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시를 넘겨 첫끼가 시작되었다.
다른 집과는 좀 다른 풍경일 듯하다.
주방에선 아들이 식사를 준비하고 방에선 내가 책을 읽고 있다.
30분 후에 내려오라고, 그전까지는 비밀이니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
드디어 호출이다.
"다 되었으니 내려오세요."
내려가는데 치즈 풍미 가능한 냄새가 코로 훅 들어온다.
"이건 뭐야?"
"치즈크림파스타요."
그라노파다노와 체다치즈, 우유로 만든 소스란다.
그다음 말에 다시 아들 얼굴을 쳐다보게 된다.
"면이 다 떨어져서 만들었어요."
"언제?"
"아까 밀가루에 달걀노른자로 반죽 만들어서 숙성시켰죠."
그래서 오래 걸렸단다
내 걸 먼저 차려주고 이제부터 자기 것을 만들 거란다.
내가 먹을 면은 칼로 자른 후 일일이 굴려 둥글게 만드느라 오래 걸려 2인분까지 만들면 생면이 굳어 맛이 없을까 봐 따로 했다고 한다.
사 먹는 면보다 좀 굵고 생면이라 그런지 색다른 식감이다.
치즈맛이 진하고 부드럽다.
치즈가 듬뿍 들어갔지만 흑후추를 넣어 느끼하지 않다.
웬 호사인가 싶다.
아들이 먹을 파스타를 시작하길래 구경한다.
아까 들었던 노란 반죽을 꺼내 밀대로 밀어 썬다.
이 장면이 우리 집에서 펼쳐질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이번엔 귀찮아서 면을 굴리지 않을 거란다.
내가 먹을 것에 더 정성을 들였다니 고마웠다.
소스를 만들기 시작한다.
팬에 우유를 넣고 난 이름도 기억 못 하는 그라노파다노 치즈를 갈아 넣는다. 체다 치즈는 두 장을 대충 찢어 놓고는 잘 섞으며 끓인다. 걸쭉해질 무렵 직접 갈아놓은 흑후추를 넣고 간도 한다. 이번엔 색다르게 크림치즈도 약간 넣어본단다.
보아하니 레시피를 보면서 하는 게 아니다.
면은 처음이라 찾아봤고 소스는 생각해서 한단다.
요리라고 할 것도 없이 끼니 때우는 음식만 하는 나로선 그저 신기할 뿐이다.
귀찮은 건 하기 싫은 것이 본능일 텐데.
주말에 일어나자마자 반죽해서 직접 면을 만들고 소스까지 해서 차려주다니.
아들은 요리가 하고 싶고 재미있단다.
내가 낳았지만 나와는 다른 사람이란 걸 절실하게 느끼는 순간이다.
넌 내가 아니다.
내가 잘하는 걸 못한다고 서운할 건 없다.
내가 못하는 걸 잘하고 있으니 충분하다.
같은 길을 함께 가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다른 길을 가기에 구경하는 재미도 있다.
하고 싶은 건 다르지만
서로 응원할 수 있다면
너와 나는 오래도록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