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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Mar 10. 2021

3월을 위한 영화 31편 10

3월 29일 - 31일: Screwball Comedy

봄에 가장 어울리는 장르가 무엇이냐 묻는다면 주저 없이 '로맨틱 코미디'라고 대답할 것이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 가며 어슴푸레한 빛을 만들고, 선선하지만 어딘가 따뜻함을 머금은 듯한 바람이 불어올 때 왠지 설레고 기분이 좋아지는 걸 느껴본 적이 있는가? 봄날의 늦은 오후나 저녁때가 되면 어김없이 그런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그런 느낌을 가장 잘 전달하는 영화들이 바로 로맨틱 코미디들이다. 특히나 스크루볼 코미디로 불리는 고전 로맨틱 코미디들은 묵은 시간은 오래되었지만, 만들어진 당시를 생각하면 신선도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 만들어지는 로맨틱 코미디보다 더 재미있고 더 로맨틱하다.

스크루볼 코미디는 로맨틱 코미디의 하위 장르로, 1930년 대에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40년 대에 크게 유행하였다. 보통 로맨틱 코미디가 남녀 주인공의 사랑의 여정과 그 결실에 중점을 둔다면, 스크루볼 코미디는 그것을 큰 흐름으로 가져가되, 빠른 사건의 전개, 이어지는 소동, 남녀 주인공의 재치 있는 대사 등을 통해 관객을 사로잡는다. 이제 소개할 세 작품 중 '어느 날 밤에 생긴 일'과 '마이 맨 갓프리'에는 초기 스크루볼 코미디의 주요 소재였던 사회적 계급차가 있는 남녀가 등장한다. 부자 여자와 평범하거나 혹은 가난한 남자가 만나 소동을 벌이며 이어지는 이야기들이다. '필라델피아 스토리'는 그 이후 생겨난 재혼 코미디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세 작품을 보다 보면 세 여주인공의 말투에서 스크루볼 코미디의 특징을 절로 찾게 될 것이다.

이제 지금으로부터 약 80년 전에 만들어진 로맨틱 코미디가 가진 즐거움과 설렘을 한 번 만나보자.


[3월 29일] 어느 날 밤에 생긴 일 It Happened One Night, 1934


감독 프랭크 카프라 Frank Capra

각본 로버트 리스킨 Robert Riskin

출연 클라크 게이블 Clark Gable, 클로데트 콜베르 Claudette Colbert

부잣집 딸인 엘런은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킹 웨슬리와 결혼을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결혼 취소 소송을 내고 딸을 보트에 가둬둔 채 아무 데도 가지 못하게 한다. 이에 엘런은 단식을 하며 아버지에 맞서고, 딸의 반항에 감정이 격해진 아버지는 엘리의 뺨을 때린다. 엘런은 결국 바다로 뛰어들어 홀로 수영으로 육지에 도착해 뉴욕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그리고 버스에서 신문기자 피터를 만난다. 그는 방금 전 신문사에서 해고를 당한 상태다. 버스가 잭슨빌에서 30분 동안 엘런은 버스를 놓치고, 터미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피터를 발견한다. 피터는 버스 자리에서 주운 엘런의 차표를 그녀에게 전달하고, 그녀에게 다시 마미애미로 돌아가라고 한다. 그는 신문을 통해 엘런이 누구인지, 그녀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엘런은 오히려 자신이 뉴욕에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하고, 피터는 돈으로 모든 걸 해결하려고 하는 무례함에 그녀의 부탁을 거절한다. 그날 저녁, 두 사람은 잭슨빌에서 출발하는 뉴욕행 버스에서 다시 만나고, 폭우 때문에 다리가 끊겨 근처 캠핑장에서 하룻밤을 묵게 된다. 그리고 피터는 엘런에게 독점 기사 제공을 조건으로 그녀의 뉴욕행을 돕겠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바로 '클라크 게이블'이다. 클라크 게이블이 아니었다면 누가 피터 원이라는 캐릭터를 이토록이나 잘 살릴 수 있었을까? 짜증내고 화내면서도 자상하게 챙겨주고, 여자와의 말다툼에서도 지지 않을 만큼 말발을 세우고, 냉정한 것 같으면서도 서글서글 능글능글 사람을 웃게 만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는 듬직함까지. 그런데 잘생기기까지 했다. 그냥 피터 원이 클라크 게이블인 듯, 클라크 게이블이 피터 원인듯한 느낌이랄까. 클로데트 콜베르와 클라크 게이블의 케미 보다는 클라크 게이블이 다 해버린 듯한 느낌이기도 하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1934년도 영화가 얼마나 현재의 감성하고 맞닿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저 역사의 한 귀퉁이를 맞닥뜨리는 것처럼 경험 삼아 보는 거지 라고 생각했는데, 현대의 어느 로맨틱 코미디와 비교해도 전혀 뒤처지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은 거겠지만. 이 영화는 확실히 재미있고, 웃기고, 사랑스럽다. 특히 클라크 게이블의 엄지를 이용한 3단계 히치하이킹은...!! 오늘 하루를 즐겁게 마무리하고 싶다면 반드시 보아야 할 영화이다.


[3월 30일] 필라델피아 스토리 The Philadelphia Story, 1940


감독 조지 큐커 George Cukor

각본 도널드 오그덴 스튜어트  Donald Ogden Stewart

출연 캐서린 헵번 Katharine Hepburn, 캐리 그랜트 Cary Grant, 제임스 스튜어트 James Stewart, 존 하워드 John Howard

필라델피아 명문가의 딸 트레이시는 어렸을 때부터 함께 자랐던 덱스터 헤이븐과 결혼했지만, 2년 전 이혼했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자수성가한 사업가 조지 키트리지와의 재혼을 앞두고 있다. 한편, 타블로이드 잡지인 '스파이'에서는 필라델피아 최고의 이슈가 될 수 있는 트레이시의 결혼을 취재하고자 덱스터의 도움을 받아, 단편 작가인 맥콜리와 사진기자 엘리자베스를 결혼식에 가짜 신분으로 잠입시킨다. 덱스터는 결혼식 하루 전 맥콜리와 엘리자베스를 데리고 트레이시의 집에 나타나, 그들을 트레이시의 오빠인 주니어스의 친구들이라 소개한다. 그러나 트레이시는 이에 속아 넘어가지 않고, 결국 덱스터는 '스파이'에서 그녀 아버지의 불륜 이야기를 폭로하려고 한다면서, 그걸 막기 위해 그들을 데리고 왔다고 얘기한다. 이에 트레이시는 어쩔 수 없이 맥콜리와 엘리자베스를 머물게 한다. 그렇게 세 남자와 트레이시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트레이시는 매우 매력적인 여성이다. 부자인 데다 아름답고 날씬하고 똑똑하고 자기 관리에도 뛰어나다. 그래서 남자들은 그녀를 여신이라 여기며 흠이 없는 고결한 존재로 우러러본다. 그런 그녀도 남자들의 그런 시선을 즐기는 것 같다. 그러나 행복하게 결혼했다가 싸우면서 헤어진 덱스터와의 사랑이 결국은 그녀의 마음과 생각을 바꿔놓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 덱스터 외에 조지와 맥콜리라는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일이 벌어지는 것은 단 하루 사이이다. 그 사이에 트레이시는 자기 자신의 고집스러움과 다른 사람에 대한 엄격한 기준을 깨닫게 되고 마음을 바꾸게 된다. 빠른 시간 안에 사건들이 흘러가기 때문에 지루할 틈은 없지만, 저렇게 하루 만에 깨달을 수 있는 것을 왜 이혼하기 전에는, 지난 2년 간은 깨닫지 못했을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캐서린 헵번의 말투와 목소리가 은근히 거슬리기도 하고... 하지만 캐리 그랜트는 덱스터라는 캐릭터에 굉장히 잘 어울렸다. 신사다운 반듯함에 인간적인 면모가 더해진 캐릭터를 그만큼 잘 살리는 배우는 없는 것 같다. 제임스 스튜어트는 맥콜리라는 캐릭터에 어울리긴 했지만, 왠지 그 역할을 하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영화의 제작사인 MGM은 캐서린 헵번의 출연이 영화의 흥행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몇 년 간 그녀가 출연했던 영화들의 흥행이 매우 저조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염려 때문에 특이하게도 A급 배우였던 제임스 스튜어트와 캐리 그랜트를 동시에 캐스팅했고, 꼭 두 남자 배우가 나란히 출연했기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어쨌든 영화는 오랜만에 캐서린 헵번에게 박스오피스 흥행을 선물하였다. 


[3월 31일] 마이 맨 갓프리 My Man Godfrey, 1936


감독 그레고리 라 카바 Gregory La Cava

각본 모리 리스킨드 Morrie Ryskind, 에릭 햇치 Eric Hatch

출연 윌리엄 파웰 William Powell, 캐롤 롬바드 Carole Lombard

고물과 쓰레기들이 쌓여있는 곳에 고급 드레스를 입은 여성이 찾아와 노숙자 갓프리에게 5달러를 벌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그녀는 '스캐빈저 헌트' 게임을 하고 있다며 그저 자기를 따라 월도프 리츠 호텔에 가서 사람들에게 인사만 하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예의 없는 그녀의 행동에 화가 나 그녀를 쫓아버린다. 그는 그녀를 쫓아버리고 난 뒤 이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여성을 발견한다. 그녀는 아이린이라고 자신을 소개하고, 그가 쫓아 보낸 사람이 자신의 언니 코넬리아라 알려준다. 그녀는 6살 때부터 언니를 혼내주고 싶었다며, 그가 언니를 대하는 모습에 대신 통쾌함을 느끼며 좋아한다. 갓프리는 아이린에게 '스캐빈저 헌트'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녀는 일종의 보물찾기 게임이지만, 다른 점이 있다면 모두가 원하지 않는 것을 찾아내는 것이라 알려준다. 그는 자기가 아이린을 따라가면 언니를 이길 수 있는 것이냐며 그녀를 따라나서고, 갓프리 덕에 아이린은 우승을 차지한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 모인 사람들을 향해 자기가 이곳에 따라온 이유는 아이린을 돕기 위해서이며, 다른 하나는 꼴통들이 어떻게 노는지 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돌아선다. 아이린은 그런 갓프리에게 언니를 이기게 해 줘서 고맙다며 자기 집의 집사 자리를 제안한다. 


아이린, 그녀의 언니, 그리고 그녀의 엄마는 아버지가 벌어다 준 부를 누리며 살고 있다. 특별한 목적이나 의미 없이 시간과 돈을 잠깐의 오락거리에 쏟아붓는다. 매일 파티를 하며 스캐빈저 헌트 게임을 하고, 그러면서 사람까지도 자신의 오락거리로 만들어 버린다. 그런 아이린 앞에 갓프리가 나타난다. 지극히 상식적이며, 이성적이고, 예의 바르고, 똑똑한 남자. 어쩌면 아이린은 갓프리를 쓰레기장에서 처음 봤을 때부터 그에게 반했는지도 모르겠다. 자기 안에 숨겨진 욕망을 대신 실현해 준 남자였으니 충분히 그렇게 느꼈을 만도 하다. 그리고 집사로 그를 곁에서 바라보면서 그녀는 점점 더 그에게 빠져든다. 나름 짝사랑의 아픔을 즐기는 아이린의 모습이 매우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런 아이린에게 항복하는 갓프리의 모습을 보는 것도 큰 재미이고. 그러나 아이린의 엄마와 언니의 말투나 행동에 짜증이 날 테니 이 부분은 감안을 하고 보아야 할 것이다. 

두 주인공 역할을 맡은 윌리엄 파웰과 캐롤 롬바드는 영화를 찍기 몇 해 전 실제로 결혼을 했던 부부 사이였다. 결혼 생활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이혼한 부부가 영화에 연인으로 출연한다는 게 흥미로웠다. 참고로, 캐롤 롬바드는 이후 클라크 게이블과 결혼했다. 그리고 그 결혼생활은 그녀가 비행기 사고로 죽기 전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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