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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nsight Queen Oct 19. 2022

<세 번째> 고시원 생활과 첫 학교 출근

결국 대학원은 휴학을 하기로 결정했다. 학기당 500만원이 넘는 학비를 감당하기는 턱없이 모자랐기 때문이다. 학원 알바는 3주간의 정산분량을 받고 한 달 후 그만 두었다. 1주는 더 일하지 않았다. 손해보기 싫어서. 삼삼오오 서울에서는 나 빼고는 모두 즐거워보였다. 서울에 부모님이랑 같이 살았더라면. 나도 집에가서 편안한 마음으로 티비를 켜고 거실에서 뒹굴 거리고 싶은데. 집이 너무나 그리웠다.


어떻게 S여대 근처의 고시원을 잡았다. 여대 근처니까 안전한 느낌이었다. 누우면 머리가, 발을 조금만 뻗어보면 벽이 발에 닿았다. 식당에 올라가면 밥과 김치가 있다고 했다. 김치 뚜껑을 열어보았다. 누군가들이 조금씩 조금씩 먹어 흐트러진 모양의 김치. 많은 사람의 손길이 간것 같은 비위생적인 뚜껑.

전라도에서 태어나 젓갈이 가득 들어간 전라도식 김치가 익숙했던 내게 서울식 김치(혹은 중국산)는 밋밋한 겉절이 큰 배추장을 앞으로 한 번, 뒤로 한 번 고추양념에 찍어낸 느낌. 한 입먹고 더이상 못먹겠어서 버렸다. 


가끔 놀러온 남자친구는 그 곳의 원주민인척 하며 라면을 끓여 먹었다.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남의 일인양. 에피소드인 양 무심할 수 있었는지 싶다.


고시원 옥상에서 보던 대로와 주변의 건물들은 너무나도 낯설었다. 어릴 때 부터 널찍한 공간에서 나고 자란터라 고시원 방은 숨막힐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쉴 수가 없었다. 책상위에 모니터가 그리고 그 뒤로 유리문을 열면 작은 화장실이 있었다. 유리문을 열고 닫을 때는 책상 위의 모니터를 건들면 안되니까 천천히 열었고, 변기에 앉아서는 다리한 번 쭉 펴지 못했다. 밤마다 화장실에서 나는 냄새와 바깥에서 들어오는 정화조 냄새 때문에 방에서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식사도, 주거도, 무엇하나 편한게 없었다. 가뜩이나 예민한 성격에, 전혀 쉴 수 없는 공간. 화만 잔뜩 내 마음 속에 쌓여갔다.


발품을 팔아 한 역만 더 가면 있는 고시원을 가봤다. 옥탑이 하나 빈방이 있다고 했다. 이 방은 500/45만원. 냄새도 나지 않고 널찍했다. 가끔 담배를 피우러 올라오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움츠러들곤 했다. 무서웠고, 너무나도 낯설었다. 


창문바깥으로 고가도로가 보였다. 많은 차들과 버스들이 뒤엉켜 가는 고가도로 넘어로 아주 작은 창문들이 칸칸이 있고 천막으로 가려진 곳이 길 건너 멀리 보였다. 저게 뭐야? 엄청 이상해, 저렇게 작은 공간은 고시원인가? 사람이 사는거야?  라고 말했을때 당시의 남자친구가 말해줬다. 사창가라고. 


티비에서 자료화면으로 나오던 곳이 저곳이구나.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 왜 더러웠는지는 모르겠다. 그냥 이 공간이, 이 방이 , 이 상황이 몇 달째 계속 싫었다. 모든 상황이 내게 니 선택은 틀렸어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력서를 넣은 모든 곳은 단 한군데를 빼고 다 떨어졌다. 멀리 경기도 H시에 있는 공립고등학교 기간제교사. 그것도 1달짜리. 


기간제교사 자리를 피해 이 난리를 치면서 붙어있는데, 결국 기간제교사를 해야하나? 싶은 정당한 물음을 가져볼새도 없이 나는 그 곳으로 향했다. 200만원 남짓의 첫 달 월급을 받았을때 금액이 너무 커서 감당할 수 없었던 기억이 난다. 해가 지나 초 여름 쯔음, 엄마와 연락이 되었다. 그 당시 유행했던 MCM 지갑이 25만원 정도 였다. 요즘 다 하나씩은 있는 천만원에 가까운 샤넬백 처럼. 모두가 MCM가방을 들고 다녔던 시절이다.

그 지갑은 나는 갖고 싶지 않았지만(사실은 엄청 갖고 싶었다) 우리 엄마는 드리고 싶었다. 처음으로 받은 월급 같은 월급. 남들은 부모님 내의 선물이라도 한다던데. 나는 25만원짜리 지갑을 엄마한테 드려야지.


수화기 너머 엄마가 지갑이 왔다며 즐거워 하셨다. 워낙 말수가 적으시고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않는 스타일이셔서 대체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하냐고 먼저 말하지도 않으셨다. 그냥 무조건 수도권에서 일자리를 잡았다는게 신기하셨는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나라면..어떻게 할거니 그래서 거기를 계속 다닐거니 대학원은 어떻게 마무리 지을거니 한 달 짜리 기간제 끝나면 어떻게 할거니 등등 질문을 했을텐데. 신기하고 이상한 엄마의 반응이었다. 


서울 중심부에서 경기 H시 고등학교 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다. 지방에서는 경험해본 적 없는 버스 2번타기를 해야하니까. 파란버스를 타고 강동까지 간다. 그리고 이어 오는 빨간버스를 타고 도착한다. 

지옥같은 출근길을 겪고 학교에 도착하면 1시간 전에 출근을 해도 항상 빠듯하게 도착하기 일수 였다. 항상 1-2분은 지각을 했던 것 같다.


 교무실은 내가 들어가며 소리 내는게 부담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다. 가뜩이나 위축 되어 있던 생활을 하던 나는 자신있게 안녕하세요 라는 말도 입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큰 규모의 학교였다. 교무행정사가 무려 2명이었으니까.   


그 안에도 온갖 사람들이 뒤엉켜 있었다. 자기들만의 갈등 상황도 많았다. 학교에서 늘 학생이었던 내가 여기서 선생님이라니. 수업을 어떻게 하는건지도 모르겠어서 전임자 선생님이 인수인계를 해주실떄 부탁드렸다. 제가 전혀 몰라서 그러는데 선생님 수업을 한번 봐도 되겠냐고. 흔쾌히 허락해주신 덕분에 수업을 봤다. 어떻게 하지. to부정사에 대한 설명을 하고 계신다. 당장 내가 내일 이어서 해야할 부분인데..큰일이었다. 


어찌어찌 준비를 했던것 같다. 여학생 반이었던 것 같은데, 아이들 표정이 싸늘했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뭘 말했는지. 그리고 50분이 왜 이렇게 긴건지. 지하상가에서 샀던 하늘색 시계만 수업중에 자꾸 쳐다보았다.대체 언제 끝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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