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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스란 Jan 30. 2024

나만 방학하면 뭐 하나

방학은 같이 해야 제맛이지

나의 방학식은 1월 5일로 작년에 비하면 일주일 앞당겨졌다. 2024년 개학이 3월 4일이니 거의 8주간의 긴 방학이다. 그러나 아들의 방학이자 졸업일은 1월 12일이다. 일주일 후다.

이 차이가 나의 방학 일주일 잡아먹을 줄 몰랐다.




왜 학교마다 이렇게 다르게 운영할까?

초, 중, 고등학교 법정수업일(최소 기준)은 190일이고 대부분 34주간 190~193일 정도 운영한다.

새 학기 첫날(3월 2일 이후 첫 평일)과 수업일수가 정해졌으니 이제부터는 조삼모사(朝三暮四)로 재량휴업일이나 학사일정 운영방침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가끔 학부모님들이 방학이나 개학일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시기도 하는데 한해 교육과정이 마무리될 때 학부모님들께 설문으로 의견을 모으게 되어 있다. 국가 상황에 따라 대체공휴일이나 자연재해 등으로 바뀔 수 있지만 기본적으론 그렇다. 보기를 정하는 것까지 학교 의견이 들어갈 뿐 결국 재량휴업일수와 시기를 정하는 것은 학부모님들이다. 아닌 학교도 있을 수 있다.


생각해 보니 아들이 나보다 재량휴업일로 몇 번 더 쉬었고 2학기 개학도 늦었다.

엄마는 출근하고 아들만 쉬니 아들에게 좋았던 건데, 이번에도 아들만 좋다. 억울까지는 아니지만 좀 그렇다.




아들은 집에서 꽤 먼 곳으로 학교를 다닌다.

중2가 되던 해 4월 지금의 집으로 이사 왔는데 전학하기를 거부해서 그냥 계속 다니게 된 것이다. 버스로 가려면 50분 걸리는데 배차 간격이 35분으로 혼자 등교한 적은 없다.

다행히 아들의 학교와 학교까지는 10분 거리로 아침에 아들을 학교 근처에 내려주고 출근하면 되었다.

 "친구들이 그렇게 멀리 살면서 지각 한 번도 안 해서 신기하대요."

당연하다. 아들이 지각한다는 말은 내가 지각한다는 것인데 천재지변이나 돌발상황이 아니고서야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눈이 엄청나게 내린 날, 출근 도중 바퀴에 펑크가 난 날이 고비였다. 혹시 늦을까 봐 미리 담임선생님께 연락을 드렸으나 여유 있게 출발한 덕에 등교 시간 안에 도착했다. 모두 아들의 중간, 기말고사날이었기에 진땀 나는 이틀은 잊으래야 잊을 수가 없다.




방학이 되고 맞이하는 첫 월요일, 이전과 다름없이 일어나 준비를 마쳤다.

어차피 아침 일찍 운전하여 나가기에 학교에 갔다. 방학이라지만 행정업무상 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었다.

방학 후 첫 주엔 다양한 캠프가 열리고 방과후학교도 오전 시간대로 옮겨져 운영하기에 학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아이들이 없는 교실은 조용했고 수업이 없으니 오후까지 집중해서 일을 할 수 있었기에 좋았다.

다만 계획과 달리 일의 진행은 지지부진했다. 방학기간이라 여러 교직원의 협조 및 결재를 받는 것이 하루 안에 이뤄질 수 없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더 큰 문제는 곧 졸업을 앞둔 아들이 하교 후에 친구들과 놀고 가고 싶다는 것이었다. 어차피 기다린 김에 조금 더 기다리자고 한 게 평소 퇴근 시간보다 많이 늦어졌다. 두고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으나 1월이라 해는 왜 이렇게 빨리 지는지. 춥고 어두운데 버스 타고 혼자 올 걸 생각하니 안쓰러워 기다림을 반복했다. 방학을 한 것이 맞는지 의심이 되는 사흘을 보냈다.




나흘 째가 돼서야 몇 달 만에 보는 친구를 나기로 했다. 졸업식을 앞두고 뿌리염색을 해야 했기에 늦은 오후로 약속을 잡았다.

아들을 등교시키느라 이른 시간에 나왔으나 미용실 영업시간까지 시간이 떴다. 하는 수 없이 책이라도 읽을 량으로 또다시 학교에 갔다.

친구를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즐거웠고 오봉집 점심특선으로 직화낙지볶음을 먹을 수 있어 더 만족스러웠다.

학교에 있다 보니 점심으로 항상 급식을 먹는다. 남이 해주는 밥, 먹어야 하는지 고민할 필요가 없는 점심.

먹는 것도 좋아하고 뭐든 잘 먹으니 감사한 마음으로 급식을 먹었는데 방학이라 급식이 없다.

도시락을 싸갈 정도로 부지런하진 않고 근무하시는 분들 사이에 껴서 점심을 먹을 사교성도 없다. 나가서 시간을 보내느니 그냥 교실에 앉아 집에서 가져온 간식과 라떼 한 잔으로 때웠다. 점심을 제대로 못 먹어서 아들을 기다리는 시간까지 더 지루했는지 모른다.





드디어 12일, 아들의 졸업날이 되었다.

졸업식은 10시에 시작하니 학부모는 9시 30분부터 자리 잡으면 된다고 하였다. 어쨌건 난 아들 등교를 시켜야 해서 일찍 나서야 하는 상황이었다. 눈치와 철이 없는 아들은 마지막 날이라 친구들과 아침 8시에 만나서 놀기로 약속을 했단다.

아무리 생각해도 데려다주고 와서 다시 가는 것은 비효율적이었다. 졸업식 복장으로 준비하느라 아침부터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겨우 시간을 맞춰 데려다 주니 8시. 방학한 지 5일째 되던 날 아침, 갈 곳을 잃었다.

근처 카페에 갈까 하다 예약해 둔 꽃다발을 찾아들고 다시 만만한 학교로 향했다.

히터를 켜두었던 차 안에 환기 없이 꽃을 두면 혹시 시들해질까 교실에 두기로 했다.

하필 교장선생님을 만났다. 나름 신경 써서 입고 꽃다발까지 들고 학교에 오니 무슨 일인가 싶어 물어보신다.

"오늘 아들 졸업이에요. 졸업식까지 시간이 떠서 교실에 있다 가려고요."

다행히 내가 멀리서 출근하고 아들 등하교를 함께 하는 상황을 아시는 터라 축하를 해주셨다.

남편은 시간 맞춰 학교로 와서 차 한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

아침 한 시간 남짓, 딱히 일이 손에 잡히는 것도 아니기에 커피 한 잔을 들고 들어가 책장을 정리했다.

뭐 좀 했나 싶었는데 전화 울렸고 그렇게 학교를 떠나 졸업식장으로 향했다.




학교는 나의 두 번째 집이다. 자는 시간을 제외한다면 집보다 더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내 방과 같은 교실, 나의 손때가 묻은 곳이라 익숙하고 안락하기까지 하다.

하지만 방학 첫 주에 이렇게 오래 머물 계획은 아니었다.

다음 주엔 절대 학교에 가지 않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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