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유치원 11
한 달도 넘게 아빠와 놀이를 하지 못했다.
내가 가는 날마다 아빠의 컨디션이 좋지 않으셔서
놀이는 시작도 못하고 그냥 가만히 손잡고 있거나
아기 얼굴 만지듯이 얼굴 쓰다듬어 드리거나
헤이질 때 안아드리는 것만 하고 헤어져야 했다.
정말 오랜만에 아빠의 컨디션이
좀 괜찮아지셨다.
한동안은 내가 뭘 꺼내든지 말든지
아예 관심이 없으셨는데,
그날은 가방에서 재료를 꺼내는 순간 느낌이 왔다.
아, 오늘이라면 놀이를 할 수 있겠구나!
그날 내가 챙겨 들고 갔었던 것은
무엇이든 싸게 파는 매장에서 샀었던
리폼 패브릭 스티커였다.
직사각형의 노트 크기정도 되는 스티커인데
물건을 리폼할 때 붙여서 활용하면
상당히 좋을 것 같은 스티커였다.
난 일일이 풀칠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자
이 스티커로 놀이를 하려고 생각했었다.
내가 스티커를 꺼내 자르려고 하니까
아빠 눈에도 꽤 예뻐 보였는지,
"아까워. 자르지 마."라고 하셨다.
그러면서 스티커를 들고 가서 안 주시지 뭔가.
"아빠, 그러면 반만 잘라서 쓸게요."라고
말씀드리고서야, 겨우 반쪽을 자를 수 있게 해 주셨다.
나는 패브릭 스티커 뒷장에다가
하트, 나비 모양 같은 단순한 모양을 그려 잘랐다.
아빠가 원하시는 모양으로 그려보시라고 해도
그리질 못하셨기에 내가 그릴 수밖에 없었다.
그려놓은 밑그림을 아빠가 잘라보시도록 했는데
아빠의 손으로는 자르기가 되질 않았다.
결국 자르기도 내가 했다.
그날 모양을 자른 패브릭 스티커와
내가 미리 잘라간 검은색 색종이 모양을 합쳐서
우리는 그림을 완성해 보기로 했다.
스티거 뒷부분의 종이라도 직접 뜯어보시라고
말씀드려 봤는데, 손이 둔해지신 아빠는
스티커 뒷장도 벗겨내질 못하셨다.
역시 섬세한 동작은 힘드신 것을 볼 수 있었다.
결국 뒷면의 종이도 내가 뜯었다.
자르기도 뜯기도 모두 내가 했지만,
이날의 아빠는 스티커를 종이에 붙이는
동작에 있어서만큼은 집중력 최고였다.
오랜만에 학구열이 넘치는 아빠로 컴백하셔서 반가웠다.
치매인 아빠가 먼저 시도하시는 것은 없고,
항상 내가 주도해야 하는 놀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빠가 집중해 주시는 날이면
놀이를 할 컨디션이 되시는구나 싶어서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너무 오랜만의 놀이라 더 그랬다.
그날은 아빠가 정말 나를 잘 따라주셨다.
"우리 풍선처럼 만들어요."
"우리 나무처럼 만들어요."
"우리 고양이 옷 입혀줄까요?" 같은
대부분의 말을 내가 해야만 하는 놀이였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어쩌다가 얻어걸려서
뭔가 근사해지는 그림들이 나올 때가 있었다.
내가 제일 마음에 들었던 그림은
바로 고양이 그림이었다.
패브릭 스티커를 잘라서 만든 고양이 얼굴과
잘라놓은 검은색 색종이 모양을 합쳐
종이에다 붙여보는 과정에서,
아빠가 색종이를 붙인 모양의 방향 때문에
마치 고양이가 원피스를 입은 것만 같은
모양이 완성되었다.
내가 패브릭 스티커를 더 잘라드리면서
고양이 팔도 붙여주세요라고 했더니,
아빠가 정말 팔 위치에다 스티커를 붙여 놓으셨고
꼬리도 붙이고 나니까,
생각보다 고양이가 너무 귀여워졌다.
"옷에다 단추도 좀 붙여주세요"라고 했더니
나와 함께 점 스티커를 붙여 봤던 경험으로
알록달록 예쁘게 줄 맞춰서 붙여놓으셨다.
그걸 보면서 무슨 인형놀이 하는 것처럼
내가 더 즐거워졌다.
우리는 집도 꾸며보기로 했다.
내가 삼각형 지붕과 굴뚝까지 잘라드렸고,
집의 아랫부분은 아빠가 직접 그리시도록
하고 싶었다.
창문이랑 문을 내가 그려서 보여드리고
아빠가 나를 따라서 그리는 과정에서
창문도 너무 작고, 문도 너무 작게 그려놓으신 거다.
그걸 보는데 그림이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밑그림을 그려놓고 보니 너무 밋밋해서
여기도 패브릭 스티커를 붙여보기로 했다.
아빠는 벽이랑 창문이랑 문의 테두리를 붙이는
작업을 맡으셨는데, 스티커 붙이는 것을
아주 진지하게 집중하면서 하셨다.
패브릭 스티커다 보니까 뒷면의 종이를 뜯으면
모양이 자꾸만 오그라들었는데,
아빠도 어느 순간 그것을 느끼셨는지
손가락으로 꾹 눌러가면서 하시는 모습도
너무 진지해서, 나는 그 손가락을 찰칵
찍어보기도 했다.
점 스티커로 꽃도 만들어 붙이고,
패브릭 스티커 자체에 꽃무늬가 가득해서
그것을 잘라서 붙이기도 했다.
스티커 도안에 나와 있는 정체 모를 동물도
참고해서 붙여보기도 했다.
가로 방향, 세로 방향으로 붙여가며
울타리도 만들었다.
그렇게 아빠와 나는 A4용지 두 장에다
그림을 채워 넣었다.
이번에 했었던 그림 꾸미기는
패브릭 스티커 자체에 꽃무늬가 가득해서
그것을 잘라 붙이는 것만으로도
전체적인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바람에
제법 근사하게 보였다.
나는 열심히 자르고, 아빠는 열심히 붙이고
같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서인가?
이게 뭐 대단한 작품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 눈에는 너무 예뻐 보인 그림이었다.
대단한 것을 만들어서가 아니라,
오랜만에 거의 2시간 넘게 집중해 있는
아빠의 모습을 보는 것이 참 좋았다.
너무나 소중한 우리의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