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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Feb 24. 2021

3월을 위한 영화 31편 04

3월 10일 - 12일: Love heals

자장가로 불러주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 노래가 있었다. 영국의 꼬마 가수 데클란 갤브레이스(Declan Galbraith)가 불렀던 'Mama Said'라는 곡이다. 그는 후렴 부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사랑은 주기도 하고 빼앗기도 해.

Love can give, love can take.

사랑은 굴복시키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해.

Love can bend and love can break.

넌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게 정말 끝은 아니란다.

When you think it's over, it's not the end.

포기하지 마, 힘을 내렴.

Don't give in, just be strong.

아들아, 그리고 기억하렴. 엄마가 말씀하셨지.

And please remember, son, my mama said.

사랑은 모든 상처 난 마음을 고친단다.

There ain't no broken heart love can not mend.


엄마가 불러주는 이런 노래를 듣고 자란 아이는 어떤 사랑을 할까 궁금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문득 이 가사에 어울리는 영화들이 생각났다. 사랑 때문에, 사람 때문에 아파하고 좌절하고 마음을 닫지만, 결국 또다시 사랑을 맞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이야기. 또 다른 봄을 맞이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3월 10일] 굿바이 걸 The Goodbye Girl, 1977


감독 허버트 로스 Herbert Ross

각본 닐 사이먼 Neil Simon

출연 리처드 드레이퍼스 Richard Dreyfuss, 마샤 메이슨 Marsha Mason, 퀸 커밍스 Quinn Cummings

폴라는 다음 주면 캘리포니아로 이사 갈 생각에 부풀어 딸 루시와 함께 쇼핑을 하고 집에 돌아온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는 것은 토니가 남겨놓은 편지 한 장. 유부남이었던 배우 토니는 이탈리아로 촬영을 떠난다며 달랑 편지 한 장을 남겨놓은 채 폴라와 루시를 떠났다. 33살의 폴라는 다시 댄서 활동을 하기 위해 연습을 시작하지만, 몸이 예전 같을 리 만무하다. 설상가상으로 토니가 집까지 내놓고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날 밤, 억수 같은 비가 쏟아지는 뉴욕. 폴라의 아파트에 한 남자가 찾아온다. 시카고에서 온 엘리엇은 토니에게 집을 전대 받았다며 문을 두드리지만, 폴라는 토니라는 사람은 없다며 문을 닫아버린다. 다시 빗속으로 쫓겨난 엘리엇은 공중전화로 폴라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하고, 결국 그녀는 루시의 방을 그에게 양보하고 두 사람은 그렇게 어설픈 동거를 시작한다. 


토니가 떠난 뒤로 폴라는 행복해진다는 느낌, 세상이 살만한 곳이구나 라는 기분을 두려워한다. 전 남편은 순회공연 도중 바람이 나서 헤어졌고, 그다음 만난 토니는 유부남이었으며, 달랑 편지 한 장을 남겨 놓고 떠나버렸다. 엘리엇은 오프 브로드웨이에서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3세를 공연하기 위해 뉴욕에 오지만, 그의 연극은 혹평을 받고 오프닝 공연 1회 만에 막을 내리게 된다. 지난 두 남자에게 받은 상처와 두려움이 있는 폴라, 배우로서 자신감 있게 자신의 길을 가고자 하는 엘리엇. 두 사람의 이야기가 흥미롭게 펼쳐진다. 

닐 사이먼의 각본이 매우 인상적인데, 희곡을 많이 썼던 작가라서 그런지 대사의 맛이 살아있다. 분명 무언가에 상심해 있는 두 사람이지만, 그걸로 인해 영화의 분위기가 쳐지지는 않는다. 폴라와 엘리엇의 끊임없는 말다툼과 그 가운데서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서 그걸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1978년 마샤 메이슨과 리처드 드레이퍼스는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고, 리처드 드레이퍼스는 오스카를 받았다. 그리고 참고로, 폴라 역을 맡았던 마샤 메이슨은 촬영 당시 닐 사이먼의 아내였다.

사람 때문에 사랑에 소심해졌던 폴라는 엘리엇을 통해 이전의 기억을 뒤로하고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게 된다. 다만, 엘리엇이 배우로서 성공의 길을 가는 것처럼 보이고, 폴라는 그런 엘리엇을 기다리는 사람으로만 비치는 엔딩이 썩 맘에 들지는 않는다. 언젠가 폴라에게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어나지 않은 일까지 미리 걱정할 필요가 있을까? 지금 행복하면 된 거지! 아! 그리고 폴라의 딸 역을 맡은 퀸 커밍스의 차진 연기를 보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


[3월 11일] 웨딩 싱어 The Wedding Singer, 1998


감독 프랭크 코라치 Frank Coraci

각본 팀 헐리 Tim Herlihy

출연 애덤 샌들러 Adam Sandler, 드류 배리모어 Drew Barrymore, 크리스틴 테일러 Christine Taylor

로비는 결혼 피로연에서 노래를 부르는 웨딩 싱어로, 결혼을 일주일 앞두고 있다. 줄리아는 피로연 홀에서 일하는 웨이트리스로, 남자 친구 글렌이 준 반지를 2년째 끼고 있지만, 그가 언제 결혼 프러포즈를 할지는 알 수 없다. 두 사람은 한 결혼 피로연에서 우연히 대화를 나누게 되고, 로비는 줄리아의 결혼식에서 노래를 해주기로 약속한다. 일주일 뒤, 로비의 결혼식. 그러나 신부 린다는 나타나지 않고, 로비는 그녀가 결혼식에 오지 않을 거란 소식을 전해 듣는다. 그날 오후, 린다는 로비를 찾아오고, 자신은 6년 전 멋진 밴드의 리드 보컬이었던 로비를 사랑했던 거고, 누나네 집 지하실에 살면서 웨딩싱어를 하고 있는 현재의 로비를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한다. 상심한 로비는 며칠 동안 방에 갇혀 지내고, 다른 피로연을 망쳐버리기도 한다. 반면, 줄리아는 글렌으로부터 청혼을 받고 그와 함께 결혼 준비를 시작하려 하지만, 그는 모든 준비를 줄리아에게 맡긴다. 줄리아는 우연히 로비로부터 결혼식 꽃을 맡아줄 곳을 추천받고, 로비에게 결혼식 준비를 도와줄 것을 부탁한다.


대충 짐작이 되겠지만, 로비와 줄리아는 결혼식을 함께 준비하면서 서로에 대한 감정을 깨닫게 된다. 결혼식 날 바람을 맞은 로비는 자신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린다에게서 현재 자신의 삶을 부정당한다. 줄리아는 오래 사귄 남자 친구 글렌으로부터 청혼을 받지만, 그가 정말 어떤 마음인지는 알지 못한다. 로비와 줄리아는 둘 다 오랫동안 각자의 연인을 만났지만, 각자의 연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지 못했고, 심지어 자신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두 사람은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에게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이 무엇에 즐거워하고 행복해하는지 알아간다. 그 과정이 애덤 샌들러와 드류 배리모어라는 두 배우를 통해 전개되는 것이 재미있다. '첫 키스만 50번째'라는 영화에서도 둘의 케미가 돋보였지만, 왠지 이 영화에서의 둘의 케미가 더 기분 좋다. 보라색 섀도를 바른 드류 배리모어의 앳된 얼굴과 바보 같은 순진함이 묻어 있는 애덤 샌들러의 얼굴이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만든다.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다. 우리는 각자에게 맞는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해 그를 만날 때까지 여러 방황을 하지만, 그를 만나게 되면 반드시 그를 알아보게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3월 12일] 신의 나라 God's Own Country, 2017


감독 프랜시스 리 Francis Lee

각본 프랜시스 리 Francis Lee

출연 조쉬 오코너 Josh O'Connor, 알렉 세카레아누 Alec Secăreanu, 이안 하트 Ian Hart, 젬마 존스 Gemma Jones

요크셔의 한 농장. 새벽빛이 밝아오고 죠니는 화장실에서 속을 게워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창백하고 냉담한 그의 얼굴. 아래층으로 내려가 우유를 벌컥벌컥 들이켠 그는 어젯밤 왜 그리 늦게 들어왔냐며 한 번 더 옷에 토해 놓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할머니의 잔소리를 뒤로 하고 집을 나선다. 그리고는 양들의 울타리를 확인하고, 임신한 소를 확인하고, 소 한 마리를 끌고 경매에 나간다. 소를 팔고 나서 그가 한 일은 경매장 식당에서 눈이 맞은 남자와 잠깐의 섹스를 즐기는 것. 섹스 후 남자가 맥주 한 잔을 제안해도 그는 단호하게 'No'라 말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돌아간 집에서 그를 기다리는 것은 아버지의 꾸중이다. 그가 경매에 나간 사이 소가 새끼를 낳을 때가 되었고, 뇌졸중으로 몸이 불편해진 아버지가 대신 송아지를 받았다가 일이 잘못된 것. 저녁이 되고 죠니는 아버지가 농장일을 위해 임시 고용한 노동자를 데리러 나간다. 루마니아에서 온 게오르그를 태워다 속소로 쓸 카라반에 데려다준 죠니. 그는 게오르그를 집시라 부르며 그를 무시하고 퉁명스럽게 군다. 양들이 머무는 곳의 울타리도 고치고 새끼 낳을 양들도 돌보아야 해서 두 사람은 함께 며칠 동안 집을 떠나 방목장 근처에 머물게 된다. 아직 봄이라고 하기엔 황량하기만 한 요크셔의 대자연 속에서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를 대면하게 된다.


사실, 처음 죠니를 맞닥뜨리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얼굴은 핏기 하나 없이 창백한데 시종일관 무표정하고, 밤새 술에 절어 들어와서는 토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섹스를 즐기지만 상대방을 알려고 하지는 않는다. 그는 마치 감정을 무디게 만들기 위해 몸을 죽도록 혹사시키는 사람 같아 보인다. 휴가를 맞아 마을에 돌아온 대학생 친구와의 대화를 통해 유추해 보면, 죠니는 원래 재미있고 활발한 아이였으나,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시고 몸을 자유롭게 쓰지 못하게 되면서 대신 농장일을 맡게 되었고, 시골 농장에 갇혀 젊음을 보내는 것이 그를 갑갑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 그런 그에게 게오르그가 찾아온다. 그는 타국에서 온 이민 노동자이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경험과 자신감이 있다. 그는 양의 새끼를 받아내고, 약하게 태어난 새끼 양을 살리고, 양들의 울타리를 보수한다. 죠니의 다친 손바닥을 돌봐주고, 그에게 장갑을 벗어준다. 그리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교감하는지 가르쳐준다. 죠니는 게오르그를 통해 그저 다른 사람과의 관계 가운데 자신의 욕구만을 충족시키던 것에서 벗어나 상대를 만지고 느끼고 알아가는 것을 배운다. 처음 봤던 죠니의 얼굴과 영화 마지막 부분에서 게오르그를 찾아가 "Come back with me"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너무나 달라져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매 장면을 온도로 계산한다면, 이 영화보다 그 차이가 큰 영화는 없을 것이다.

죠니 역을 맡았던 조쉬 오코너는 그리스의 코르푸에서 'The Durrells'를 찍는 중에 영화 스크립트의 몇 장면을 찍어 보내 오디션을 대신했다고 한다. 조쉬의 연기를 본 프랜시스 리 감독은 그의 요크셔 악센트를 듣고는 드디어 요크셔 지역 출신의 연기자를 찾았다며 좋아했는데, 사실 조쉬는 요크셔 출신이 아니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티모시 샬라메와 아미 해머가 촬영 몇 주 전부터 함께 어울리며 친해졌던 것과 달리, 이 영화의 조쉬와 알렉은 각자 다른 농장, 조쉬는 실제 영화 촬영 장소였던 존의 농장에서, 그리고 알렉은 감독인 프랜시스 리의 부모님 농장에서 농장일을 배웠다고 한다. 프랜시스 리의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는 선댄스 등 많은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리고 작년, 프랜시스 리의 두 번째 장편 영화인 '암모나이트'가 만들어졌다. 

'God's own country'라는 말은 영국 요크셔 지방을 언급할 때 자주 사용된다. 신이 자신을 위해 만든 아름다운 곳, 또는 신이 사랑할 만큼 아름다운 곳을 일컫는다. 영화에서 게오르그는 요크셔 풍경을 바라보며 아름답지만 외로운 곳이라고 말한다. 죠니의 삶이 그렇지 않았나 싶다. 아름다울 수 있지만, 외로움만 간직하고 살던 삶. 그 삶에 게오르그가 걸어 들어와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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