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사 채용 시험을 보러 간적이 있다. 모두 광역시 명문 사립고등학교 하나는 서울 지역의 명문 사립고등학교 였다. 세 학교 모두 원서비를 내고 시험을 치뤘다. 모두 하나같이 시험을 치르고 나오는데 이상한 기분이 드는 시험이었다. 이 시험으로 대체 누구를 뽑겠다는 건지 뽑을 수나 있으련지 싶은 이상한 시험이었다. 첫 서울 유명 사립고등학교 시험에는 모든 응답지에 한국말로 응답을 했고, 시험 장소가 아주 큰 콘서트홀 같은 곳에서 간이 책상을 놓고 시험을 치르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아주 어려운 고3 수능 문제로 가득한 시험이었다. 마지막 학교도. 마지막 학교의 담당자는 시험을 보러온 우리를 아주 고마운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몇번이고 감사하다고 인사했고, 다과를 먹으라고 했다. 응시료 수익만 어마무시 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모든 시험에 들러리였다.
점점 더 설자리를 잃어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까지도 진정으로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생계를 위해 처음 잘못 발을 디뎌 시작한 교직 생활. 10년이 훌쩍 넘는 이 시간까지 내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일까.
그러다 생각해본다. 꼭 정교사가 되는것 만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가? 지금 계약직 교사로 운 좋게 계속해서 일해오며 학생들을 만나온 것도, 티칭 경력을 쌓아온 것도 엄청나게 운이 좋은게 아니었을까.
계약직.기간제.
최근에 근무하는 학교 선생님들도 은연 중의 대화에서 다른 선생님들 이야기가 나오면 비하하곤 한다. 그래봤자 기간제잖아.
그 뒷담화의 대상이 내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끔찍한 마음이 들어 이 분과는 깊은 대화를 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안하면 기간제라서 혼나고. 열심히 하면 기간제라서 의미없고. 끝없는 딜레마와 논리적이지 못한 이 뫼비우스의 띠 같은 생활. 때로는 억울하고 한 스럽기까지한 재단을 향한 나의 희생시간들. 어떤 것도 대체할 수 없는 소중한 내 청춘의 시간들.
원칙적으로 그럼 그 잘난 너희들끼리 해보시던지. 결국 너희들도 기간제선생님을 부리면서 일하는 학교입장에선 "공식적인", "나라에서 인정받은" 소모품 중에 하나 잖아.
공식적 마크가 있고 없고의 차이를 따지는거라면 너희는 공식적으로 희생하는게 자랑이니?
엊그제는 내 면전에 대 놓고 이렇게 말하는 선생님이 있었다. 무슨 이야기 인줄 알거야. 근무하는거 안보는 것 같지? 사람들 다 보고 있어. 그리고 이전 학교에서 어떻게 일했는지 그게 다 들려. 가만히 있어도 소문이 다 따라다녀. 다 들려.
이제는 고리타분하게 까지 들리는,
더 잘하지 않으면 너도 지역사회에서 매장이야. 니 소문이 좋은줄 알아?라는 반협박성 멘트. 그러나 항상 들을때마다 마음에 비수가 꽂힌다. 다음날 아침까지도. 출근해야하는 발걸음을 무겁게 하는 전날의 일화.
아침에 일어나서도 마음이 아릿하게 아파온다. 기분이 절망을 넘어 어쩔 땐 영혼까지 흔들리는 아픈 말이다.
그들은 알고 있을까?
말 한마디 그들의 업이 되어 돌아가길 소망해본다.
나는 무엇이 되고 싶은 것인가 내가 속상하다는 것은 정교사가 되고 싶다는 것이 아닌가.
모두에게 어차피 사랑받을 수도 없고.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 될 수 도 없다.
불합리하게 주어진 업무분장에서. 시작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우리는 정교사들의 업무 처리를 완성하기 위한 손이. 발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