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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Feb 20. 2021

3월을 위한 영화 31편 02

3월 4일 - 6일: Life goes on

삶을 살다 보면 변화의 시기가 찾아온다. 어떤 변화는 괴로움으로부터 시작되고, 어떤 변화는 호기심으로부터 시작되며, 또 어떤 변화는 꿈의 실현으로부터 시작되기도 한다. 어떤 변화는 내 행위의 결과로 찾아오기도 하고 또 어떤 변화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가운데서 찾아오기도 한다. 삶에는 정확한 공식이 적용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우리에게 찾아오는 변화에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믿을 뿐이다. 당장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지만, 삶이 지속되는 한 겨울은 가고 다시 봄이 오는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여기 세 명의 여주인공은 어느 날 변화의 순간을 맞이한다. 그리고 그녀들은 그렇게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한다. 


[3월 4일] 아멜리에 Le fabuleux destin d'Amélie Poulain, 2001


감독 장 피에르 주네 Jean-Pierre Jeunet

각본 기욤 로랑 Guillaume Laurant, 장 피에르 주네 Jean-Pierre Jeunet

출연 오드리 토투 Audrey Tautou, 마티외 카소비츠 Mathieu Kassovitz

냉정한 아버지와 신경과민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멜리 풀랑은 그녀에게 심장병이 있다고 오해한 아버지 때문에 학교가 아닌 집에서 교육을 받는다. 함께 놀 친구도 형제자매도 없었던 그녀는 상상의 세계에 빠져들고, 어머니가 불의의 사고로 돌아가신 후 외부와의 접촉을 끊은 채 살아가는 아버지와의 삶 속에서 그 상상의 세계는 지속된다. 몇 년이 흐른 뒤, 아멜리는 아버지의 집을 떠나 파리에 자리를 잡고 몽마르트에 있는 풍차 카페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한다. 주말이면 아버지를 만나러 가고, 금요일에는 극장에 가는데, 극장에서 다른 사람들의 표정을 관찰하는 것이 그녀의 취미이다. 몇 번 남자를 만나보기도 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대신 그녀는 다른 것에서 즐거움을 찾는다. 곡식 자루에 손을 넣거나, 작은 스푼으로 크렘 브륄레를 깨트리고, 생 마르탕 운하에서 물수제비 뜨는 것을 좋아한다. 1997년 8월 30일, 뉴스에서 다이애나비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던 순간, 그녀의 삶에 한 사건이 발생한다. 우연히 화장실 벽 안쪽에 숨겨진 오래된 상자를 발견한 것이다. 그것은 40년 전 한 소년이 숨겨둔 보물 상자였다. 아멜리는 반드시 그 상자를 주인에게 돌려주어야겠다고 다짐하고, 만약 그가 상자를 돌려받고 감동한다면 평생을 남을 위해 살리라 다짐한다. 결국 그녀는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을 수소문한 끝에 상자의 주인공을 찾아내고, 그에게 몰래 상자를 돌려준다. 그리고 그 상자를 돌려받은 사람의 반응을 몰래 지켜보며, 기쁨을 느낀다. 이후, 아멜리는 주변 사람들의 삶에 작은 손길을 던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느 날, 리옹역 즉석사진기 밑에서 사람들이 찢어서 버린 즉석사진을 줍고 있는 남자를 발견하고, 그를 쫓아가다가 그가 떨어뜨린 앨범을 줍게 된다. 


영화의 원제는 'Le Fabuleux Destin d'Amelie Poulain'이다. 우리말로 하면 '아멜리 풀랑의 멋진 운명' 정도 된다. 아멜리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오랜 시간 동안 혼자만의 세계에 갇혀 지냈다. 그녀의 방에는 동물을 소재로 한, 독일 출신의 초현실주의 화가 미카엘 조바(Michael Sowa)의 그림이 가득한데, 이는 그녀가 얼마나 사람들과의 교류를 단절하고 자신만의 상상의 세계 속에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그런 그녀에게 어느 날 오래된 보물 상자가 발견되고, 그것을 통해 그녀는 다른 사람의 삶에 조금씩 관여하게 된다. 그리고 그러던 중 특별한 취미를 가진 한 남자를 만난다. 즉석사진기 밑에 찢어진 채 버려진 즉석사진들을 모아 앨범을 만드는 남자. 그 남자의 앨범을 주은 아멜리는 조금씩, 서서히, 수수께끼처럼 그에게 다가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정말 봄과 잘 어울리는 이야기란 생각을 했다. 잎이 떨어지는 가을을 지나, 앙상하게 마른 가지를 품은 겨울을 보내고 드디어 푸른 싹을 틔우는 봄처럼, 아멜리도 그녀 안에만 간직하고 있던 따뜻한 마음을 다른 사람들에게 꺼내놓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랑을 시작한다. 설레는 그녀의 사랑에 미소 짓게 되고, 멋지게 펼쳐지는 그녀의 운명에 신나서 박수를 치게 된다. 그녀의 삶은 그렇게 계속된다.


[3월 5일] 투스카니의 태양 Under the Tuscan Sun, 2003


감독 오드리 웰스 Audrey Wells

각본 오드리 웰스 Audrey Wells

출연 다이앤 레인 Diane Lane, 산드라 오 Sandra Oh, 린지 던컨 Lindsay Duncan

교수이자 작가인 프랜시스는 우연히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되고, 그 때문에 이혼을 하게 된다. 설상가상인 건, 남편의 외도가 이혼 사유였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결혼생활 동안 남편을 부양했다는 것 때문에 위자료로 살고 있던 집까지 빼앗겼다는 것이다. 프랜시스는 졸지에 단기 임대 아파트에 거주하게 되고, 그녀의 친구 패티는 자신이 임신 전 예약해놓은 이탈리아 투스카니 낭만여행을 대신 가라며 그녀에게 티켓을 내민다. 패티의 제안을 거절하던 프랜시스는 마음을 바꾸고 게이들의 투스카니 낭만 여행에 합류한다. '코르토나'라는 곳에 내려 구경을 하던 프랜시스는 '브라마솔레'라는 이름의 빌라가 매물로 나온 광고를 보게 된다. 그리고 버스를 타고 이동하던 중 우연히 버스가 브라마솔레 앞에 멈추어 선 것을 알고는 버스를 세우고 그곳에 들어간다. 마침 집주인과 중개사는 집을 사려던 한 부부와 흥정 중이었는데, 막상 집을 팔려니 아쉬웠던 집주인은 가격을 더 올리고자 했고, 결국 부부는 집을 포기하게 된다. 프랜시스는 집주인에게 자신이 낼 수 있는 집의 가격을 제시하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아 그만 돌아선다. 그러나 돌아서던 프랜시스의 머리로 집 안을 날아다니던 비둘기의 배설물이 떨어지고, 이를 좋은 징조로 여긴 집주인은 프랜시스에게 브라마솔레의 주인 자리를 넘겨준다. 새 집을 얻게 된 프랜시스는 폴란드 인부들과 함께 집을 수리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변화에 적응해 나간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300년이나 된 집을 수리하고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관계를 맺어가는 일, 이혼으로 절망한 프랜시스에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널따란 집에 혼자 남겨진 그녀는 울면서 넋두리를 한다. 이 집에서 결혼식도 올리고,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싶다고. 그녀의 소망처럼 곧 그녀 앞에는 멋진 이탈리아 남자가 나타나고, 새로운 사랑이 시작될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상황은 두 사람을 멀어지게 만들고, 한껏 부풀었던 그녀의 마음은 더 큰 실망을 느낀다.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지 못했던 방법으로 그녀의 소망이 이루어진다. 투스카니 지역의 따뜻한 햇살 아래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희망을 품게 만든다. 마치 이 햇살 아래서는 어떤 슬픔도 살아남지 못할 것만 같은 느낌이라서. 그리고 나도 유럽 어느 시골마을에 값싼 빌라를 하나 사볼까 인터넷을 뒤적이게 만든다. 


[3월 6일] P.S. 아이 러브 유 P.S. I Love You, 2007


감독 리처드 러그래버네즈 Richard LaGravenese 

각본 리처드 러그래버네즈 Richard LaGravenese , 스티븐 로저스 Steven Rogers

출연 힐러리 스왱크 Hilary Swank, 제러드 버틀러 Gerard Butler, 리사 쿠드로 Lisa Kudrow, 지나 거숀 Gina Gershon, 캐시 베이츠 Kathy Bates, 해리 코닉 주니어 Harry Connick Jr., 제프리 딘 모건 Jeffrey Dean Morgan

뉴욕 차이나타운의 한 지하철역에서 두 남녀가 걸어 나온다. 여자는 화가 난 표정으로 앞서 걷고, 남자는 그저 조용히, 그러나 불안한 표정으로 여자를 뒤따른다. 제리는 홀리가 왜 화가 났는지도 알지 못한 채 집에 도착하고, 두 사람은 말다툼을 시작한다. 한없이 이어질 것 같았던 다툼은 어느새 서로에 대한 애틋한 마음으로 끝이 나고,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를 안고 잠자리에 든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12월이다. 홀리의 엄마 패트리샤가 운영하는 바에서 장례식이 치러진다. 뇌종양으로 죽은 제리의 장례식. 장례식 후 홀리는 몇 주 동안 제리와의 추억이 서린 집에 머물며 밖에도 나가지 않고 그와의 기억에 매달린다. 홀리의 30살 생일, 가족과 친구들이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고자 집에 찾아오고, 이후 핑크색 상자가 도착한다. 상자 안에는 그녀의 생일을 축하하는 생일 케이크와 녹음기가 들어 있다. 녹음기의 플레이 버튼을 누른 홀리는 제리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제리는 그녀를 감동시키고자 편지들을 써두었고, 그 편지들은 갖가지 방법으로 그녀에게 전달될 것이라 한다. 다음날부터 홀리에게는 '추신. 사랑해'로 끝나는 제리의 편지들이 도착하기 시작한다. 제리의 편지들은 홀리를 움직이게 하고, 또한 그와 나누었던 재미있는 추억들을 생각나게 한다. 시간이 흘러 여름이 찾아오고, 제리는 홀리에게 아일랜드 여행을 선물한다. 홀리는 친구인 드니스, 샤론과 함께 아일랜드로 날아가고, 그곳에서 처음 제리를 만났던 순간을 추억한다. 그리고 '그 시절 당신을 잊지 마'라는 제리의 편지를 읽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나선다.


홀리는 미술을 공부하던 대학시절 아일랜드로 여행을 갔다가 현지에 살고 있던 제리를 만났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많이 사랑했고 이른 나이에 결혼을 해 뉴욕에 자리를 잡았다. 제리는 리무진 운전을 하다가 친구와 함께 대출을 받아 본인의 회사를 차렸고, 홀리는 공인중개사로 이곳저곳에 근무하며 함께 돈을 모아 더 넓은 집으로 이사도 가고 아이도 낳으려 했다. 그러나 제리는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고 홀리는 그와의 추억만 간직한 채 홀로 남았다. 이제 울 시간이다. 그런데 영화는 그 시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제리는 홀리의 곁에 있다가 떠난 사람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그는 혼자 남을 홀리가 새로운 출발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그녀를 조금씩 이끌어 간다. 홀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가장 잘 알기 때문에 홀리를 일으켜 세울 방법도 가장 잘 아는 것이다. 여러 번 회사를 옮기며 자기의 일에 애정을 갖지 못했던 홀리는 결국 자신이 가장 즐겁게 잘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 제리 이후 등장하는 두 명의 남자, 다니엘과 윌리엄. 그들과 홀리의 관계도 궁금했지만, 홀리가 자신을 찾을 수 있는 일을 만났다는 것이 더 기뻤다. 그리고 홀리의 남은 삶을 위해 끝까지 함께해준 제리가 너무 고마웠다.

흔히 제라드 버틀러라고 하면 영화 '300'이나 '런던 해즈 폴른'의 강인한 남성미를 먼저 떠올릴 테지만, 그의 진짜 매력은 이 영화에서 드러난다. 서글서글한 눈매에 어색한 아이리쉬 악센트(그는 스코틀랜드 출신이다)로 한 여자에 빠진 현실적인 남자를 연기하는 모습. 난 이 영화를 보고 그의 팬이 되었고, 이 배역보다 더 어울리는 배역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좀 안타깝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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