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유치원 10
치매 판정을 받으신 아빠는,
혼자서 글씨를 못 쓰셨다.
어떻게 써야 하는지 떠올리질 못하셔서
아빠 이름도 내가 알려드려야 했다.
내가 쓰는 과정을 직접 보여드리고
아빠는 그걸 따라 하시는 방법으로 연습했다.
쓰는 것이 자유롭게 안 된다면
읽는 것은 가능하실지가 궁금했다.
그날은 내가 <구름빵> 책을 가져갔다.
겉표지부터 하나씩 보여드리면서
그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했지만
아빠는 전혀 대답을 못하셨다.
아빠는 그동안 반복적인 학습에 의해
익숙해진 것(그리기, 색칠하기 등)은
점점 잘하시는 부분이 있었지만, 그 외의 것들은
보고 들어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떠올리질
못하실 때가 많았다.
동화책을 펼쳐놓은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책에 나온 그림을 보면서
"이 그림이 뭐예요?" 같은 것을 물었다고 치면
아예 반응이 없으셨다.
그것을 표현할 말들이 머릿속에서 조합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구름빵> 책의 한 부분을 펼쳤다.
'작은 구름은 너무너무 가벼웠어요.'
라는 문장이 나왔다.
"아빠, 여기 좀 읽어주세요."라고 했더니,
아빠는 눈만 끔벅끔벅하시면서 반응이 없으셨다.
역시 예상대로 읽기가 되지 않았다.
"아빠, 제가 읽을 테니까 잘 들어보세요."
내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빠는 아무런 반응이 없으셨다.
뭔가 반응을 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알아들어야
가능한 것인데, 아빠의 뇌는 그런 것들이
되질 않는 상태니 당연했다.
그림 그리기도, 칠교로 만들기도
처음엔 다 안되었는데 연습에 의해
하실 수 있게 된 것처럼,
글자 읽기도 연습해서 좀 익숙해지면
하실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기들이 말을 못 하다가 말문이 터지면
말이 느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느끼기에 아빠는
"읽어주세요"라는 말을 들어도 그것이 뭔지
머릿속에서 구체화를 못 시키다가,
내가 읽는 모습을 보고 소리를 들으신 후에
저것이 바로 읽는다는 것이구나라고
느끼신 것 같았다.
반복해서 몇 번을 더 읽어드린 후에
다시 아빠께 책을 읽어달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책을 가만히 보고만 계셨다.
나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빠는 한참이나 뜸을 들이시더니
드디어 머릿속의 로딩이 끝났는지
천천히 읽기 시작하셨다.
와, 아빠는 읽기가 가능하셨다.
더 많은 연습이 필요할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빨리 반응을 보이신 거다.
나는 또 영재 아들 발견이라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 소중한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께 한 번만 더 읽어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치매 환자가 되신 후의 아빠를 보면서,
오늘은 되지만 내일은 안 될 수도 있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 소중해졌다.
그래서 이 순간을 간직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핸드폰의 음성녹음 버튼을 눌렀다.
분명 방금 전에 읽기를 하셨고,
내가 분명히 들었었는데,
다시 읽어달라고 말씀드리고
녹음 버튼을 누르자마자 정적이 흘렀다.
다시 로딩 시간이 필요하신 것 같았다.
또 기다렸다.
아빠는 정적을 깨고 천천히 읽기 시작하셨다.
빠르고 매끄럽게 읽지는 못하셨지만
같은 말을 몇 번씩이나 반복도 하셨지만
그래도 천천히 읽어내셨다.
녹음을 끄는 것과 동시에 내가 박수를 쳤는데,
내 박수소리에 아빠가 환하게 웃으셨다.
눈만 끔벅끔벅하시던 표정에서,
내가 겨우 이 정도도 못 읽을 줄 아느냐?
막 이런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셨다.
아빠는 뭔가 하나를 해내신 순간이면,
예전 아빠의 표정이 한 번씩 돌아오곤 한다.
그렇게 잠깐이라도 아빠가 성취하는 기쁨을
느끼는 순간이면, 아빠는 미소가 번지거나
하하하 크게 소리 내어 웃으시기도 한다.
사람에겐 스스로 무엇을 해낼 수 있다는 자각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치매 환자인 아빠를 보면서도
많이 느끼곤 한다.
무엇을 해냈을 때의 눈이 살아난 표정과
멍하게 눈만 끔벅이는 순간일 때의 표정은
얼굴의 생기부터가 정말 다르다.
스위치가 켜진 것과 꺼진 것의 차이만큼이나 말이다.
아빠의 시간들이 눈만 끔벅거리는 것이 아니라,
아주 조금이라도 더 많이 웃을 수 있는 시간이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