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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ight Queen Oct 18. 2022

<첫 번째> 서울, 명문대 대학원 입학

1. 서울의 명문 사립 대학원에 입학하다.

벌써 10년하고도 2년이 더 흘렀다. 지금도 이렇게 날씨가 쌀쌀해지고 차가운 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면 이름모를 우울한 감정들이 두둥실 떠오른다. 2010년 9월. 24살의 나는 부모로 부터 생애 첫 버림을 받았다고 생각했다.


지방의 한 대학을 졸업하고, 스펙을 쌓기 위해 선택한 유명 서울 사립 대학원 입학. 오랜 로망과도 다름없던 서울 생활. 명문대 재학생 남자친구. 걸어다닐 때마다 목까지 찰랑찰랑 차오르는 기쁨과 설렘으로 또 다시 주어진 캠퍼스의 로망이 실현되었다. 1학기도 놓치지 않고 졸업을 했더니 심지어 나보다 나이 많은 재학생 오빠들이 당시의 나는 컬쳐쇼크였다.


명문대학 답게 구성원들의 스펙은 정말 엄청 났다. 어렸을 때부터 라틴어 과외를 한 친구이자 알고보니 아버지가 의사인 친구, 최근 까지 이탈리아에서 교환학생을 하고 이제 막 돌아온 친구, 어릴때 홍콩 생활을 하고 온 친구. 부모님을 따라 인도에서 살다 온 친구, 아르헨티나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친구. 지금 나열한 친구 혹은 동생들은 다 다른 사람이다.


MUNers. 우리끼리 문어라고 칭하던 문어 그룹에서 나는 miscellineous 발음의 액센트가 어디인줄 아냐, 홍콩의 롼콰이펑 거리, 심지어 스페인어 농담을 주고 받는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점점 위축되어갔다.


복수전공으로 선택한 영어교육에서 토익 900점 이상 맞은게 전부인 지방대학 출신의 나.


우리끼리 회의를 마치고 돌아가는 지하철 4호선 혜화역에서. 나는 더욱 이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나를 제외한 모두들은 강남이나 과천 등지로 내려가는 지하철을, 나는 강북으르 올라가는 지하철을 탔다.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70짜리. 나와 갓 대학에 입학한 내 동생을 위해 지방사는 부모님이 마련해준 작고 깨끗한 오피스텔.

띵동하는 소리와 함께 14층에 내리면 오피스텔 복도는 뭐라도 튀어나올 듯이 조용했다. 너무너무 무서워 빠른 걸음으로 버튼을 누르고 들어가면, 동생은 아직도 집에 들어와 있지 않았다.


외롭게 티비를 틀고, 참치캔을 뜯고, 계란 후라이 하나에 빨간색 쿠쿠 밥솥을 열어 오래된 밥을 먹었다.


얼마지 않아 나는 고향의 한 사립고등학교로 기간제교사를 하러 다시 내려오라던 아빠의 제안을 거절했다.  

당신의 제안을 거절당해 화가 난 아빠는 월세를 끊어버리고, 용돈을 끊어버렸다.


얼마지 않아 나는 속옷 5장과 티 몇장, 바지 두장으로 지내던 오피스텔에서 쫓겨났다. 우애가 좋았던 나의 동생과는 그 날 이후 10년 동안 서먹한 사이다. 부모님으로 부터 오더를 받고 함께 서울 창동역 부근의 오피스텔 방 비밀번호를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부모님은 내가 당신들의 지시를 거절했다는 이유로 주말 하루아침에 장장 4시간이나 걸리던 지방에서 서울까지 한 달음에 올라와 내가 지내던 공간, 옷가지, 책상, 책들, 많은 그릇, 샴푸,린스, 치약, 칫솔 모든 걸 가지고 내려가버렸다. 한 순간에 주머니에 돈 한푼 없는 도시빈민이 되어버렸다. 돈 없는 대학원생. 처음으로 돈을 빌렸다. 10만원. 사귄지 얼마 되지도 않는 남자친구에게. 정말 자존심이 상했다.


단 한번도, 이렇게 부모와 완전히 단절된 적이 없었던 K-장녀. 항상 부모님의 말을 철칙이자 원칙이자 삶의 기준으로 삼았던 나는 그때 공포와 불안감으로 모든 일에 집중을 하기 어려웠다.

잘 하고 있던 대학원 프로젝트 '서울교육비전 2030'의 조교일도 결석이나 지각을 하는 일이 잦았고, 2학기 수업에서는 교수님 말을 아예 안 듣고 있었다. 심지어 무슨 말인지조차 이해하기 어려웠고, 2학기 대학원 중간고사 시험지는 알아들을 수 없는 통계학 용어가 가득했다. 처음으로 시험지에 교수님 죄송합니다 라고 써보았다.


학교 근처에서 기숙사 원룸 생활을 하고 있는 그 당시 남자친구의 공간에서 지낼 수는 없었다. 없는 돈에, 어디든 지낼 곳이 필요했다. 학교 근처에 고시원이라고 써있는 곳을 가 보았다. 도저히 지낼 수가 없는 공간. 언제 지어진 곳인지 알 수가 없는 색이 바랜 에메랄드빛 문과 사람 손때가 묻어 짙은 노란빛을 띄고 있는 벽지. 사람 하나 누울 수 없는 공간에 꾸역꾸역 자리를 차지 하고 있는 이부자리들. 이런 곳이 보증금 500에 월세가 무려 40이었다. 수중에 돈 한푼 없는 나는 이 곳 조차도 들어갈 수 없다는 생각에 더욱 울적해졌다.


2010년 쌀쌀한 가을에 서울 하늘 위를 아름답게 수놓는 여의도 불꽃축제가 기억난다. 지방살이와 지방대학을 졸업하고 첫 상경 후 본격적으로 대학원을 다닌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집도 없고 부모님도, 동생들과도 모든 연락이 끊겼다. 불꽃이 아름다워보이지도 않았고 불꽃축제를 보러온 그 많은 군중들이 무섭기만 했다. 이제 어떻게 하지. 오늘은 어떻게 지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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