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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Mar 09. 2021

3월을 위한 영화 31편 09

3월 26일 - 28일: Dreams come true

꿈을 꾼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꿈만큼 삶에 의욕과 열정을 불어넣는 것이 또 있을까? 물론 좌절의 순간을 맛볼 수도 있다. 그러나 꿈을 꾸면서 좌절의 순간을 기대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나는 그렇다. 봄만큼 꿈이 이루어질 기다리기 좋은 계절은 없다고 생각한다. 나처럼 겨울엔 몸을 최대한 웅크리고 에너지 소비를 최소화하는 사람에게 봄이 온다는 것은 단순히 계절이 바뀌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나에게 봄이 온다는 것은 겨우내 아껴둔 에너지를 발산한다는 것이고, 무언가 미뤄두었던 행동을 취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봄이 되면 무언가 이루어질 것 같은 설렘이 가득해진다.

여기 꿈꾸는 세 사람이 있다. 소년은 춤을 추고 싶고, 소녀는 새로운 곳에서 새 삶을 이뤄가고 싶고, 여자는 남편을 떠나 자신만의 파이를 만들고 싶다.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설렘을 만끽하기에는 힘든 삶이지만, 그들은 살아간다. 그리고 그 꿈 앞에 선다.


[3월 26일] 브루클린 Brooklyn, 2015


감독 존 크롤리 John Crowley

각본 닉 혼비  Nick Hornby

출연 시얼샤 로넌 Saoirse Ronan, 이모리 코헨 Emory Cohen, 도널 글리슨 Domhnall Gleeson

1951년, 아일랜드의 작은 마을에서 엄마, 언니와 함께 살고 있던 에일리시는 더 나은 형편을 꿈꾸며 뉴욕으로 향한다. 그녀는 같은 아일랜드 출신 여성들이 살고 있는 하숙집에 머물며 백화점에서 점원으로 일한다. 그러나 홀로 대도시의 생활에 적응하기는 쉽지 않다. 백화점에서는 점원 일이 어색해서 손님과 데면데면하고, 집에서는 언니와 엄마에게서 온 편지를 붙들고 울며 고향을 그리워한다. 언니인 로즈의 편지를 받고 에일리시가 뉴욕에 올 수 있도록 도왔던 플러드 신부님이 향수병으로 힘들어하는 에일리시를 찾아온다. 그는 그녀를 브루클린 대학 야간 수업에 등록해 놓았다고 하며 그녀를 격려한다. 에일리시는 야간 대학에서 부기 수업을 듣고, 신부님과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면서 점점 생기를 되찾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아일랜드인 댄스파티에서 그녀는 이탈리아 출신의 청년 배관공 토니를 만나게 된다. 그날 함께 춤을 추던 두 사람은 데이트를 시작하고, 에일리시는 그렇게 새로운 삶에 적응해 간다.


처음 뉴욕으로 향하는 배를 타면서 에일리시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는 모르겠다. 무엇이 되었든 고향에서의 삶보다는 낫길 바랐겠지. 그녀가 꾸던 꿈은 대단하거나 큰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이야기를 나눌 누군가를 만나고, 그리고 결혼도 하고. 그런 평범하고 일상적인 꿈이지 않았을까. 영화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며 자신의 삶을 만들어 내는 에일리시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평범한 꿈이지만, 가족과 떨어져 새로운 환경에 홀로 적응하는 것은 외롭고 힘겹고 어쩌면 두려운 일이었을 것이다. 에일리시는 그 시간을 버티고 견디고 마침내 자신이 서 있는 곳이 꿈꿔오던 일상의 순간임을 깨닫게 된다.

새로운 삶을 만들어가는 에일리시를 보는 것도 기분 좋지만, 한 가지 더 기분 좋은 요소를 뽑자면, 토니와 에일리시의 사랑 이야기이다.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 조심스럽고 사랑스러워서 자꾸만 엄마 미소를 짓게 된다. 그저 같은 걸음으로 걷고 싶어 그녀를 기다리고, 그의 사랑한다는 말에 무어라 대답할지 몰라 망설이다 돌아가서는 한참을 고민하고, 사랑한다는 말도 조심스러워 나도 너와 같다고 말해버리는 두 사람의 모습이, 너무 많은 사랑 고백과 잠자리에 익숙한 영화들 속에서 이 영화를 반짝거리게 만들어 주었다.


[3월 27일] 빌리 엘리어트 Billy Elliot, 2000


감독 스티븐 달드리 Stephen Daldry

각본 리 홀 Lee Hall

출연 제이미 벨 Jamie Bell, 게리 루이스 Gary Lewis, 줄리 월터스 Julie Walters

1984년, 광부들의 파업이 계속되고 있는 영국의 더램. 11살 소년 빌리는 광부인 아버지와 형, 그리고 치매를 앓고 계신 할머니와 살고 있다. 빌리의 아버지 재키는 빌리를 동네 체육관에서 진행되는 복싱 수업에 보내지만, 빌리는 갑자기 체육관을 함께 사용하게 된 윌킨슨 부인의 발레 수업에 우연히 참여하게 된다. 그 후 그는 아버지 몰래 복싱 수업 대신 발레 수업에 계속 참여하고, 몇 달 후 이를 알게 된 아버지는 그에게 발레 수업을 금지시킨다. 빌리는 윌킨슨 부인의 집에 찾아가고, 그녀는 빌리를 데려다주는 길에 오랫동안 생각해왔던 계획을 그에게 말한다. 그것은 2주 후 뉴캐슬에서 있을 로열 발레 학교 오디션에 빌리를 보내는 것. 빌리는 아버지 때문에, 그리고 돈 때문에 안 된다고 하지만, 윌킨슨 부인은 빌리와 개인수업을 하기로 한다.


T. Rex의 Cosmic Dancer에 맞춰 침대 위를 날아오르며 등장하는 빌리 엘리어트. 그의 춤에 대한 열정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건 11살, 윌킨슨 부인을 만나면서부터이지만, Cosmic Dancer의 가사처럼 어쩌면 그는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춤을 추고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의 움직임에서 그것이 느껴지니 말이다. 그러나 그의 꿈을 이루는 길은 순탄하지 않았다. 빌리가 발레에 흥미를 느끼며 발레 연습을 하는 동안, 아버지인 재키는 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무리들을 향해 배신자라 소리치며 맞서고 있는 사람들 중에 있었다. 그리고 빌리가 발레 하는 소녀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을 봤을 때는 불같이 화가 난 모습이었다. 경제적인 상황, 남자 무용수에 대한 편견이 재키가 아들의 꿈을 헤아리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빌리가 열정을 다하여 춤추는 모습을 보았을 땐, 자신이 그 꿈을 이루어주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가 욕하던 '배신자'란 말이 자기 자신에게 돌아오더라도 그 모욕의 순간을 참을 각오를 하고, 11살짜리 아들의 꿈만은 꼭 지켜주고자 한다. 결국 빌리는 춤이 자신에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기회를 얻고, 꿈을 향한 길을 걸어간다. 그리고 그가 마침내 날아오르던 순간, 그의 꿈을 응원했던 모두는 그와 함께 날아오른다.

영화는 감독이었던 스티븐 달드리가 직접 연출하고 엘튼 존이 곡을 쓴 뮤지컬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2005년 런던의 빅토리아 팰리스 극장에서 초연되었고, 2016년 4월까지 같은 장소에서 공연하였다. 현재는 뮤지컬 해밀턴의 극장이 되었지만, 언젠가 돌아와 꼭 빌리의 'Electricity'를 다시 한번 보여주면 좋겠다.


[3월 28일] 웨이트리스 Waitress, 2007


감독 에이드리엔 셸리 Adrienne Shelly

각본 에이드리엔 셸리 Adrienne Shelly

출연 케리 러셀 Keri Russell, 네이던 필리온 Nathan Fillion, 에이드리엔 셸리 Adrienne Shelly, 앤디 그리피스 Andy Griffith

제나가 하고 싶은 것은 단 하나, 파이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존슨빌 파이 대회에 나가서 우승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녀에겐 어린아이 같은 남편이 있다. 뭐든 비유를 맞춰주어야 하고,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번 돈까지 모두 그에게 갖다 받쳐야 한다. 그래서 그녀는 언젠가부터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돈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그녀가 그토록이나 싫어하는, 끔찍이도 싫어하는 남편의 아이를 가지고 말았다. 그녀는 남편에게 말하지 않고 의사를 찾아간다. 그러나 자신이 태어난 후로 늘 찾았던 의사는 갑작스럽게 일을 그만두고 코네티컷에서 온 한 남자 의사 닥터 포매터가 들어온다. 그리고 그는 제나가 임신 6주임을 확인해 준다. 며칠 후 경미한 출혈이 있었던 제나는 닥터 포매터에게 전화를 한다. 그는 제나에게 다음날 오전 7시까지 병원에 오라고 하고, 병원에 간 제나에게 경미한 출혈은 지극히 정상적인 임신 초기 증상이라고 알려준다. 제나는 아침 일찍부터 자신을 병원에 불러서 전화로도 할 수 있는 말을 하는 닥터 포매터가 이상하게 느껴져 그에게 불편함을 호소하고, 그는 제나의 반응에 매우 미안해한다. 제나는 화를 내고 병원을 나오지만, 가방을 두고 온 것을 깨닫고 다시 병원으로 향한다. 그리고 그때 제나가 두고 온 가방을 들고 나오는 닥터 포매터와 마주치고, 둘은 갑작스럽게 열정적인 키스를 나눈다.


제나는 모든 순간 파이를 만든다. 자신이 원치 않는 임신을 했다는 걸 알았을 때,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아기를 생각할 때, 닥터 포매터와 처음 키스를 한 날 남편에 대한 걱정을 할 때. 그녀는 머릿속으로 모든 순간에 맞는 파이를 만든다. 그것은 그녀의 답답한 현실을 헤쳐나가게 만드는 유일한 탈출구이다. 결혼 이후로 변해버린 그녀의 남편은 그녀를 두려움에 떠는 외로운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런 그녀에게 찾아온 닥터 포매터와의 관계는 그녀를 위로해 주고, 기쁘게 만들어 준다. 그것이 옳지 않은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그 유혹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던 아이가 태어나던 그 순간, 그녀는 과감하게 새 삶을 선택한다. 그녀가 그리던 꿈은 그리 멀리 있지 않았던 것이다.

영화는 감독인 에이드리엔이 딸아이를 임신했을 때 썼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영화 개봉 전 그녀가 살해되는 일이 벌어져 본인의 영화 프리미어에 참석할 수 없었다. 영화는 2015년 사라 브레일레스(Sara Bareilles)가 작곡한 동명의 뮤지컬로 재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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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9일 - 31일: Screwball Come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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