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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별이다

구상성단 M5

by 고스란

내가 사는 이 동네를 더 사랑하게 될 것 같다.




일요일엔 참 바빴다.

아침엔 아들과 둘이 한 시간 가까이 차를 타고 나가 친정에서 식사를 하고 골 미용실에 갔다. 다 머리를 한 후 축구약속 장소로 아들을 데려다 주고 집으로 왔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나만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집에 있으면 퍼질 것만 같아 자주 가던 카페에 갔다.


책 읽고 글을 쓰고 집에 들어가니 강아지에게 미안했다.

그 카페는 일정 없는 일요일 낮에 강아지와 산책 후 함께 가던 곳이다. 그렇다고 애견동반카페는 아니다.

사람들이 바람 쐬러 조금은 멀리서 차 타고 오는 장소다 보니 반려견을 동반하여 오는 손님들이 많아 애견동반이 가능해진 카페다.

강아지를 좋아하는 사람만 오는 곳이 아니기에 언제나 조심스럽다. 가끔 다른 강아지를 보고 짖어 원하는 만큼 못 있는 경우도 있다. 바로 지난 일요일에 그랬다.


날씨가 좋아지다 보니 근래엔 카페에 손님이 더 많아졌다.

단골카페에 연속으로 민폐를 끼치기 싫어 혼자 다녀온 것이다. 남 눈치 안 보면서 맘 편히 책 읽고 정리하고 글도 쓰니 좋았다,



.

강아지도 산책을 기대하고 있을 것이 뻔하여 늦은 저녁에 나섰다. 이미 5,000보를 훌쩍 넘긴 상황이었지만 다른 때보다 먼 곳까지 산책을 했다.

간만에 오래 걸었다고 주저앉는 강아지를 안고 집으로 향하던 중이었다.


익숙한 장소에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한 남자분이 누가 봐도 비싸 보이는 천체망원경을 세워놓고 관찰을 하고 계셨다.

내가 늘 보던 갯벌 쪽 하늘을 바라보고 계셨다.

아주 맑은 밤하늘은 아니었지만 하늘을 올려다보니 별이 몇 개 반짝거렸다. 오늘 특별한 게 있는 날인가 궁금했다.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무얼 보세요?"

"이거 관찰하고 있어요."

손에 들고 계시던 휴대폰 화면을 보여주셨다.

디지털망원경이라 관측한 것이 휴대폰으로 전송이 되고 있었던 것이다.

"눈으로 직접 볼 수는 없나 봐요."

"볼 수 있지요. 여기로 보면 돼요."

"제가 봐도 될까요?"

"망원경만 건드리지 않고 보시면 괜찮아요."

강아지를 내려놓으면 혹시라도 받침대를 건드릴까 안고 숨죽여 접안렌즈로 보았다.

"우와~ 이게 뭐예요?"

"성단이에요."

진짜 놀라고 궁금해하는 나를 보니 조금 재미있으셨나 보다.

폰을 다시 보여주시며 설명해 주셨다.

"이건 M5라는 구상성단이에요. 성단은 고등학교 때 배워서 아시죠?"

"네."

다시 렌즈로 들여다봤다. 폰으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살짝 달랐지만 검푸른 바탕에 다양한 색으로 반짝거리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다.

"지금 빛의 양이 적어서 망원경을 여기에 놓고 계속 노출시키며 중첩하는 중이에요."

내가 본 장면을 사진 찍고 싶다고 하자 렌즈엔 갖다 대도 잘 안 나온다고 하시더니 차라리 폰을 찍으라고 하셨다.

두 사람의 손이 미세하게 떨리니 초점을 맞출 수가 없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


"실례가 안 된다면 뭐 하시는 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아, 관련 일을 하다 퇴직하고 별자리나 환경교육하고 있어요."

"여기 자주 오시나요?"

"이 근처에 사는데 조만간 가족단위로 별관찰하려고 적당한 장소 찾으러 나왔어요. 남쪽부터 북쪽까지 별이 지나가는 길이 다 열려 있어 이 장소 괜찮네요."





결국 명함을 요청해 받아 들고 헤어졌다.

별관찰 모집하실 때 문자를 달라고 번호도 넘겼다.

이렇게 가볍게 개인정보를 넘기는 사람이었나.

다만 이름대신 안고 있던 강아지 엄마라고 하자 웃으시면서 별이라고 적어놓으신단다.


올해 안에 집 근처에서 천제망원경으로 별을 볼 수 있을 거 같다. 아직도 렌즈 안에 펼쳐진 성단이 눈에 선하다.

이제부턴 늘 지나가던 곳 하늘에는 남들이 못 보는 별이 내 눈에만 보일 것이다.





단 한 번이 무서운 거다.

처음 본 M5에 친밀감이 느껴진다.





이러다 인연론자나 운명론자가 되겠다.


이 별들을 보려고

낮에 카페에 혼자 갔나 보다.


이 별들을 만나려고

다른 때보다 긴 산책을 했나 보다.


아직도 눈앞에 선하다.

선하디 선한 아름다운 것들

정말 사랑스럽다.


세상에 사랑할 것들이 계속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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