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쓴다는 건

내 껍질을 벗겨내는 일

by 고스란

저녁 8시, 책을 여러 권 출간하신 나와 같은 직업을 가진 작가님의 책 쓰기 관련 줌강연이 있었다.

강연 제목이 '말할 수 없는 비밀'이었다.

강연 주제가 책 쓰기다 보니 비법이라도 담겼나 보다 생각했다.


오프라인 강연을 들은 분들이 많이 계셔서 무슨 얘기 더 할 게 있을지 모르겠다며 말문을 여셨다.


자신이 어쩌다 책 쓰는 사람이 되었는지 말씀해 주시겠다고 했다. 후기는 되도록 남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시니 괜히 더 기대가 되었다.


이야기가 시작된 지 5분이나 지났을까 숨을 편하게 쉴 수 없었다. 아픈 게 아니다. 못 들을 걸 들은 듯 불편한 것이다.


늦은 저녁시간과 맞물려 조용히 식사를 하며 들었는데 젓가락을 내려놓게 되었다. 화면과 마이크가 꺼진 상태인데도 미동도 없이 침만 꼴깍 삼키며 숨죽여 들었다.


말하는 사람은 내가 아닌데 심장이 약간 옥죄고 숨도 얕고 빠르게 쉬어진다.


도대체 난 왜 이렇게 소심할까 싶다.




그분이 나를 불편하게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글이나 책과는 너무 멀었던, 지금의 모습을 상상할 수도 없던 모습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신 것뿐이다


두 삶을 떼어 이야기한다면 동일인의 삶이라 볼 수 없을 것 같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신다.

지금은 이렇게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다고.

그런 힘이 글쓰기에 있다고 말이다.

글을 쓰지 않았다면 이 자리는커녕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는 말씀이 과장되게 들리지 않았다.




지난달에 독서 모임을 하며 읽었던 김영하 작가님의 <단 한 번의 삶> 생각났다.


그 책도 이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던 기억에 떠오른 것이다.

프롤로그를 읽으니 작가님의 이야기가 많이 들어갔다고 해서 가볍고 즐거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무겁다고는 할 수 없지만 초반부터 편치 않은 마음으로 글을 읽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체로 그렇게 읽지 않았을 것이다.


내게 책 읽기는 호흡이다.

한강 작가님의 <희랍어 시간>이 잠수라면 최재천 작가님의 <희망 수업>은 수면 위에서의 숨 내쉬기고 이 책은 자유이다. 익숙하지 않으면 숨쉬기가 힘들고 익숙하면 편안하기 때문이다.




좀 더 마음공부를 해보면 알 수 있을까.

내면아이를 찾아 위로해 주면 나아질까.


불편한 진실에 대해서 불안을 넘어 약간의 두려움이 있다.


가끔 대화를 하거나 어떤 이야기를 읽거나 들을 때,

몸이나 마음이 지나치게 힘들었던 이야기를 접하면 몸 둘 바를 모른다. 더 솔직하게는 고통스럽다.


내 탓도 아니고 누가 뭐라는 것도 아닌데 비난받는 것 같고 혼나는 것 같다. 이 무슨 기가 찰 노릇인지.




이런 감정이 드는 이유를 생각해 보다 이것저것 찾아봤다.


높은 공감 능력을 지닌 경우에도 이럴 수 있다고 한다.

타인의 감정을 빠르게 흡수하고 그 감정을 마치 자신의 일처럼 느끼는 공감형 인간일 가능성이 높단다.

특히 상대의 목소리, 표정, 숨결, 이런 비언어적 요소에 민감한 사람일수록 그렇다고 하니 약간 고개가 끄덕여진다.

감정 전이 또는 감정 감염 (emotional contagion)를 일으키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듣는 이야기의 강도가 크면, 신체가 스트레스 반응을 일으킨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고, 어깨가 긴장되고, 가슴이 답답해진다. 이는 뇌가 실제로 그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이란다.

뇌가 원래 그렇다고 하니 큰 문제는 아닌가 보다.

다 비슷하게 느끼는데 서로가 말을 하지 않을 뿐이란 것일까.

과거의 경험과 연결되었기 때문이란다.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경험이나 상처와 연결되면서 되살아나는 감정일 수도 있단다. 특히 심장이 옥죄는 느낌은, 감정과 몸이 연결되어 있다는 표시란다.




고통은 삶이라는 바다의 파도다.

평온한 날이 더 많지만, 파도가 칠 때 우리는 그것만 기억한다. 그러나 바다는 늘 고요와 출렁임을 함께 갖고 있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의 삶으로 파도가 일었고

그 일렁이는 파도로 잠시 멀미가 났나 보다.




다시금 글쓰기의 위대함에 위축이 된다.

글을 쓰려면 결국 나의 껍질을 벗겨내야 하는 것인가.

아직은 생살을 벗기는 것 같은 걸 보니 성숙하려면 멀었다.

언젠가는 알맹이와 껍질이 붙어있을 뿐 다른 것임을 알고 내 안의 고유한 이야기를 꺼내어 보여줄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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