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내 마음의 밴드

어른을 위한 창작동화

by 마이드림

아이고 어지러워라.

빙그르르 돌고 돌고 또 돌고

쿨렁쿨렁 세찬 움직임도 느껴지고

출렁출렁거리는 물소리까지 들려요.


이상하다.

내가 여기에 있을 이유가 없는데?

무슨 일이 있었더라?

어찌 된 일인지 기억을 더듬어 봐야겠어요.




우리 주인이 말이에요.

마트에 빨리 다녀올 일이 생겼다더니

고사이에 손가락을 살짝 베었지 뭐예요.

바로 그런 순간을 위해 내가 대기 중이었죠.


맞아요.

나는 일회용 밴드랍니다.


"당신의 상처를 포옥 감싸 안아서

조금이라도 덜 쓰라리게 해 줄게요"라며

늘 준비된 상태였던 나는요.

나를 감싸고 있던 종이 포장을

찢고 나가기만 하면 됐어요.


그런데 주인은 많이 베지 않았다면서

종이 포장 그대로 나를

청바지 주머니에 쑥 넣더라고요.

일단 챙겨나간 후에 상처가 불편하면

그때 사용하겠다면서 말이에요.


나는 너무 당황했어요.

"어? 이렇게 좁은 주머니에 넣으면

내 몸이 구겨질 수도 있잖아요.

이러다 접착력 떨어져서 예쁘게 붙지

않을지도 모른단 말이에요.

제발 지갑에라도 넣어주세요."라고 외쳤지만

주인에겐 내 말이 들리질 않았죠.


정말 너무해요.

당장 손가락에 감지도 않을 거면서

차라리 나를 집에 두고 나가지 그랬어요.

청바지 주머니에 들어가 있으려니

어둡기도 하고 너무 답답했어요.


그래도 그때까진 희망이 있었답니다.

손가락에 감지 않는다고 해도

마트에서 돌아오면 나를 다시 상자에

넣어주기라도 할 테니, 밴드로서의 활약은

다음에 하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근데 주인은 내 예상과 완전히 다른 행동을

하더라고요. 집에 돌아와서도 주머니에서 나를

꺼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면서 그동안 밀린 빨래를 해야겠대요.


슬슬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도대체 언제 나를 주머니에서 꺼내주는 걸까?

설마 세탁기에 넣기 전까지는 꺼내주겠지?

보통 빨래를 하기 전에 주머니에 든 거 없는지

손을 넣어보기는 하니까요.


그런데 주인은 계속 나를 당황스럽게 했어요.

그녀의 손은 나를 찾지 않았어요.

아무래도 나의 존재를 잊은 것 같았어요.


내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내가 세탁기 안에 들어와 있더라고요.

청바지 주머니에 넣어진 그대로 말이에요.



내가 다른 데도 아니고 세탁기 안에서

빨래 체험을 하게 될 거라고 상상도 못 했어요.

빙그르르 돌고 돌며 쿨렁쿨렁 주물러지고

출렁출렁 대는 물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내 작은 몸에 이런 공포가 어딨겠어요.


내가 명색이 상처를 감싸주는 밴드인데

내 임무는 시작도 못 해본 것도 속상해요.

세탁기 안에서 어지럼증만 느끼다가

내 밴드 생을 마감하게 될 것만 같아서

더 충격을 받았답니다.


이렇게 물에 오래 잠겨 있으면

나를 보호하고 있던 종이 포장도 다 찢기고

내 몸에 붙어있던 거즈까지 오염되면서

밴드로서 유지해야 할 나의 청결함이

완전히 망가지고 말겠다는 두려움이

나를 막 짓눌러대는 것 같았어요.


빙글빙글 어지러운 빨래 체험을 마치고

한 방울의 물기까지 탈탈 털어내는

탈수의 체험까지 마쳤을 때 나는

너무 지쳐서 잠들어버렸던가 봐요.


잠깐 꿈을 꾸었어요.

따듯한 베란다의 햇살을 받으면서

내가 빨래건조대에 편히 누워

보송보송 마르고 있는 기분 좋은 꿈이었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요?

내가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훨씬 캄캄한 곳에 있는 것 같더라고요.

여기가 어디냐고 소리쳐서 듣게 된 말은

서랍 속이래요.


내가 잠들었던 사이에 빨래가 끝나고

마른빨래들이 서랍으로 이동을 했다는군요.

내가 청바지 주머니에 들어 있는 것만으로도

이미 어두웠는데, 다른 옷들 사이에 껴있으니

주변이 더 어두워졌지 뭐예요.


난 이제 어둠에는 적응해서 괜찮아요.

주인이 청바지를 다시 꺼내 입을 때까지

나도 주머니 속에서 잠이나 자죠 뭐.

처음에는 이렇게 속 편하게 생각했다니까요.


길어야 일주일만 자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더 길면 한 달쯤이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왜 생각지 못한 일이 자꾸만

일어나는 걸까요.

아무리 기다려도 그날 이후로 주인은

이 청바지를 꺼내주질 않았어요.

뭐야 이건. 청바지에 대한 애정도 식었나 봐요.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릅니다.

꽤 많은 시간이 흘러간 것 같아요.



오늘은 왜 눈이 부실까요?

늘 캄캄하기만 했는데 주변이 좀

밝아진 것 같아요.

눈을 떠보니 내가 그녀의 손가락에

잡혀 있지 뭐예요.


오...

드디어 내가 청바지 주머니를 벗어났네요.

그녀가 종이 포장도 벗긴 상태의 나였어요.

나의 상태를 확인한 그녀가 나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었어요.

그러더니 하는 말,


"정말 생각도 못 했어.

내가 너를 바지 주머니에 넣은 상태로

그냥 세탁기를 돌렸던가 보네?

어떻게 세탁기에 넣을 때도 꺼낼 때도

주머니에 손을 넣어볼 생각을 못 했을까.

작은 너에게 너무 미안해."


설마설마했는데 그녀가 나의 존재를

완전히 잊고 있었다는 말을 들려주다니

너무 속상해서 막 눈물이 나더라고요.

잠시 후, 주인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했어요.


"나는 말이야. 조금 구겨진 것을 빼면

거즈도 깨끗하게 잘 지켜낸 네가

너무 대단해 보였거든.

그런 단단함을 가진 너이기에

힘든 내 앞에 짠하고 나타난 것만 같았어.

내 마음에 밴드 한 장을 곱게 붙여주려고 말이야.

영원히 잊지 못할 내 마음의 밴드로

오래도록 기억할게."


이런! 내가 오래 잠들어있는 사이에

주인에게 힘든 일이 있었던가 보네요.

어째 마음이 짠해지면서

속상했던 마음이 스르르 풀리지 뭐예요.

내가 이렇게 마음이 약한 밴드더라고요.



나는 일회용 밴드!

나에겐 소중한 꿈이 있었답니다.

"당신의 마음에 호~해드릴게요"

이것이 나의 꿈이었어요.


비록 일회용으로 만들어진 나일지라도

보이는 상처에 발라주는

일회용으로 끝나버리는 생이 되지 않고

나만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기를 원했죠.


나... 드디어 꿈을 이룬 것 같아요.

잊지 못할 내 마음의 밴드로 기억하겠다니!

나는 그녀의 말을 들으면서 너무 좋아서

자꾸만 웃음이 나는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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