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3일 - 16일: Hugh and Rom Com
피 튀기는 잔인한 장면이 나오지 않는 한 크게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영화를 보는 편이지만, 감상한 영화들의 목록을 보면 로맨틱 코미디가 가장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영화를 굉장히 몰입해서 보는 편이라 영화에 등장하는 갈등과 위기가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가장 편안하게 볼 수 있는 영화들을 선택하는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로맨틱 코미디의 매력은 그것이다. 보장된 해피 엔딩. 그래서 잠깐의 갈등에도 훗날을 기약하며 웃을 수 있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는 춥든 덥든 사계절 어느 때에 보아도 좋지만, 봄날의 기운과 함께하면 그 고유의 설렘과 두근거림을 배가시킬 수 있다.
로맨틱 코미디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최초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가 무얼까 궁금해져서 검색을 해보았다. 글로벌 미디어 그룹인 콘데 나스트에서 발행하는 여성 전문 온라인 매거진인 글래머닷컴(www.glamour.com)에 간략한 로맨틱 코미디의 역사에 대한 글이 있었다. 그 글에 따르면 '로맨틱 코미디는 사랑 이야기를 가볍고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다룬 영화나 연극'이라고 한다. '두 사람이 만나고, 그 과정 가운데 갈등을 겪고, 그 갈등이 해결된 후 다시 만나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 기본적인 줄거리이다. 이 두 가지를 전제로 할 때, 최초의 로맨틱 코미디 영화는 1924년 작품 '셜록 주니어(Sherlock Jr.)'와 '걸 샤이(Girl Shy)'이다. 그러나 두 영화는 무성영화이기 때문에 남녀 주인공이 주고받는 대사가 주는 묘미를 느끼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다. 최초의 유성영화로 인정받고 있는 '재즈 싱어(Jazz Singer)'가 등장한 1927년 이후 영화들 중에는 프랭크 카프라(Frank Capra) 감독의 1934년 작인 '어느 날 밤에 생긴 일(It happened one night)'이 초기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자주 언급된다. 그리고 그즈음 스크루볼 코미디(Screwball Comedy)라 불리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들이 많이 등장하며 로맨틱 코미디 영화의 계보를 이어갔다. 이 스크루볼 코미디는 나중에 한 번 몰아 보기로 하고, 이번엔 9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로맨틱 코미디계에서 가장 주목받았던 한 배우의 영화를 모아봤다.
휴 그랜트(Hugh Grant)는 1960년에 태어난 영국 배우로, 1994년 마이크 뉴웰(Mike Newell) 감독의 영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Four Weddings and a Funeral)으로 일약 세계적인 스타로 떠올랐고, 이후 로맨틱 코미디의 황제가 되었다. 그러나 그가 처음부터 로맨틱 코미디로 연기를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의 이미지가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과 잘 맞았고, 그래서 사람들이 그가 출연한 로맨틱 코미디에 주목했을 뿐. 2010년대에 들어서며 로맨틱 코미디가 아닌 다른 역할로도 주목을 받기 시작했지만, 1987년 모리스(Maurice)로 베니스 영화제에서 볼피컵을 수상한 이후 한동안은 로맨틱 코미디 이외의 장르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생각해보면, 서글서글한 쳐진 눈매와 푸른 눈, 진갈색의 웨이브 진 머리와 다정한 말투가, 어설프지만 순진한, 때로는 능글맞고 뻔뻔한 로맨틱 코미디의 남자 주인공에 찰떡 같이 어울렸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런 그의 모습을 더 보고 싶어 했을 것이다. 자,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휴와 함께 로맨틱 코미디의 향연을 즐겨보자!
감독 마크 로렌스 Marc Lawrence
각본 마크 로렌스 Marc Lawrence
출연 휴 그랜트 Hugh Grant, 드류 배리모어 Drew Barrymore, 브래드 개럿 Brad Garrett, 헤일리 베넷 Haley Bennett
80년대를 풍미했던 그룹 'Pop'의 멤버였던 알렉스 플레처는 이미 한물간 스타가 되었지만, 이런저런 행사에 출연하며 과거의 영광에 기생하여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그의 매니저는 세계적인 팝스타 코라 코먼이 알렉스의 팬이며, 그를 만나고 싶어 한다고 전한다. 그때 그의 집에 있는 식물들을 돌봐주는 제인의 대타로 소피가 그의 집을 방문한다. 소피는 선인장을 돌보다 가시에 찔리고 상처가 감염될까 호들갑을 떨며 금세 자리를 비운다. 그날 밤 두 사람은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친 코라를 찾아가고, 코라는 최근 남자 친구와 헤어진 후 'Way back into love'라는 책을 읽으며 절망을 극복했다며 알렉스에게 2주 후 콘서트에서 함께 부를 동일한 제목의 노래를 써달라고 부탁한다. 작곡을 그만둔 지 10년이나 지나기도 했고, 함께 작업했던 작사가가 아니면 자신이 없었던 알렉스는 코라의 요청을 거절하고 싶지만, 취소된 행사들 때문에 다시 작곡을 해보기로 한다. 그는 매니저가 구해준 잘 나가는 작사가와 함께 곡을 쓰려고 하지만 그의 가사로는 도저히 영감이 떠오르질 않는다. 그때, 소피가 식물을 돌보러 알렉스의 집에 오고, 그녀가 혼자 자신만의 가사를 읊조리는 걸 들은 알렉스는 그녀에게 가사를 써보지 않겠냐고 제안한다. 그의 제안에 소피는 손사래를 치지만 그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두 사람은 함께 곡을 쓰기로 한다. 그러나 가사가 쉽게 써지지는 않고, 소피는 알렉스와 함께 밖에 나가 산책을 하며 그의 삶에 대해 묻는다. 둘은 그 과정 가운데서 가사의 실마리를 찾아간다.
'Shallow' 이전에는 'Falling Slowly'가 있었고, 'Falling Slowly' 이전에는 바로 이 영화의 주제곡 'Way back into love'가 있었다. 남녀 듀엣곡으로 사랑받았던 바로 그 곡. 영화는 이 곡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랑스럽게 그려간다. 이미 한물간 과거의 스타와 사랑에 배신 당해 움츠러들었던 여자가 만나 아름다운 노래를 만들어 간다. 이젠 나이가 들어 얼굴에 주름도 늘고, 머리숱도 조금 줄었지만 그래도 로맨틱 코미디의 휴 그랜트는 아직 건재하다. 한물간 스타이지만 과거처럼 긴장하며 살지 않아서 행복하다는 알렉스, 동창회며 테마파크며 각종 행사에서 아줌마들의 환호를 받는 명백한 과거의 스타이지만 그것도 나름대로 즐기는 그의 모습이 나이 든 휴와 어울린다. 그리고 엉뚱한 모습이 사랑스러운 드류 배리모어와의 케미도 볼만하다. 촬영장에서는 그다지 사이가 좋지 않았다고 하던데.. 다행히 영화에서는 그런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이 영화 이후에도 휴는 몇 편의 로맨틱 코미디를 더 찍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서는 다양한 장르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는 중.
감독 마크 로렌스 Marc Lawrence
각본 마크 로렌스 Marc Lawrence
출연 휴 그랜트 Hugh Grant, 산드라 불럭 Sandra Bullock, 알리샤 위트 Alicia Witt
75년 된 브루클린의 마을 극장 앞. 공사장 인부들은 건물을 헐 준비를 하고 있지만, 루시의 방해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루시는 하버드 법대를 졸업한 변호사로, 지역사회 보존과 환경 문제 등과 관련하여 일하고 있다. 오늘도 루시는 지역사회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건물들을 헐고 새로운 건물을 지어 돈벌이를 하려고 하는 개발사에 저항해 사위를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이 출동하고 결국 부모님의 도움으로 경찰서를 나오게 된다. 그녀는 부동산 개발업자인 웨이드사가 그녀의 어린 시절을 함께한 시민회관을 헐고 숙박시설을 지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웨이드사의 대표인 조지 웨이드를 찾아간다. 조지는 전 부인과의 이혼을 진행하고 있는 바람둥이로, 최근 고문변호사가 해고되는 바람에 새로운 변호사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그가 고용했던 변호사들은 하나 같이 예쁘고 날씬하지만 법률적인 지식에는 약한 사람들이었다. 그의 형은 하버드나 콜롬비아 등 제대로 된 변호사를 구하라고 종용했고, 우연히 루시를 만나게 된 조지는 그녀가 하버드 출신인 것을 알고는 자신의 고문변호사로 채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루시는 평생을 조지 같은 사람에 맞서 살아왔다며 난색을 표하고, 조지는 그녀가 자신의 고문변호사가 되어준다면 시민회관을 지켜주겠다고 한다. 결국 루시는 그의 제안을 승낙하고 두 사람은 떨어질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조지 웨이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그는 바람둥이다. 그렇지만 그 단어만으로 설명하기엔 억울한 면이 있다. 생각이 깊지 않고,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기분 나쁘게 하지는 않는다. 말로 사람의 마음을 풀어줄 줄 안다고 해야 할까? 그와 데이트하다가 헤어진 사람이 아니라면 딱히 그 때문에 마음 아파할 일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매사에 명확하거나 꼼꼼하지도 않다. 그저 서글서글하고 말랑거린다. 그런 그에게 루시가 나타난다. 그녀는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명확히 알고, 삶의 목적도 분명하다. 어느새 조지의 결정 권한은 루시에게 가 있다. 그는 아주 사소한 모든 것을 루시에게 묻는다. 그리고 그런 조지의 모습이 루시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고, 결국 그녀는 그에게 퇴사를 통보한다. 여기에 새로운 인물 준 카버가 등장하며 둘은 새로운 감정에 눈을 뜬다.
이 작품은 마크 로렌스 감독의 장편 데뷔작이다. 각본을 주로 써왔던 그는 자신이 쓴 이전의 두 영화(포스 오브 네이처, 미스 에이전트)에 출연한 산드라 불럭을 여주인공으로 캐스팅했고, '노팅힐'과 '브리짓 존스의 일기'로 주목받았던 휴 그랜트를 남자 주인공으로 캐스팅했다. 휴는 이후 마크 로렌스 감독의 영화 세 편에 주인공으로 출연했다. 감독은 휴의 캐릭터가 '노팅힐'의 윌리엄과는 좀 다르길 바랐고, '브리짓 존스의 일기'의 다니엘 보다는 호감형 이길 원했다.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감독의 바람이 잘 이루어진 것 같다. 조지 웨이드는 윌리엄 보다는 좀 더 생기 있어 보이고, 다니엘 보다는 확실히 더 사랑스러워 보이니 말이다.
감독 로저 미셸 Roger Michell
각본 리처드 커티스 Richard Curtis
출연 휴 그랜트 Hugh Grant, 줄리아 로버츠 Julia Roberts, 리스 이반스 Rhys Ifans
런던 서쪽에 위치한 노팅힐. 윌리엄은 주말이면 포토벨로 마켓이 열리는 노팅힐의 한 파란 대문 집에 살고 있다. 아내와 함께 살던 집이었지만, 아내는 해리슨 포드를 닮은 남자를 따라 도망갔고, 현재는 스파이크라는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그의 직업은 여행전문서점 주인이다. 어느 수요일, 윌리엄은 평소와 다름없이 집에서 1킬로미터쯤 떨어진 서점에 출근한다. 그리고 그곳에 그녀, 세계적인 영화배우 안나가 들어온다. 윌리엄은 그녀가 자신의 가게에 들어왔다는 것에 놀라고, 안나는 잠시 둘러보다가 책을 사 가지고 나간다. 이후 카페에서 오렌지 주스를 사 가지고 나오던 윌리엄은 우연히 안나와 부딪치며 그녀의 옷에 오렌지 주스를 쏟게 되고, 인근에 있던 자신의 집으로 그녀를 데려가 옷을 갈아입게 한다. 옷을 갈아입고 내려온 안나에게 윌리엄은 마실 것 등 이것저것을 권하지만 사양하고, 안나는 집을 나선다. 그러나 잠시 후 초인종이 울리고, 안나가 짐을 놓고 갔다면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는 윌리엄에게 키스한다. 곧 두 사람의 순간은 윌리엄의 친구인 스파이크로 인해 방해를 받고, 안나는 떠난다. 며칠 후 윌리엄은 스파이크에게 자신에게 온 전화가 없었는지 묻고 스파이크는 안나라는 미국인이 리츠호텔로 연락해서 다른 이름을 찾으라고 했다는데 정작 그 이름은 기억을 하지 못한다. 결국 스파이크 덕에 안나와 연락이 닿은 윌리엄은 그녀를 만나러 리츠 호텔에 간다.
아마도 노팅힐은 가장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 중 하나로 꼽힐 것이다. 무슨 심보인지 남들이 너무 많이 좋아하면 왠지 내 것 같지 않아서 살짝 발을 빼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이 영화만큼은 나의 Favourite List에서 빠지지 않는다. 현실에서 일어날 리 만무한 비현실적인 이야기이지만, 영화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어디서 우리의 감성이 위로를 받을 수 있겠나?
휴는 '네 번의 결혼식과 한 번의 장례식'의 대히트 이후 몇 편의 영화를 더 찍었지만 크게 주목받지는 못했다. 그러다 '노팅힐'을 만난 것이다. 감독인 로저 미셸은 리처드 커티스의 각본을 휴 그랜트보다 잘 살리는 배우는 없다고 말했다. 휴는 그만큼 완벽한 윌리엄이었다. 아내는 다른 남자와 바람이 나서 떠났고, 운영하고 있는 서점은 매번 적자를 낸다. 의기소침해진 그의 앞에 나타난 사람은 세계적인 스타. 그야말로 신데렐라의 남자 버전이라 할만하다. 그의 캐릭터는 의기소침하지만 불쌍해 보이지는 않아야 하고, 망설이기는 하지만 우유부단해 보여서는 안 된다. 굉장히 미묘한 차이인데, 휴 그랜트의 서글서글하게 잘생긴 얼굴은 이런 캐릭터를 살리는 데에 매우 유용하다는 생각이 든다.
영화는 '노팅힐'이라는 지역에 대한 로망도 키워놨다. 런던 여행을 가면서 이 영화를 떠올리지 않는 관광객은 없을 것이다. 실제로는 소매치기를 각별히 조심해야 하는 몇 장소 가운데 하나일 정도로 주말엔 붐비는 지역이지만, 그래도 굳이 이 곳을 빼놓지 않고 가는 것은 영화가 만들어낸 설렘을 조금이라도 현장에서 느껴보고 싶어서가 아닐지. 20년이 훌쩍 지난 지금 보아도 그다지 촌스럽지 않은 영화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줄리아 로버츠가 입은 의상들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꼭 그렇게 입어야 했을까....?
감독 마이크 뉴웰 Mike Newell
각본 리처드 커티스 Richard Curtis
출연 휴 그랜트 Hugh Grant, 앤디 맥도웰 Andie MacDowell, 크리스틴 스콧 토마스 Kristin Scott Thomas, 존 한나 John Hannah, 제임스 플리트 James Fleet, 사이먼 캘로우 Simon Callow, 샬롯 콜먼 Charlotte Coleman
찰스와 그의 친구들은 앵거스와 로라의 결혼식에 참석한다. 신랑 들러리를 맡은 찰스는 오늘도 어김없이 지각을 하고, 반지까지 놓고 와서 친구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위기를 모면한다. 결혼식이 끝난 후, 찰스는 식장에서 자신의 눈길을 끌었던 한 여자에게 다가간다. 찰스의 친구 피오나는 그녀가 미국인이며 상류층 사람들과 어울리는 사람이라고 알려준다. 그리고 그날 밤 찰스는 그녀, 캐리와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다음날 아침 캐리는 미국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찰스를 남겨두고 떠난다. 3개월 후, 앵거스와 로라의 결혼식에서 사랑을 시작한 리디아와 버나드의 결혼식. 어김없이 찰스는 또 지각을 한다. 그리고 또다시 캐리를 만난다. 찰스는 오랜만에 캐리를 다시 만나 기뻐하지만, 캐리는 그녀의 약혼자 헤이미쉬를 그에게 소개한다. 상심한 찰스는 왜 자신은 지금까지 결혼을 못하고 있는 것인지 자문하며 괴로워한다. 그리고 피로연 테이블에 함께 앉은 자신의 옛 여자 친구들의 성토에 매우 곤란해한다. 특히나 나중에 등장한 옛 여자 친구 헨은 상대와 친밀해지기를 두려워하고 결혼은 처음부터 생각하지도 않았던 찰스의 태도를 비난하며 울기까지 한다. 찰스는 피로연장 복도에서 떠난 줄 알았던 캐리를 다시 만나고 두 사람은 또다시 하룻밤을 함께 보내게 된다. 그리고 다시 한 달이 지나고, 그는 캐리와 헤이미쉬의 결혼 청첩장을 받는다.
어쩌면 인간의 영원한 미션은 '나에게 꼭 맞는, 그리고 평생을 함께할 누군가 찾기'가 아닐까?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다른 사람들 중에서 나에게 맞는 누군가와 평생을 함께할 생각을 한다는 것이 무모하고 비현실적으로 들리겠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로맨틱하다고 생각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각본을 쓴 리처드 커티스는 34살에, 자신이 지난 11년 동안 65번의 결혼식에 참석한 것을 깨달은 후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주인공 찰스는 휴 그랜트의 실제 성격보다는 리처드 커티스를 닮아 있는데, 사람들은 휴에게서 찰스의 모습을 기대하곤 한다.
주인공 찰스는 무언가에 자신을 쏟거나 열심을 내지 않는다. 지각하는 게 습관이고, 여자와의 심각한 관계를 두려워하고, 첫눈에 반한 캐리와의 관계에서도 결코 적극성을 띄지 않는다. 그런 어정쩡하고 어설픈 찰스의 모습이 휴 그랜트의 축 처진 파란 눈과 만나 어딘지 답답하면서도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를 만들어냈다. 영화에는 찰스의 친구들 이야기도 등장한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이야기 하나하나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이 영화를 즐겁게 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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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 19일: Boy Meets Gir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