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이어를 선택하게 된 사연

경력단절로 될까 등골 오싹했지만, 선물 같았던 그 시간

by durumi


육아휴직 종료 후 회사에 다시 적응하며 다닐 때, 아침마다 전쟁이었다. 매일 아침 아이가 나에게 회사 가지말라 울며 매달렸다. 아이의 울음을 뒤로 하고 나오는 과정이 참 많이 힘들었다. 출근길 지하철에서 홈캠으로 아이가 진정된 것을 확인했지만 한편으론 이런 상황을 감수하고 회사를 다녀야 하는 이유를 내 자신에게 묻곤 했다.


회사는 힘들고, 아이가 울며 불며 매달릴 때마다 괴로웠다. 새벽 6시든 8시 기상이든 늘 출근은 슬라이딩을 해야했다. 눈치보며 앉는 아침, 회사에 도착해 내 자리에 앉으면 녹초가 됐다. 퇴근도 아이를 보러 가기 위해 또 다시 쫓기듯 집으로 가야했다. 어느 날은 남편에게 “도대체 왜 나는 출근과 퇴근을 다 쫓기듯이 해야하는거냐”고 물었다. 아무리 남편과 분담을 한다고 해도 한국의 현실이, 이 사회가 ‘육아는 엄마의 몫’이라는 큰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저녁있는 아빠의 삶은 존중받기 어려웠다.


출근길에 마주친 아이를 등원시켜주는 엄마들, 그 손을 잡고 환하게 웃으며 동네 연못 돌다리도 건너고 풀잎도 따며 신나게 걸어가는 아이들을 보면서 내가 내 아이에게 해줄 수 없는 것들에 미안함이 생겨났다. 함박눈이 오는 날, 동네 아이들은 엄마와 함께 신나게 놀이터를 누비고 눈밭을 구르며 한참을 놀았다. 아이들의 행복한 목소리가 동네를 가득 채울 때, 나는 겨우 재택 중 30분의 짬을 내어 아이를 데리고 밖을 나올 수 있었다. 나와 눈을 뭉치고, 눈사람도 만들고, 벌러덩 누워 팔과 다리를 파닥이기도 하며 신나게 놀던 아이는 그만 집에 들어가자는 나의 말에 단 한번의 투정을 부리지도 않았다. '내 인생의 가치를 둔다면, 내 가치는 어디에 두어져야 할까'란 생각이 머릿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 생각의 끝에서, 내 인생 과감한 선택을 했다. 단 한번도 플랜B를 준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런 내가 뒤도 보지 않고 퇴사를 하기로 결심했다. 아이와 시간을 보낼 셈이었다. 원할 때, 언제든 일은 다시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다소 나이브한’ 믿음이 있었기에 (물론 퇴사할 때 주변에선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경력단절'의 가능성을 늘 얘기했다.) 퇴사 후 온전히 아이와 함께 할 수 있게 되어 신이 났다. 아이도 등원과 하원, 늘 엄마가 함께 한다는 생각에 기뻐했다. 그 시간, 아이는 내게 선물 같은 말들을 참 많이 해줬다.


"엄마, 나 지금 너무 행복해!"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

"응, 웃는 거!"

"언제가 제일 행복해?"

"지금 이렇게 유치원 다녀와서 엄마랑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소파에 앉아있는.. 지금이 행복이지!"


내가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주는 시간이 될 거라 생각했는데, 내 가슴에 채워진게 더 많았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기억의 한 순간!









작가의 이전글등골이 오싹했던 갭이어 체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