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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Mar 08. 2021

3월을 위한 영화 31편 08

3월 23일 - 25일: Every Jack has his Jill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미지의 길을 걸어간다. 각자의 삶은 각자의 것이고, 한 번도 미리 살아본 삶이 아니기에 어느 것도 똑같은 것이나 반복되는 것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알 수 없는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이고, 그래서 함께할 누군가를 찾는 건지도 모르겠다. 여기 두 사람이 있다. 프랭키와 쟈니, 리와 에드워드, 베니와 루시, 그리고 준과 샘. 누구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이해해주지도 않을 것 같았는데, 그런 나를 알아주고 안아줄 누군가가 거기 있었다. 이 얼마나 큰 위로인가. 혼자였던 겨울을 지나 함께 봄을 맞아가는 두 사람의 이야기. 함께한다고 겨울이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맞잡을 손 정도는 생긴 거니까.



[3월 23일] 프랭키와 쟈니 Frankie and Johnny, 1991


감독 개리 마샬 Garry Marshall

각본 테렌스 맥널리 Terrence McNally 

출연 알 파치노 Al Pacino, 미셸 파이퍼 Michelle Pfeiffer

세례식에 대모로 참석하느라 고향에 갔던 프랭키는 다시 뉴욕으로 돌아가 웨이트리스로 일하는 아폴로 식당으로 다시 출근한다. 그날, 18개월 동안의 복역 후 출소한 쟈니는 신문에 있는 요리사 구인 광고를 들고 아폴로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 주인은 쟈니를 맘에 들어하고 쟈니는 다음 날부터 요리사로 근무한다. 쟈니와 함께 일하게 된 프랭키는 자꾸만 쟈니에게 시선이 간다. 어느 날,  손님 중 한 명이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고, 프랭키는 상황을 침착하게 정리한다. 이를 인상 깊게 본 쟈니는 프랭키에게 데이트를 신청하지만 퇴짜를 맞는다. 한편 식당에서 15년 간 일했던 헬렌이 몸이 좋지 않아 조퇴한 지 며칠 만에 사망 소식이 전해지고, 외로이 죽어간 헬렌의 모습에 식당의 웨이트리스 세 명은 남의 얘기 같지 않아 마음이 쓰인다. 프랭키는 헬렌의 장례식에 나타난 쟈니를 보게 되고, 후에 그에게 묻는다. 만난 적도 없는 헬렌의 장례식에서 왜 눈물을 보였는지. 프랭키는 쟈니의 대답에 조금은 당황하면서도 인상적으로 받아들인다. 식당 직원 중 하나인 피터는 처음으로 할리우드에 시나리오를 팔게 되어 뉴욕을 떠나게 된다. 피터의 송별 파티가 있던 날, 쟈니는 프랭키에게 파티에 함께 가자고 하고, 그녀의 아파트로 찾아가 송별 파티에 함께 간다. 파티 후 쟈니는 프랭키를 꽃시장에 데려가고 그곳에서 두 사람은 처음으로 키스를 한다. 


쟈니는 외로운 사람이다. 전처와 두 아이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 행복한 가정을 꾸렸지만, 그는 출소 후 작은 아파트에 홀로 살며 감옥 생활 동안 배운 요리 기술로 먹고 산다. 가격을 깎아주겠다며 자신에게 접근해 온 길가의 창녀에게 그가 원한 것은 그저 스푼 자세로 자신을 뒤에서 꼭 안아주는 것뿐이다. 프랭키는 상처 받은 사람이다. 과거의 관계들이 그녀에게 심어준 것은 두려움과 제자리걸음, 혹은 뒷걸음질이다. 프랭키가 두려움으로 매번 망설이고 뒷걸음질하려 할 때마다 쟈니는 포기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켜나간다. 때론 프랭키를 겁먹게 하기도 하지만, 자신의 사랑에 확신을 보여준다. 두 사람은 그렇게 두 사람 사이의 공간을 좁혀 나가며 다시 사랑을 시작한다. 노래 '프랭키와 쟈니'는 한때 연인이었던 쟈니를 프랭키가 살해하는 것으로 끝이 나지만, 여기, 현실의 프랭키와 쟈니는 과거를 뒤로한 채 그들만의 이야기를 써나간다.


[3월 24일] 세크리터리 Secretary, 2002


감독 스티븐 셰인버그 Steven Shainberg

각본 에린 크리시다 윌슨 Erin Cressida Wilson

출연 매기 질렌할 Maggie Gyllenhaal, 제임스 스페이더 James Spader

여동생의 결혼식 날, 리는 시설을 나와 집으로 향한다. 결혼식에서 아버지는 여전히 술에 취해 있다. 다시 돌아온 집은 이전과 변함이 없고, 그녀는 불안한 모습으로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 날카로운 물건들이 가득한 가방을 꺼내 놓는다. 그리고 그중 하나를 집어 자신의 허벅지에 상처를 내려고 한다. 리는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며 괴로움을 견뎌냈고, 얼마 전, 실수로 심한 상처를 내 그동안 시설에서 생활했었다. 그러나 여전한 부모님의 다툼을 보면서 리는 다시 불안감을 느끼고 쓰레기통에 내다 버렸던 자해용 물건들을 다시 가지러 간다. 그러다 쓰레기통에서 구직 관련 신문을 발견하고, 비서를 구한다는 변호사 사무실에 면접을 보러 간다. 변호사인 에드워드는 리가 맡을 일이 타자기를 이용해 타이핑을 하는 일, 전화받는 일 등 매우 지루한 일이라 설명하고, 리는 지루한 일을 좋아한다며 기꺼이 일하겠다고 한다. 리는 첫 직장을 구한 것에 기뻐하며 자신의 일에 조금씩 적응해 나간다. 어느 날, 에드워드는 리가 사무실에서 자해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리가 빨래방에서 고등학교 동창인 피터와 함께 있는 것을 본 이후부터 리의 타이핑에 오타가 있는지를 하나씩 지적하기 시작한다. 비서 일에 잘 적응하고 있던 리는 에드워드의 지적에 스트레스를 받고 불안해한다. 에드워드는 그런 리를 자신의 방으로 불러 그녀의 자해에 대해 묻고 다시는 그러지 말라며, 매일 엄마의 차를 타고 퇴근하던 리에게 오늘부터는 혼자서 걸어서 집으로 가라고 한다. 공원을 가로질러 집으로 향하던 리는 혼자서 산책을 한 것이 처음임을 깨닫고, 에드워드에게 묘한 감정을 느끼게 된다. 리의 타이핑에서 또다시 실수를 발견한 에드워드는 리를 사무실로 부르고, 그녀에게 책상에 엎드려 타이핑한 문장들을 소리 내어 읽으라고 한다. 리가 책상에 엎드려 타이핑한 문장들을 읽자 에드워드는 그의 손으로 리의 엉덩이를 세게 때리기 시작한다.


늘 자신의 몸 여기저기에 생채기를 내는 리는 부모님에게는 대하기 어려운 존재이다. 그녀의 엄마는 그녀가 더 이상 자해하지 못하도록 부엌에 있는 날카로운 도구들을 숨겨두고, 그녀가 회사에서 잘하고 있나 몰래 회사 앞에 와서 기다리기도 한다. 그녀의 마음에 귀 기울이고자 하지 않고, 그저 그녀를 감시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다. 리는 마음의 괴로움을 외면의 상처로 드러내고, 그걸 통해서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상처가 낫는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다. 이런 리의 마음을 알아준 것이 에드워드이다. 에드워드 또한 비슷한 맥락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리의 행동을 보았을 때 그는 그녀의 마음을 알았던 것이다. 리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내면서 스스로가 살아있음을 확인한다면, 에드워드는 상대에게 상처를 가하며 자신의 존재를 느낀다. 두 사람의 행위는 대다수의 사람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보통 '변태'라는 말로 두 사람의 행위를 정의 내리기도 한다. 이 영화는 그런 고정된 시선을 살짝 돌리게 만든다. 그들을 그들의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되는 걸까?라고 묻는 것이다. 외로운 섬처럼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사이에 떠있던 리와 에드워드가 만들어 내는 사랑이야기는 그래서 특별하고 그래서 소중하다.


[3월 25일] 베니와 준 Benny & Joon, 1993


감독 제러마이아 체칙 Jeremiah Chechik

각본 배리 버먼 Barry Berman

출연 메리 스튜어트 매스터슨 Mary Stuart Masterson, 에이단 퀸 Aidan Quinn, 죠니 뎁 Johnny Depp, 줄리앤 무어 Julianne Moore

12년 전,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후 베니와 준은 단둘이 살고 있다. 베니는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며 정신병을 가지고 있는 준을 돌본다. 베니가 일하러 가 있는 동안 준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뒷마당의 꽃을 돌보기도 하지만, 가끔 그녀가 저지르는 일들은 그를 어렵게 만들고, 그는 데이트 신청조차 수락할 여유가 없다. 베니는 자신이 일하는 동안 동생을 돌봐줄 가정부를 두지만, 준의 돌발적인 성격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부는 없다. 그는 준을 데리고 친구들과 포커를 치러 갔다가 친구 마이크의 사촌인 샘을 떠맡게 된다. 읽을 줄도 모르고 쓸 줄도 모르는 26살의 샘은 버스터 키튼의 영화에 매료되어 있다. 베니는 샘에게 거실 소파를 내어주고, 샘은 그가 없는 동안 준을 돌보며 가정부 역할을 맡는다. 샘은 슬랩스틱으로 식당 사람들을 웃게 만들고, 다리미로 토스트를 굽고, 테니스 채로 감자를 으깨는 등 독특한 모습을 보인다. 준은 그런 샘을 맘에 들어한다. 어느 날, 준은 샘과 함께 동네 식당에 타피오카를 먹으러 가고, 그곳에서 일하는 루시를 집에 데려온다. 오빠인 베니까지 네 사람은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고, 베니는 루시에게 호감을 갖는다. 그러나 베니는 그의 복잡한 삶을 핑계로 루시와의 관계조차 지속시키지 못한다.


영화는 베니와 준의 이야기이고, 준과 샘의 이야기이며, 그리고 베니와 루시의 이야기이다. 하나뿐인 동생을 돌보아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자신의 삶을 그저 흘려보내고 있는 베니, 샘을 만나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고 그곳으로 한걸음을 내딛게 되는 준. 베니와 준의 세계는 샘과 루시를 만나면서 확장된다. 그리고 서로의 짝을 찾아간다.

영화를 보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신기한 모습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샘을 연기하는 죠니 뎁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지만, 에이단 퀸의 모습을 보는 것이 매우 즐거웠다. '플립'에서도 그랬지만, 자신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신하는 캐릭터가 찰떡처럼 잘 어울렸고, 동생을 돌본다는 것을 이유로 미루어 두었던 자신의 사랑을 찾아가는 과정이 설렜다. 그리고 무어라 딱히 말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90년대 영화가 주는 묘한 감성이 있는데, 그걸 맘껏 누릴 수 있는 영화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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