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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스란 Feb 05. 2024

엄마는 왜 맨날 나가요?

방학이니까 나가지

준비~ 출발!

아이의 졸업과 함께 나의 진짜 방학이 시작되었다.


졸업을 마친 우린 점심으로 코다리찜을 먹고 아들과 남편은 시댁으로 향했다.

졸업식 점심으로 중식, 패밀리 레스토랑이 국룰 아닌가? 코다리찜이 최애음식은 아니지만 그럴듯한 식당엔 사람이 너무 많을 것이므로 우린 취향 껏 식당을 골랐다. 그렇다, 우린 모두 내향인으로 사람이 너무 많이 몰리는 곳에 가면 기가 빨린다. 낯선 사람으로 가득 찼던 졸업식장에서 두어 시간 있던 걸로 충분했다.


졸업식 이후 두 남자만 시댁으로 가게 된 건 아들이 원했기 때문이었다. 외동의 외동인 아들은 유일한 손주다. 시부모님은 코로나로 초등학교 졸업식도 못 보셨기에 이번 졸업식은 직접 보고 싶어 하셨다. 별의별 것이 부끄러운 아들이 쉽게 동의하지 않았다. 시부모님이 오시면 자기가 졸업식을 안 가겠다는 선전포고를 해버렸다. 어쩔 수 없이 당일 축하해주고 싶어 하시는 마음을 헤아려 졸업식 직후 본인이 가기로 한 것이다.

외며느리인 나는 왜 안 따라나섰나? 다음 날 친구들과 만나기로 두 달 전에 선약을 했다. 2017년부터 매일 카톡방에서 만나는 가족과 다름없는 친구들이다. 몇 달 만에 경남에 사는 친구까지 볼 수 있는 날이다. 며느리로서 19년 차니 그 정도 짬밥은 된다.




토요일 약속만 생각하고 있던 에 대학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교사라 학기 중에 바쁜 것이 뻔하기에 방학이 되면 이제 슬슬 보자는 연락이 온다. 자유부인이 된 걸 알자마자 1박 2일로 보자는 제안이 왔다. 괜찮은 생각이었다. 한 번 보면 5~6시간 긴 이야기를 풀어야 하는데 다른 지역에 살기에 오가는 시간만 몇 시간이다 보니 당일치기론 어림없기 때문이다. 토요일 만남도 10시 넘어서야 끝났다. 이틀 내내 순수히 나로서 보냈다.


다시 딸, 엄마, 교사로 돌아왔다.

일요일엔 친정에 들러 얼마 전 허리를 다치신 엄마의 안부를 여쭙고 딸로서 하루를 보냈다.

월요일엔 다른 학교보다 일찍 예비소집을 하는 아들 고등학교에 데려다주다. 3시간 동안 불편한 강당 의자에 앉아 강연 및 설명을 들었다며 투덜거린다. 맛있는 것을 사 먹이며 예비고 1로 동기부여를 하려고 했으나 아들의 말을 듣고 말기로 했다.

예비소집 후 소감이 "여러 가지로 무서웠어요."였다.

감정은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에 '뭐가 무서워?', '괜찮아'라고 할 수 없었다.

아들이 그렇게 느꼈으면 그런 거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고 호러물을 못 보며 익스트림 놀이기구를 못 타는 나로선 무섭다는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후 사흘은 정신 없이 보냈다.

목요일에 스튜디오 영상 촬영을 하게 되었다.

이것이 무슨 일이다냐?


약간의 호기심 + 배움에 대한 열망 + 받기만 하면 불편함 + 거절 못함 = 새로운 경험


내향인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볼 때 가끔 진취적이고 실행력 있어 보이는 이면의 공식이다.

이번에도 이 공식이 통했다.

마음공부를 꾸준히 하기 시작한 지 3년 차에 들어섰다. 리더로 열심히 해주시던 분이 작년에 출간을 하셨다.

그게 확장되어 연수 영상까지 촬영하게 되었는데 출연자가 몇 명 필요했다.

관객처럼 뒤통수만 보이고 호응만 하면 되는 줄 알고 흔쾌히 하겠다고 했으나 알고 보니 얼굴도 나오고 말도 제법 해야 하는 역할이었다. 네 명이 출연하는데 평소 강의를 하셨던 두 분 외 다른 두 명은 뭐라도 기여하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것이 이렇게 된 것이다. 워낙 소수라 안 한다고 할 수도 없었다.

상상도 해보지 못한, 적어도 몇 년간 박제될 연수 영상에 참여하게 되었다.


매일 아이들 앞에 서고 총회나 공개수업으로 가끔 학부모 앞에 서지만 영상에 남는 것은 또 다른 것이었다.

사전 협의 후 리딩도 하고 시나리오를 읽고 또 읽으며 내 말로 바꿔 전날 밤까지 외우기를 반복했다.

미용실도 미리 다녀오고 규정에 맞는 옷차림으로 스튜디오로 향했다.

스튜디오는 빽빽한 양재동 빌딩 중 한 곳 10층에 있었다. 촬영 공간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환한 조명과 카메라 3대, 프롬프터(대사 반사경) 3대, 다양한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앞에는 업무관련자, 촬영팀 3명이 계셨다.

무척이나 낯선 장소, 안 해본 일은 두려움을 몰고 오기 충분했다.

오전부터 강의를 찍고 계신 선생님이 대단해 보였다.

정신을 차리고 대기실에서 다시 맞춰보며 연습을 했다. 좌석 및 소품, 카메라 배치로 강의 순서와는 다르게 촬영을 했다.

내 순서가 되자 심장은 쿵쾅대기 시작했다. 그렇게 외웠던 대사가 꼬였다. 눈치가 보였는데 촬영팀은 아무렇지 않은 듯 이어나갔다. 내 눈동자, 표정, 발음, 목소리 다 모니터 해보고 싶었으나 난 그 정도 급이 아니었다.

내 만족감으로 NG를 낼 수는 없었다. 출연자 모두 괜찮은 거 맞냐며 물어보았으나 촬영팀이 괜찮고 'OK'라니 넘어갈 수밖에.

끝나고서야 마음 편히 빵과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소금빵 맛집이라더니 이제야 맛이 온전하게 느껴져 가는 길에 한 봉지씩 샀다.

아쉬우면서 홀가분한 마음으로 촬영 전후의 소회를 나누었다.

차마 부끄러워 촬영된 내 영상은 볼 수가 없을 거 같다.

무명 시절을 회상하며 한 대사로 천 번은 연습했다던 유명 배우들의 인터뷰가 떠올랐다.


이 경험은 내 인생의 새로운 문을 열어주었다. 영상 촬영이라는 무지의 영역에 대한 공포로부터 나를 깨웠다.  

'안 해봐서 그렇지, 막상 해보면 할 만 해. 처음이니까 서툰 건 당연하지. 틀린다고 안 죽어.'     

'영상 찍을 때 이런 걸 참고하면 되겠구나. 애들한테 말해줄 거 하나 더 늘었네.'     

교사로 사는 게 좋은 이유 중 하나는 나의 모든 경험이 아이들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금요일, 한 달 만에 병원에 갔다. 헛웃음이 나온다.     

처음엔 갑상선 항진증이라 약을 두 알 처방받았다. 한 달 후 약이 정말 잘 들었는지 저하증으로 수치가 뚝 떨어졌다며 한 알로 줄였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저하증이란다.

그런데 항진증 약은 반알로 줄이고 저하증 약을 먹어야 한단다.

내 생각엔 항진증 약을 안 먹고 저하증 약을 약하게 먹으면 될 거 같지만 전문가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9월 중엔 말을 많이 해서 목 아픈 줄 알고 있다가 급성 갑상선염에 걸린 것도 몰랐고 학기 말엔 피곤한 게 정상인 줄 알고 있다가 항진증과 저하증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몰랐다. 정말 미련하기 짝이 없다.

교사들도 피로를 달고 살다 보니 방학이 되어 여유 있다고 병원에 갔다가 병을 발견하거나 수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방학 중 아프면 아까운 방학을 날리는 것 같아 억울하기도 하지만 학기 중에 이중고를 겪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런 어리석은 행동은 딱 우리 세대까지만 한다. 우리는 학급 아이들은 어쩌고 보결 부탁은 어떻게 하냐며 걱정했다. 아파도 꾸역꾸역 학교에 와서 수업하고 끝나고 조퇴했다. 흔히 MZ세대 교사는 아프면 병가를 낸다.


프면 안 되는 엄마와 아빠, 그 역할을 학교에서 담임들이 하고 있었다.

이제는 사회에서 교사를 스승이 아닌 교육공무원으로 본다. 그렇다면 이렇게 변하는 게 맞다.

이런 변화가 아직은 당황스럽고 씁쓸할 때가 있다. 적어도 내게 아이들은 내 아들만큼 소중하기에.

교직을 사명이자 소명으로 알았던 분들, 아이들과 뭐라도 더 해보려고 했던 분들, 열정이 많았던 분들이 더 빨리 지쳐 학교를 떠나고 있다. 올해도 존경하는 선배님이 명퇴를 하셨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라고 했다. 무관심하면 마음과 몸이 아플 리 없다.

후배가 아이들과 아등바등하다 학부모님과 문제가 생겨 속상해하자 나이 지긋하신 선배님께서 한 말씀하신다.

"내 아이 아니다, 내가 꼭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해. 내려놔."

교사가 몸과 마음이 다 그만두느니 상처를 주는 아이를 내려놓는 것현명 일이다. 그렇게 상처진 자리엔 흉터를 남기고 딱지 떨어지 듯 열정이 떨어져 나간다.

아직도 난 새로 만날 아이들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더 크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방학 동안 얼른 다 낫고 생생하고 싶다.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할 것도 많다.





대문출처: @긍정토끼

그림출처: 뭉키데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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