가 미끄러지지 않게 도와주었고요.
결정적으로 이 집의 주인이 허술해서
나를 발견하지 못하더라고요.
어쩌면 나... 무사히 밥상 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 거 같네요.
내가 비록 언니들과는 다르게 생겼지만
나도 상추가 될 수 있다고 보여주고 싶었어요.
밥상 위의 그릇에 음식들이 담기는 동안
나는 긴장이 풀리면서 졸음이 오기시작했어요.
내가 태어난 이후 가장 많은 일을 겪은 오늘
작은 몸으로 이 모든 걸 한꺼번에 겪느라
좀 지쳤었거든요.
아주 살짝 눈이 감기면서 잠들었던 것 같은데
언니들이 들떠서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어머, 이 집에선 우리가 주인공이네?
고기 먹으려고 상추쌈을 먹는 게 아니잖아.
좋았어. 우리의 매력을 맘껏 뽐내보자고!"
언니들은 아주 신났어요.
그동안 갈고닦아온 상추의 싱싱미를 뽐내며
우리 상추의 맛을 제대로 알릴 수 있겠다며
모두들 신나서 재잘대더라고요.
언니들은 이날을 기다려왔다는 듯이
하나둘씩 입속 동굴로 들어갔어요.
"너무 싱싱하고 맛있다"라는 말을 들으며
아주 행복하게 말이에요.
언니들이 자기들의 역할을 잘 끝내며
즐겁게 떠나는 걸 보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다는 것은
정말 보람 있어 보였어요.
드디어 막내 언니가
입속 동굴에 들어갈 순서였어요.
나도 언니를 따라갈 준비가 끝난 상태였고요.
그런데요.
언니와 함께 입속 동굴로만 들어가면
되는 거였는데, 하필 마지막 순간에
나만 접시에 주르르 미끄러졌지 뭐예요.
접시 위에 덩그러니 나만 남았어요.
막내 언니만 입속 동굴로 떠났어요.
말도 안 돼!
이렇게 헤어질 줄은 몰랐어요.
이때까지 내가 어떻게 버텨왔는데...
나는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났어요.
그때였어요.
나는 그만 주인에게 들켜 버렸어요.
"이게 뭐지? 세잎클로버 닮은 모양인건가?
왜 아깐 이게 안 보였지?"
"저기요! 나도 상추가 될 수 있다고요.
나도 상추가 되고 싶어요. 제발!"
나는 그 짧은 순간에
이렇게 간절히 외치고 있었죠.
"정말 신기하네?
작은 잎이 물에서도 안 떨어지고
어떻게 끝까지 붙어 있을 수가 있었지?
넌 상추가 아닌데 왜 여기 있었어?
넌 정말 의지가 강한 애구나!"
물론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내가 상추가 아닌 것을 집주인 때문에
확실히 알게 됐네요.
상추가 되고 싶어 하는 나를 위해서
언니들이 말을 아끼며 지켜봐 주었단 걸,
다시 느낄 수 있었답니다.
아, 이제 나는 어쩌죠?
이렇게 열심히 언니들을 따라왔는데
나는 어떻게 해도 상추가 될 수 없는 건가요?
결국 나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건가요?
그때,
상추쌈도 아니면서 접시에 누워 있는 내게
주인이 그러는 거예요.
"너는 참 특별한 잎이로구나.
내가 상추쌈 먹다가 다른 잎을 발견한 건
처음 있는 일이거든.
그래서인가 너를 보니까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고 즐거운 거 있지. 호호호...
너 때문에 웃었더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하네.
넌 행복을 배달해 주는 고마운 잎인 것 같아."
와... 이럴 수가!
나더러 행복을 배달해 주는 잎이래요.
행복이라고 불러주는 언니들이 없어도
내 이름인 행복을 말해주는 이가 또 있네요.
주인은 내게 말했어요.
"너는 아주 씩씩하고 용감한 풀이라서
너를 오래오래 잘 간직해주고 싶어 졌어."라고.
주인은 나를 계속 접시 위에 둘 수가 없대요.
그렇다고 그냥 두면 시들어버린대요.
그래서 나를 예쁘게 잘 말려주겠다고 하더라고요.
나, 상추가 되고 싶었던 행복이는요.
상추가 아니면서도 접시까지 용감하게 진출한
아주 멋진 잎이랍니다.
상추가 되려고 열심히 도전해 봤기에
후회나 미련이 없어요.
나는 이런 내가 아주 마음에 들어요.
언니들이 사랑을 담아 불러주던 내 이름처럼
나는 정말로 행복해졌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