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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스란 Nov 12. 2024

난 아몬드와 크런키

빼빼로데이라서 좋아

11월 11일 월요일

'1'이 이렇게 많이 들어간 날이 월요일이라 더 좋다. 뭔가 시작하기에 더없이 좋은 날이다.


날씨도 어정쩡한 늦가을,  이름도 붙이기 뭐 한 날.

누구인지는 모르나 김춘수의 꽃과 같이 이름을 붙여 놓았다.

그리고 이벤트라곤 생일만 겨우 챙기는 우리 가족에게까지 의미 있는 하루를 선물했다.


아들은 주말에 소파에 앉아 수제 빼빼로를 만들겠다 쿠팡 페이지를 뒤적이며 카카오 비율과 버터종류까지 이야기하다 장바구니에 이것저것 담아놓았다.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도착일자가 11월 13일이란다.

그렇다. 수제로 만들 정도의 관심과 애정이 있는 사람들은 이미 일찌감치 주문을 해놓은 것이다.

실망에 가득 찬 아들의 얼굴을 보자 뭐라도 해줄 수밖에 없었다.

새벽배송이 가능한 제품 중에서 혼합형에 적당한 양과 가격인 물건을 찾았다.

오리지널3, 아몬드3, 크런키2, 초코필드2, 화이트쿠키1, 초코쿠키1 혼합 12개짜리였다.


등교와 출근하는 차 안에서 상자를 열어본 아들이 종류별로 정리하더니 6개만 챙긴다. 나머지 6개는 우리 가족 거란다.

"엄마는 아몬드 제일 좋아하죠? 이건 크런키인데 아몬드랑 비슷하니 맛있어요. 두 개는 엄마 거예요."

"근데 난 화이트쿠키가 제일 좋아요."

"고마워, 잘 먹을게."

회사에 가서 내놓을 것도 아니지만 가방에 넣었다. 아들이 준 빼빼로 두 상자는 하루종일 날 흐뭇하게 했다.


회사에 가니 가장 어린 동료가 지난 금요일 병가 때 업무를 도와줘서 고맙다며 동료들에게 빼빼로를 한 상자씩 돌린다. 크런키였다.

누군가는 미니프리첼쿠키에 초코를 입힌 수제과제를 내놓았고, 다른 누군가는 감사하다며 예쁘게 포장된 과자를 내밀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선물에 어색하기도 하고 미처 준비하지 못한 손이 부끄러웠다.


작은 과자는 오후에 일을 하며 커피와 함께 집어 먹었고 아들이 준 빼빼로는 꺼내지도 않았다. 너무 예쁘게 포장된 과자는 그대로 책상 위에 두었다. 왠지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어야 할 것만 같았다.


퇴근 시간을 넘겨 일을 하고선 집에 들어가기 전 마침 시간이 맞아 아들을 데리러 갔다.

"오늘 원래 초코필드를 좋아하는 친구가 있어서 걔 주려고 했는데 잘못해서 그걸 차에 두고 갔어요. 그렇다고 내일 가져다준다고 하기가 그래서 그냥 화이트쿠키 줬어요."

"에고, 하나 밖에 안 들어있던 네가 가장 좋아하는 건데 줬구나. 엄마가 새로 사줄까?"

"아니에요, 그렇다고 새로 살 필요는 없어요. 그냥 있는 거 먹을래요."


퇴근하여 방에 들어와 있는데 막 퇴근한 남편이 큰 소리로 나를 찾는다.

또 뭘 못 찾아서 나를 부르나 싶어 내려갔다.

다이소에 빼빼로가 하나에 천 원이라서 가족 수대로 세 개를 사 왔단다. 아몬드였다. 피식 웃었다.

그 옆에는 남편이 사 온 것보다 커다란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건 뭐야?"

"아들이 친구들 주려고 산 건데 남은 건 자기랑 나눠 먹을 거래, 골라 가져가."


아침에 가방에 넣어둔 빼빼로 두 상자와, 새로 받은 빼빼로까지 꺼냈다.

"어, 이미 아몬드 받았네?"

"응, 이거 아침에 아들이 준거야."


갑자기 다이소에서 산 것과 선물세트에 있던 것과 비교하게 되었다.

빼빼로도 대목이란 게 있어서 선물세트도 나름 할인된 가격이었다.

다이소에서 산 것은 32g이고 선물 세트에 있던 것은 39g이었다.

"초콜릿을 얇게 입혔나?"

하나씩 꺼내 먹으며 내가 말하자

"아니지, 개수가 다르겠지."

남편이 공정을 굳이 다르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그게 훨씬 설득력이 있었다.

두 개를 비교해 보니 다이소에서 천 원에 산 것은 8개고 세트에 있던 것은 9개였다.

8개에 1,000원, 9개에 1,350에 산 것이다.

개당 125원과 개당 150원으로 다이소에서 산 것이 싸게 잘 산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아들 때문에 가릴 것 없이 샀어야 했지만 소비자는 생각보다 더 똑똑해야 한다.


요즘 잘하지도 않던 집안에서의 군것질 덕에 몸무게도 늘고 체지방율도 늘었지만 그래도 저녁에 우유를 따끈하게 데워 아몬드 빼빼로를 모두 먹어치웠다.

입안은 너무 달고 배는 더 빵빵해졌다.


그래도 정말 좋다.

두 남자가 '내가 좋아하는 아몬드 빼빼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동료와 아들이 '내가 좋아할 것 같은 크런키 빼빼로'를 주었기 때문이다.

취향이랄 것도 별로 없는 나의 사소한 입맛을 기억해 주고 추천해 준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한 일이었구나.



아들은 화이트초코를 좋아한다고 했다.

남편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 물어볼 걸 그랬나?

그냥 뭐든 잔망루피만 있으면 될 거 같다. 때아닌 잔망루피 띠부씰을 모으는 귀여운 아저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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