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최근에 계속 조마조마했어요.
뭔가 이 사람이 예전만큼 나를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해야 하나.
오래 보고 익숙해진 내 앞에서
긴장감이 너무 사라져 있었어요.
주인은 정말 믿고 있는 것 같았어요.
아무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고 말이에요.
그렇지만 예민한 몸을 가진 내 입장에서는
주인이 너무 자신을 믿고 있는 것이
오히려 불안했어요.
이러다 갑작스러운 일이 벌어지면 어쩌지?
아니면 이젠 내가 있든 없든 상관없어서
대충 막 쓰는 건가 싶기도 했죠.
하긴 이 사람 입장에서 보면
내가 지겨울 만도 했겠죠.
우리가 같이 산 세월이 너무 길긴 했어요.
나는 우리 주인이 손수 고른
신상도 아니었거든요.
우리 주인의 어머니 집에서 오래 일했어요.
그릇에 별로 관심도 없는 주인을 위해
어머니가 나를 이 집에 보냈었죠.
주인이 직접 나를 선택하진 않았지만
그래도 꽤 오랜 세월 동안 이 사람과 좋았어요.
세상에 예쁜 접시들이 얼마나 많은데,
한눈도 팔지 않고 나한테만 집중해 있었던
세월이 길었답니다.
우린 분명 좋았어요.
그런데 말이에요.
최근에 폭염 때문에 많이 지친 주인이
내가 접시라는 것을 잊은 건 아닌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어요.
주인이 귀찮다고 도마도 안 꺼내고
나를 자꾸 도마처럼 쓰지 뭐예요.
사과 정도야 그럴 수 있다고 이해했어도
반복되니까 너무 걱정됐어요.
나는 깨지기 쉬운 접시잖아요.
게다가 나는 오래된 접시라서
사실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다고요.
예전에 설거지할 때 부딪치는 바람에
자세히 보면 끝부분에 상처도 생겨 있었고요.
그래도 설마설마했거든요.
폭염 때문에 집안 공기가 너무 더워져서
필요 이상으로 내가 예민해진 걸지도 모른다고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고 있었답니다.
근데 설마라는 말은 역시 위험한 말이었어요.
오늘 드디어 내가 걱정하던 일이
일어나고야 말았거든요.
글쎄 주인이 사과도 아니고 양배추도 아니고,
그 단단한 당근을 내 위에서 썰지 뭐예요.
당근이 썰릴 때마다 내 몸에 충격이 가해지는데
그때 느낌이 빡 왔어요.
"아... 안돼! 이건 멈추어야 해요!"
나의 외침은 주인에게 닿지 못했고
내 몸은 단단한 당근과 날카로운 칼에게
열심히 맞서 보았지만 무리였어요.
나의 약해진 체력이 버티질 못하고
결국 빠직 소리와 함께 두 조각으로
떨어져 나가고야 말았어요.
"너무 아파요! 흑흑"
내 살점이 두 부분이나 떨어져 나간 고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처음에는 너무 아파서 눈물이 났고,
그다음에는 더 이상 나를 소중히 여겨주지 않고
이렇게 대충 위험에 노출시킨 주인에게
화가 났어요.
내가 깨질까 봐 조심하고
귀하게 여기던 당신은
어디로 가버렸어요?
나를 위해 조심해주지 않는 주인 때문에
내 몸이 더 이상 둥글지 않게 변해버린 것이
너무 속상했어요.
나는 둥글둥글한 내 모습이 좋았거든요.
언젠가는...
나도 접시로서의 일을 그만두어야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식으로 나를 망가지게 만들 거라고는
정말 생각도 못했었기에 화가 났어요.
다른 사람도 아닌 주인에 의해서 말이죠.
당신, 양심이 있으면 말해봐요.
이건 충분히 막을 수 있는 사고였잖아요!!!!!
너무 화가 나니까 내 몸이 좀 이상했어요.
빠직 빠직 두 조각으로 깨져버린 조각들이
날카로운 뿔로 변해버릴 것만 같았어요.
내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른 화가
깨진 두 조각에게
날카롭고 무서운 뿔로 변해서
주인을 혼내주라고 하지 뭐예요.
그러자 내 마음속의 착한 내가
그걸 반대했어요.
"아... 안 돼요! 그건 싫어요!"
정말 내게 무시무시한 뿔이 생겨서
주인을 다치게 만들면 어떡해요.
아무리 미워도 그건 싫단 말이에요.
깨진 두 조각이 무서운 뿔이 되는 걸 막아야 해요.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자꾸만 내 통제를 벗어나려는 두 조각들을
가까스로 멈추었어요.
그 순간, 그날이 생각났어요.
예전에 우리 주인이 설거지하다가
나를 바닥에 놓칠 뻔한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 재빨리 나를 잡아주었던 그 손의 온기를
나는 아직도 기억하거든요.
그때 만약 떨어졌다면 이미 난 깨져버리고 없었을 거예요.
지금에야 말이지만 그때 정말 고마웠어요.
그날 나를 꼭 잡아준 당신의 손만 떠올리면
나는 늘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거든요.
오늘은 주인 때문에 속상하고 슬펐지만
그렇다고 해서 고마웠고 행복했던 날들이
내게서 사라지진 않는걸요.
우리의 지난날을 떠올리는 순간
무서운 뿔로 변하려던 조각들이 진정되더라고요.
내가 비록 사라지더라도,
내가 뾰족뾰족한 뿔이 난 접시가 아니라
곡선이 아름다운 둥근접시였다는 것만은
절대 잊고 싶지 않아요.
당신도 기억해 줘요.
나는 아름다운 둥근접시였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