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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진 낮잠과 장례식장

누군가는 마라톤

by 고스란

7시도 안 되어 떠지는 눈.

일요일이라 더 자고 싶어 아직 울리지 않은 알람을 미리 끈다.

한 번 눈을 뜨니 몸은 안 일으켜져도 바로 잠이 오지 않는다.

부지런한 랜선 지인들에게 인사를 하고 평소엔 잘 보지도 않는 조금은 가벼운 내용의 유튜브를 몇 개 연이어 본다.

8시가 되어서야 지금쯤은 일어나도 된다고 누가 허락한 거마냥 벌떡 일어나 강아지 아침을 주고 시계를 본다.




어제 이 시간이면 벌써 나갈 채비를 다 하고 출발했을 거다.

8시에 집을 나서서는 오랜만에 수험생처럼 꼬박 8시간을 앉아 있었다. 전후로 왕복 운전 4시간까지 합치면 12시간이다.

중간에 밥 먹을 시간도 애매하고 같이 먹을 사람도 없었기에 자리에 앉아 싸갔던 구운 계란 1개, 바나나 1개로 배고픔을 달랬다.

결국 보상심리가 발동하여 9시가 넘은 늦은 시간 집에 들오는 길에 순댓국을 먹었다. 제대로 먹은 한 끼였다.




귀한 주말 중 하루를 꽉 차게 보냈으니 오늘은 아무것도 안 할 생각이었다. 아니 못한다는 게 맞는 표현이다.

주말이면 내가 내향인인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틀 중 하루라도 집에서 충전을 안 하면 너무 힘들다.

집이 최적의 장소지만 다른 장소더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누군가는 밖이나 사람들 많은 곳에서 에너지를 뺏기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누군가는 망상 활성계에 과도한 자극을 주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배가 완전히 꺼진 것도 아닌데 보다 말았던 영화 <승부>를 마저 보며 아침을 먹었다. 다른 할 것이 있는데 하기 싫어 밥 핑계로 미룬 것이다.

카톡을 보니 프 동기 두 명이 각자 마라톤을 신청했는데 우연히 같은 마라톤이란다. 10km와 하프를 뛴다고 한다.

겨우 5km만 참여하고 빈둥대고 있던 사이 꾸준한 누군가는 거리를 늘여 마라톤을 또 참가한다. 6월이고 거리도 길어 해가 쨍할 때 뛰어야 하니 꽤나 더울 텐데 대단하다.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자극을 받아 일을 찾고자 한다면, 차고 넘치도록 많지만 다시 올라가 정리해 둔 침대 위로 누워버렸다.

잠이 다 깬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다시 잠이 쏟아진다.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살쪄서 안 된다고, 이렇게 낮에 잠들면 시간 아까워서 안 된다고 아무리 되네어도 소용이 없다.

눈은 감겨 떠지지 않고 팔과 다리도 축 쳐진다.

그렇게 정오를 잠든 채로 넘겼다.




징~ 징~ 징~

몇 분 간격으로 진동이 울린다.

알람은 아침에 다 껐고, 내게 연락했다고 하기엔 너무 일방적으로 울린다.

결국 잠에서 깨어 눈을 겨우 뜨고 폰을 확인한다.

평소 알람을 꺼두지 않는 단톡방에서 계속 울린 거다.

알람을 꺼두지 않았다는 건 타이밍 놓치면 안 되는 사람들과의 단톡방이란 말이다.

직장 동료방에서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부고 소식이다. 얼른 장소를 확인했다.

다행히 1시간 이내 거리다. 저녁 무렵에 장례식장 안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들의 시험 준비기간이라도 특별한 뒷바라지를 하는 건 아니다.

장례식장을 가게 되면서 나갈 때 못 데려다 주니 낮에 먹으라고 수박주스도 만들고 딸기도 갈아서 얼려두었다.

일찌감치 출발해 약속 장소 근방에서 책이라도 읽으려고 했다. 이것저것 조금씩 하다 보니 출발해도 그리 이르지 않는 시간이 되었다.

1층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차 안에서 책을 몇 쪽 읽으니 비가 세차게 내린다.

그제야 하늘도 보이고 밖도 보이고 이곳이 장례식장 주차장임을 실감한다.




어제의 나도 나고

오늘의 나도 나다.


어떤 순간의 나로 생을 마치게 될까?

나는 어떤 사람인가?

어떻게 기억되고 싶은가?


잘은 모르지만 적어도 내겐 기억과 기록이 잘 버무려진 나로 기억될 듯하다.

어떤 기억이 남을지 모르니 가장 확실한 기록이라도 남겨야겠다.

그래서인지 평소보다 이것저것 담아 필요 이상으로 길어졌다.


졸리더라도 글쓰기, 졸더라도 남기기


한 발 한 발 가다 보면 더 자란 내가 방법을 알려줄 거다.

그때까지 지금의 나로 잘 살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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