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Insight Queen
Oct 18. 2022
<두 번째> 부모님의 굴레
2. K-장녀와 빵집 알바 그리고 자괴감
추후에 들은 말이지만 그 당시 아빠는 막냇동생의 핸드폰과 당신의 핸드폰, 엄마의 핸드폰까지 한번에 놓고 나로부터 연락이 오는지 오지 않는지, 정말 나와 연락하지 않는다는 막내동생과 엄마의 말을 믿지 않고 계속 확인했다고 한다. 그때의 난 정말이지 가족들과 한 번도 전화하지 않았다.
뭐라도 벌어야 생계가 유지되겠다고 판단한 나는 그때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용두동에 있는 초등학생을 위한 아주 작은 보습학원. 2층에 위치한 보습학원에 올라가는 길에 있던 냄새나는 화장실. 남녀 공용의 화장실. 양변기가 아니라 긴 녹슨 쇠줄과 위의 물통이 연결 된 아주 오래된 화장실을 뒤로하고 어떤 남자가 청소를 하고 있었던것 같다. 올라가서 간단히 면접을 보고 매주 화, 수, 목, 금 2시 이후에 2시간 정도를 수업해달라고 했다. 첫 경제활동, 그것도 일해본적도 없는 학원. 무엇이 더 일하는것이고 덜 일하는 것인지도 기준도 없었던 나는 무서운 눈을 한 여자원장앞에서 네네 말고는 할 말이 없었다.
하루는 돈까스를 먹고 들어가서 학생들 채점을 하는 원장에게 들어가 인사했다.
"뭘 먹었길래 이렇게 냄새가 나?"라고 되묻는 원장.
뭐라고 차마 말은 못했지만 알 수 있었다. 아주 무례하고 못된 사람이라는 것을. 나중에 부모님께 이 말을 드리니 누가? 어떻게 그렇게 말을 할 수 있냐며 화를 내던 아빠.
아니 아빠, 대체 뭐가 화가 난다는거죠? 아빠는 도대체 왜 그렇게 나한테 야박할 수 있었냐고 따져 묻고 싶었다. 왜 정당하게 화를 내야할 대상을 구분 못하시는거냐고. 대체 왜.
얼마지 않아 원장으로부터 원장실에 들르라는 말을 들었다. 월급을 한 달에 한번씩 주되, 3주 일한 것만 주겠다는 것이다. 빠진 나머지 1주는 돌아오는 다음달에 3주로 계산해서 준다고 했다. 왜냐고 묻는 내게 "일 중간에 하다가 도망갈까봐"라고 대답했다.
10년이 넘고 이제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다. 그때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최악의 사장을 만났다는것을. 가게의 크기가 작으면 작을수록 편법을 쓰기에 용이하다는 것을. 그 곳에 바로 그들만의 공화국이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곧 나는 냄새나는 화장실 바닥을 싹싹 소리내며 닦는 남자가 이 여자원장의 남편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퉤퉤한 색깔의 점퍼와 빗어넘긴 사이사이로 보이는 두피. 함께 원장실에 앉아 내 월급을 3주만 정산하겠다는 말을 할때, 그들 앞에서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날짜 하나하나를 가리켰던 검지 손 너머로 그가 짚은 달력 위엔 빨간색 망토를 입은 그리스도가 동산에서 지팡이를 짚고 양들과 함께 넘어오고 있었다. 적을 사랑하라. 오, 주여. 제게 왜 이런 시련을.
주말에는 혜화역 4번 출구 바로 앞 뚜레쥬르 제과점에서 일을 했다. 장장 6시간 동안 서있으면서 홀을 닦고 치우고 쓸고, 손님들이 먹고간 음식을 치우고, 매대에 있는 빵을 정리하고.
내가 주로 서 있던 자리의 뒤에 있던 내 얼굴보다 더 큰 호밀건강빵은 6,500원이었다.
그 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내 시급보다 높네. 너가 나보다 낫구나.
내 기억에 그 때 시급은 4,850원이었다. 빵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중학교때는 전교 3등이자 반 1등. 대학교때도 2번의 성적장학금을 타고, 높은 GPA로 명문 사립 대학원 바로 입학. 그리고 빵집알바.
내 노동력과 빵의 존재. 건강빵이라는 네이밍에 가치를 좀 더 둔다해도 결코 우리가 같은 카테고리가 아니기 때문에 저울 위에 올라설 수 없을 것인데. 아. 자본주의 사회에선 네가 나보다 낫구나.
얼굴을 바라보고 있는 서로 친숙하지만 카테고리가 달라 너무나도 낯선 두 가지 존재의 조우.
체크무늬 빵모자. 어두운 브라운 계열의 앞치마. 손님들의 테이블을 이리저리 거쳐 1평 남짓한 공간에 홀로 있던 철제 의자로 걸어간다. 고심하다 고른 빵을 아작아작 먹으며 아픈 다리를 두드렸다.
정말. 정말이지 내가 원하는 시간이 아니었다. 아 이게 부모님의 제안을 거절해서 받는 벌인가. 도대체 왜 이런 시간을 보내야하지.
엄마는 늘 말하셨다. 사람은 머리를 써서 돈을 벌어야 값어치가 있는것이지 몸을 써서 돈을 벌어서는 안된다고. K-장녀는 부모님의 뜻을 또 거슬러 일을 하며 돈을 벌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틀에 갇힌다는게 이런것 같다. 내 마음안에 부모님의 목소리가 너무 크기 때문에,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내가 원해서 선택했다는 울림이 없다.
내가 보는 모든것, 느끼는 모든것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진다. 내 인생이 없다는게 이런 것일까.
종종 만나게 되는 상담을 요청하는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자신의 말이나 생각이 없다.
단 1%도 찾기가 힘들다. 마음의 바닥을 보려고 넌지시 던져보는 질문에 돌아오는 답변엔 내가 없다.
부모님으로 부터 들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 어떤 선생님들이 나를 이렇게 보는것 같다.가 주요 내용이다.
그 모든 무의미한 성인들의 말을 자신들의 소중한 "인생 장면"에 적용하고, 또 그것을 해석하고 있는데 시간을 보내고 있는 측은한 아이들. 얘들아 우리는 대체 왜 이렇게 생각하고 있을까?
"내가 없다","나"자신이 없다는게 그런 것일까. 24살, 12년 전 그 때의 내가 그랬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