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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Mar 08. 2021

3월을 위한 영화 31편 07

3월 20일 - 22일: Here's to Diane

봄은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나문희 여사처럼 앞으로의 삶에 봄을 얼마 남겨두지 않았든, 게이브나 로즈메리처럼 앞으로의 인생에 수많은 봄을 남겨두었든, 누구나 봄을 누리고 싶어 한다. 사랑도 그렇다. 수많은 사랑의 기회를 남겨두었든 그렇지 않든 사랑은 그 자체로 누구에게나 소중하다. 첫사랑이 있는가 하면 여러 번의 경험 끝에 얻은 끝사랑도 있는 법이다. 소년, 소녀들의 어설프고 서툴지만 그래서 미소 짓게 되는 사랑이야기가 있는가 하면, 노련하면서도 어딘지 서툴러서 재미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사랑이야기도 있다.


몇 해 전 '북클럽(Book Club, 2018)'이란 영화를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왜 모든 시니어 로맨스엔 다이안 키튼(Diane Keaton)이 있는 걸까? 시니어 로맨스를 소재로 한 영화 자체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왜 항상 그녀가 여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것일까?

다이안 키튼은 1946년 1월, 미국 LA에서 태어났다.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하였으나, 맨해튼에서 경력을 쌓고자 중간에 학교를 그만두었다. 이후 뉴욕에서 연극으로 연기활동을 시작한 키튼은 우디 앨런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Play it again, Sam)'으로 토니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녀가 연기자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72년 영화 '대부(Godfather, 1972)'에 알 파치노의 상대역인 '케이 아담스'로 출연하면서부터였다. 이후 우디 앨런의 영화들에 출연하며 '애니 홀(Annie Hall, 1977)'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으며 지금까지 꾸준히 연기활동을 하고 있다.

그녀는 그동안 우디 앨런, 워렌 비티, 알 파치노 등과 사귄 적이 있었는데, 영화 '대부 3(Godfather Part 3, 1990)'의 촬영을 마친 후 알 파치노와 헤어진 이후로는 특별히 언급된 연애는 없었다. 아직까지 결혼은 하지 않았으며, 96년과 2001년에 각각 딸과 아들을 입양했다.

유독 시니어 로맨스에 자주 등장하는 다이안 키튼, 어떤 이유가 있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분석할까 궁금하여 인터넷 자료들을 뒤져보았지만, 이렇다 저렇다 글로 쓰는 것보다는 아래의 영화들을 보면서 직접 판단하는 것이 가장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역할들이 어딘지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안에서 그녀가 가진 매력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3월 20일] 사랑할 때 버려야 할 아까운 것들 Something's Gotta Give, 2003


감독 낸시 마이어스 Nancy Meyers

각본 낸시 마이어스 Nancy Meyers

출연 다이안 키튼 Diane Keaton, 잭 니콜슨 Jack Nicholson, 키아누 리브스 Keanu Reeves, 어맨다 피트 Amanda Peet, 프랜시스 맥도먼드 Frances McDormand

음반사를 운영하고 있는 해리는 63살로, 30살 미만의 여성은 사귀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크리스티 옥션에서 알게 된 경매사 마린과 주말 데이트를 즐기기 위해서 그녀의 해변 별장으로 여행을 간다. 그러나 단 둘이서 오붓한 시간을 즐기려던 계획은 마린의 엄마 에리카와 이모 조이가 나타나며 깨지게 된다. 에리카는 유명 극작가로, 20년의 결혼생활을 정리하고 이혼한 상태다. 네 사람은 매우 불편하고 어색한 저녁식사를 끝낸다. 그리고 그때 방에서 에리카를 급하게 찾는 마린의 목소리가 들리고, 마린의 방에 간 에리카는 심장마비로 쓰러져 버둥거리는 해리를 발견한다. 병원으로 이송된 해리는 하루 동안 입원을 하고 퇴원을 하려고 하지만, 병원 앞에서 다시 한번 쓰러진다. 병원에 다시 입원하기 싫다는 해리에게 의사 줄리안은 한 가지 제안을 한다. 병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머문다면 입원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결국 해리는 해변 별장에 에리카와 함께 남겨진다.


벌써 몇 번을 다시 보는지 모르겠지만, 언제 보아도 이토록 나를 즐겁게 하는 영화는 없다. 나는 낸시 마이어스의 영화를 매우 사랑한다. 패어런트 트랩(The Parent Trap, 1998), 로맨틱 홀리데이(The Holiday, 2006), 사랑은 너무 복잡해(It's complicated, 2009), 인턴(The Intern, 2015) 등 그녀의 영화는 보는 사람을 매우 기분 좋게 만든다. 특히 이 작품은 대사가 맛깔스럽고 그 대사를 내뱉는 배우들의 톤에도 찰기가 있다. 큭큭대며 웃게 만들다가도 끝날 땐 잔잔한 미소를 머금게 만든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젊은 여자만 만나던 사업가 남자와, 남편과의 이혼으로 싱글이 되었지만 여전히 하는 것은 그저 집 안에서 글 쓰는 게 다인 성공한 여자의 이야기. 그런 두 사람의 이야기가 웃긴 에피소드. 날카롭지만 위트 있는 대사와 함께 버무려져 있다. 여기에 다이안 키튼과 잭 니콜슨이라는 두 배우가 등장한다. 영화를 보다 보면 이 두 사람 외에 누가 해리 샌본과 에리카 배리를 이보다 더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봄을 기대하기 힘든 하루를 보냈다면 오늘 꼭 이 영화를 보라. 당신은 충분히 웃게 만들어줄 테니까.


[3월 21일] 산타모니카 인 러브 And So It Goes, 2014


감독 롭 라이너 Rob Reiner

각본 마크 앤드러스 Mark Andrus

출연 다이안 키튼 Diane Keaton, 마이클 더글라스 Michael Douglas, 스털링 제린스 Sterling Jerins

오렌은 이웃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전혀 없는 공인중개사이다. 2년 동안 암에 걸린 아내를 돌보다 그녀를 떠나보내고 지금은 혼자 살고 있다. 이웃들은 그에 대한 불만이 많다. 조그만 양보와 배려를 부탁하는데도 그는 늘 외면하기 때문이다. 오렌의 옆집에는 남편과 사별한 리아가 살고 있다. 리아는 지역 식당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가수이다. 어느 날, 연락을 끊고 지냈던 아들 루크가 오렌을 찾아온다. 그리고는 자신이 감옥에 가게 되었으니 자신의 딸을 9개월 동안만 맡아달라고 한다. 아들에게 딸이 있단 것조차 모르고 있었던 오렌은 갑작스러운 부탁에 거절을 하지만, 딸을 맡길 곳이 없었던 루크는 오렌의 집에 딸과 강아지를 맡기고 간다. 졸지에 손녀와 강아지까지 떠맡게 된 오렌. 손녀를 보고도 냉담하게 서있는 오렌, 그리고 그런 할아버지와 떠나는 아빠 사이에서 울고 있는 손녀 사라를 본 리아는 사라를 위로하기 위해 그녀를 자신의 집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오렌은 감정을 최대한 절제하는 사람이다. 어찌 보면 감정이 아예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반면 리아는 감정 과잉의 사람이다. 노래를 부르다가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느라 노래를 끝까지 마무리하지 못하기도 한다. 이토록 다른 두 사람, 그저 이웃일 뿐이었던 두 사람 사이에 오렌의 손녀인 사라가 나타나며 두 사람은 변화를 겪는다. 6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온 두 사람이지만, 여전히 그들의 삶에는 새로운 것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고, 결혼생활을 마무리해도, 사랑을 시작할 봄은 다시 돌아온다. 


[3월 22일] 햄스테드 Hampstead, 2017


감독 조엘 홉킨스 Joel Hopkins

각본 로버트 페스팅어  Robert Festinger

출연 다이안 키튼 Diane Keaton, 브렌든 글리슨 Brendan Gleeson, 레슬리 맨빌 Lesley Manville, 제임스 노튼 James Norton

남편과 사별한 지 1년. 에밀리는 남편이 남겨놓은 빚이며 고지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채 국세청에서 오는 우편물을 무시하며 살고 있다. 아들이 일 때문에 해외로 갈 수도 있다고 하며 엄마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고 하자, 그녀는 아파트 다락 창고에 올라가 짐을 정리한다. 짐을 정리하던 중 망원경을 발견한 그녀는, 창문을 열고 멀리 햄스테드 히스 숲을 바라보다 물가에서 수영을 하는 도널드를 발견한다. 그리고 그가 마치 자연인처럼 숲 속 오두막에 홀로 살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한편 도널드는 오래된 병원 건물을 없애고 그 자리에 고급 아파트를 지으려는 건설사로부터 퇴거명령서를 받지만 계속 이를 무시한다. 며칠 뒤 에밀리는 다시 다락에 올라갔다가 도널드의 오두막에 사람이 침입하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한다. 이후 그녀는 남편의 묘지에 갔다가 우연히 그를 만나게 되고 두 사람은 처음으로 인사를 나눈다. 도널드는 며칠 전 위험에 처한 자신을 도와준 것이 에밀리임을 알고는 그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고 두 사람은 그가 준비한 저녁을 함께 먹으며 서로를 알아간다. 그러나 생계를 이어갈만한 직업도 없고 특별히 하는 일도 없는 자신을 비판하는 듯한 도널드의 말에 그녀는 마음이 상한 채 돌아간다. 무엇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한 에밀리는 도널드의 집을 구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한다.


런던 북쪽에 위치한 햄스테드 지역을 배경으로 자연인과 같은 삶을 사는 남자와 고급 아파트에 살고 있는 미망인 여자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둘 다 자신만의 문제를 안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외면한 채 그저 미루기만 한다. 그러다 두 사람은 함께 문제를 마주한다. 다이안 키튼과 브렌든 글리슨이 그렇게 잘 어울리는 커플은 아니지만, 브렌든 글리슨에게 주어진 '자연인'이라는 독특한 설정이 흥미를 일으킨다. 여타의 로맨스와는 다른 데이트가 펼쳐지기도 하고, 색다른 풍경이 펼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다름없는 로맨스의 설렘과 즐거움이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확실히 다이안 키튼에게는 로맨스를 이끌어 가는 특별한 매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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