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라고 묻는다면 주저 없이 바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물과 친한 것도 아니고, 수영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왠지 산보다는 바다를 사랑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 비슷한 것이 있다. 바다는 뭍에 발을 딛고 사는 인간들에게 미지의 공간이며 신비한 세상이다. 어쩌면 그래서 바다를 더 그리워하고 욕망하는지도 모르겠다. 바다야 사계절 어느 때에 가더라도 그 계절의 바다만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느낄 수 있지만, 여름은 조금 더 특별한 것 같다. 여름만큼은 그 차갑고 세차던 바다도 인간에게 조금은 곁을 내어준달까? 그래서 여름의 바다는 더 친근하고 사랑스럽다.
엄마와 함께 그리스의 칼로카이리 섬에 살고 있는 소피는 결혼식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무언가 빠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고, 이내 그것이 신부를 신랑에게까지 인도해줄 아버지의 자리임을 깨닫는다. 그녀의 엄마 도나는 그녀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준 적이 없다. 그저 지나간 여름의 사랑이라고만 할 뿐. 소피는 우연히 자신을 임신했던 해에 도나가 썼던 일기장을 발견하고, 일기장에 등장하는 세 사람, 샘 카마이클, 빌 앤더슨, 그리고 해리 브라이트에게 결혼 초대장을 보낸다. 세 사람 중 누가 자신의 아버지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일단 만나면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세 남자는 소피의 편지를 받고는 짐을 싸서 각자가 살던 곳에서 그리스로 향한다. 그리스에 도착한 샘과 해리는 칼로카이리 섬으로 들어가는 배를 놓치고, 그때 요트를 타고 나타난 빌을 만나 함께 섬으로 향한다. 섬에 도착한 세 사람은 소피를 만나고, 도나가 초대장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었던 세 사람은 소피가 엄마 몰래 초대장을 보냈던 것이었음을 알고 당황한다. 당황하기는 도나도 마찬가지. 20년 전 헤어졌던 세 명의 남자가 그녀 앞에 나타난 것이다.
'맘마미아'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주크박스 뮤지컬일 것이다. 스웨덴의 유명 그룹 'ABBA'의 노래들만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999년 4월에 런던 웨스트엔드의 프린스 에드워드 극장에서 초연을 했고, 이후 프린스 오브 웨일즈 극장과 노벨로 극장으로 옮겨가며 공연을 이어갔다. 그리고 작년 코로나 사태로 문을 닫은 이후 올해 8월 다시 공연을 시작할 예정이다. 영화 '맘마미아'는 이 작품을 스크린으로 옮긴 것이다. 그리스의 섬에서 엄마와 단 둘이 살고 있던 소피가 결혼식을 앞두고 아버지일 가능성이 있는 엄마의 과거 남자 세 명을 결혼식에 초대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이다. 무대 공연에 비해 영화가 가진 최대의 장점은 아름답게 펼쳐진 섬의 모습을 담았다는 것이다. 무대에서는 볼 수 없었던 그리스의 에메랄드 빛 바다를, 눈이 부실 정도로 푸르게 반짝이는 아름다운 바다를 볼 수 있다. 영화에 등장하는 칼로카이리 섬은 허구의 섬이지만, 영화의 촬영지였던 그리스의 스코펠로스 섬은 그야말로 그림 같았다. 문명 세계와 동떨어진 신화의 세계 같기도 했고. 그리고 그곳에서 그을린 얼굴로 노래하고 춤추는 아만다 사이프리드의 모습은 무대 위의 어떤 소피보다도 소피다워 보였다. 아무래도 공연장에서 공연을 직접 보는 것과는 다르겠지만, 그래도 'Waterloo'까지 즐기고 나면 영화만의 매력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여름 2일] 그랑블루 Le Grand Bleu, 1988
감독 뤽 베송 Luc Besson
각본 뤽 베송 Luc Besson, 로버트 갈란드 Robert Garland, 마릴린 골댕 Marilyn Goldin, 자크 마욜 Jacques Mayol, 마르크 페리에 Marc Perrier
출연 장 마르크 바르 Jean-Marc Barr, 장 르노 Jean Reno, 로잔나 아퀘트 Rosanna Arquette
1965년 그리스. 자크는 바다를 자유로이 유영하며 바다 생물들과 시간을 보내는 프랑스인 소년이다. 엄마는 고향인 미국으로 돌아가 버렸고, 아버지와 삼촌과 살고 있다. 어느 날 동네 꼬마 둘이 자크에게 바다 밑바닥에 있는 동전을 건져달라고 한다. 그가 바다로 들어가려 할 때, 이탈리아 소년 엔조가 나타나 자기가 대신 들어가겠다고 한다. 자크는 이를 허락하고, 엔조는 6초 만에 동전을 건져온다. 그리고 자크에게 자신이 다시 동전을 바다에 던질 테니 6초 안에 찾아오면 그에게 동전을 양보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자크는 이를 거절한다. 얼마 후, 자크는 아버지, 삼촌과 함께 바다에 나가고, 해산물을 채집하기 위해 바다에 뛰어든 자크의 아버지는 사고로 인해 다시 뭍으로 올라오지 못한다. 어린 자크는 그렇게 아버지가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며 괴로워한다.
1988년 시실리. 엔조는 난파선 아랫부분에 갇힌 잠수부를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1만 달러에 그를 구해낸다. 잠수 세계챔피언인 엔조는 1만 달러를 받고 무엇을 할 것이냐는 동생의 질문에 프랑스인 하나를 찾을 것이라고 한다. 보험 조사원 조애나는 눈과 얼음으로 덮인 페루의 안데스산에 위치한 미국 잠수 연구소에 도착한다. 그녀는 얼마 전 있었던 사고를 조사하러 왔다가 얼음 아래 푸른 물속으로 잠수하는 한 남자를 만나게 된다. 그녀도, 그도 서로에게 첫눈에 반한 듯 하지만, 잠수사 자크는 조애나에게 선물을 하나 건넨 채 하루 만에 그곳을 떠난다. 프랑스 리비에라로 돌아온 자크는 오랜만에 만난 돌고래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그를 찾아온 엔조를 만난다. 엔조는 10일 후에 타오르미나에서 있을 잠수 세계챔피언 대회에 자크를 초대한다며 티켓을 두고 간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왔지만, 조애나는 현실이 지겹기만 하다. 그리고 자크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녀는 업무상 미국 잠수 연구소에 연락을 했다가 자크가 타오르미나에서 곧 있을 잠수 세계챔피언 대회에 참가한다는 사실을 전해 듣고, 회사에 거짓말을 한 채 타오르미나로 날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자크와 엔조를 만난다.
엔조와 자크는 바닷속 미지의 공간을 매우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사랑의 방식은 좀 달랐던 것 같다. 엔조는 잠수를 통해 미지의 공간에 도전하는 것을 택했고, 자크는 바다에 자신을 맡기고 그 안에서 숨 쉬는 것을 즐기기로 했다. 그러나 엔조가 자신의 도전에 자크를 끌어들이면서, 그리고 자크의 삶에 조애나가 발을 들여놓기 시작하면서 그의 삶은 조금 더 복잡해진다. 친구와 연인과 바다, 그 안에서 자크는 행복하면서도 그 균형을 잡지 못해 불안정해진다. 그리고 그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은 쉽지 않다.
그랑블루에 대한 나의 첫 기억은 영화 포스터였다. 푸른 바다 위로 날아오르는 돌고래와 함께 쓰여있던 'Le Grand Bleu'. 그땐 프랑스어인 줄도 모르고 왜 블루의 철자가 Blue가 아니고 Bleu일까 의아했었다. 그리고 저런 포스터를 가진 영화에는 어떤 이야기가 담겨 있을까 궁금했었다. 그렇게 3시간에 달하는 영화를 본 것은 매우 오래 전의 일이었다.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한 나의 마지막 기억은 '장 마르크 바르'라는 배우였다. 영화 자체는 선명하게 기억이 나지 않으면서도 내가 '장 마르크 바르'라는 배우에게 반했었지... 하는 생각은 뇌리에 꽉 박혀 있었다. 그리고 다시 영화를 보면서 순수하게 빛나는 그의 눈빛에 또 반하고 말았다. 엔조와 자크가 닿고자 했던 바다 깊은 그곳보다도 더 깊은 장의 눈동자가 바로 'Le Grand Bleu'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가 아니었다면 3시간에 가까운 러닝타임이 지루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여름 3일] 루카 Luca, 2021
감독 엔리코 카사로사 Enrico Casarosa
각본 제시 앤드류스 Jesse Andrews, 마이크 존스 Mike Jones
출연(목소리) 제이콥 트렘블리 Jacob Tremblay, 잭 딜런 그레이저 Jack Dylan Grazer, 엠마 버먼 Emma Berman
이탈리아 포르토로소의 인근 바다. 한밤중 두 남자가 '젤소미나'라는 배를 타고 고기잡이에 나선다. 한 사람은 인근 바다에 괴물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다른 남자를 재촉하지만, 그는 다 헛소리라며 그물을 걷어 올린다. 그때, 괴 생명체가 나타나 배 위의 물건들을 하나 둘 가져가고, 결국 두 사람의 눈에 띄고 만다. 두 사람은 바다괴물의 모습에 겁을 먹고 서둘러 배를 철수한다.
루카 또한 사람들에게는 바다괴물로 알려진 생명체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는 그저 바닷속 마을에서 양을 치듯 물고기들을 치는 소년에 불과하며, 오히려 루카의 세계에선 인간이 육지 괴물일 뿐이다. 그래서 루카는 늘 부모님에게 육지 괴물을 조심하라는 잔소리를 듣는다. 어느 날 그는 바다에 버려진 인간들의 물건을 발견하고 그러다 알베르토를 만나고, 물을 빠져나와 몸의 물기가 마르면 자신이 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후 루카는 뭍에서 알베르토와 시간을 보내며 새로운 세상과 그곳에서의 자유에 눈을 뜬다. 그러나 곧 이를 알아챈 엄마로 인해 심해어 큰아버지를 따라 심해로 끌려갈 위기에 처한다. 그리고 그 위기를 피하기 위해 알베르토와 함께 포르토로소 마을로 향한다.
이야기는 굉장히 고전적이다. 서로를 적대시하던 두 세계의 생명체들이 어떤 일을 계기로 서로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공존한다는 이야기이다. 악역으로 등장하는 에콜레 조차 고전적인 악당의 이미지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 자기 잘난 맛에 살며 남을 무시하고 서슴없이 반칙을 행하고 부하들을 거느리며 그들마저 함부로 대하는 사람. 그러나 그런 에콜레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줄리아가 등장하고 그녀는 루카에게 새로운 세상을 꿈꾸게 하는 존재가 된다. 너무 고전적이라 살짝 재미가 없기도 하지만, 요즘 같은 혐오와 반목의 시대에 어쩌면 가장 필요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너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되었어'가 아닌 '우리 함께 무엇을 해보자'의 메시지가 필요한 시기이니까.
실사가 아닌 애니메이션이지만, 햇살에 부서지는 바다와 너무 푸르러서 보고 있는 나마저도 초록이 될 것 같은 나무들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포르토로소는 가상의 마을이라 진짜 가볼 수는 없겠지만, 그곳의 모델이 된 이탈리아의 친케테레는 꼭 한 번 가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