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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ppy Eponine Jul 23. 2021

여름을 위한 영화 31편 02

4일 - 6일: 한여름에 즐기는 겨울 스포츠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무더운 여름 최고의 힐링은 시원한 곳에서 시원한 걸 먹으며 편안히 쉬는 것일 것이다. 여름 영화라지만 계속 뜨거운 햇살과 땀 흘리는 사람들만 보고 있으면 그것 또한 괴로울 것이기에 이번엔 시원한 영화들을 골라보았다. 겨울 스포츠를 소재로 한 영화들이다. 종목도 다르고 주인공도 다르지만, 어쩌다 보니 고른 세 영화가 모두 88년도 캐나다 캘거리 동계 올림픽과 관련 있는 작품들이 되어버렸다. '통일성'이라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스포츠 영화치고 그다지 승부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공통점도 있다. 그래서 조금은 덜 긴장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편안히 이 영화들에 빠져 지금이 한여름이란 것을 잊어버리시길.


[여름 4일] 독수리 에디 Eddie the Eagle, 2015


감독 덱스터 플레처 Dexter Fletcher

각본 숀 맥컬리 Sean Macaulay

출연 테론 에저튼 Taron Egerton, 휴 잭맨 Hugh Jackman, 조 하틀리 Jo Hartley, 키스 앨런 Keith Allen

어렸을 때 무릎이 좋지 않았던 에디는 다리에 보조 기구를 해야 했고, 의사는 운동을 포기하라며 책이나 읽으라고 권유했다. 그때 그가 받은 책은 72년도 올림픽 앨범인 '영광의 순간'이었다. 어린 에디는 메일 자신만의 종목에 도전하며 올림픽에 나가겠다고 짐을 싸 집을 나서곤 했고, 어린 아들의 귀여운 도전에 그의 어머니는 메달을 담아올 상자를 건네며 그를 지지해주었다. 반면, 매번 올림픽에 나가겠다고 집을 나선 아들을 다시 데려와야만 했던 아버지는 그가 그만 현실에 적응하길 바랐다. 다행히 에디의 무릎은 완쾌되어 보조 기구를 풀게 되었고, 그때부터 그는 더 열심히 여러 훈련에 도전하지만, 매번 안경만 망가뜨릴 뿐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그를 단념시키고 자신을 따라 미장일을 배우게 하고자 작업현장으로 그를 데려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스키 타는 사람들을 본 에디는 '동계 올림픽'에 도전하기로 굳게 마음먹는다. 1987년, 캐나다 캘거리 올림픽을 한 해 앞둔 시점. 영국의 올림픽 위원회는 동계 올림픽에 출전할 국가대표 스키 선수들을 선발하기로 하는데, 학력도 실력도 눈에 띄지 않았던 에디는 선발전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제외된다. 그는 이제 정말 스키를 그만두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장비까지 정리하지만, 우연히 알게 된 '스키 점프'에 다시금 도전 정신을 불태운다. 그러나 영국에는 스키 점프 팀이 없는 상황. 그는 스키 점프로 올림픽에 출전하기 위해 무작정 독일의 가르미슈에 있는 스키 점프 훈련장으로 향한다.


스포츠라고 하기에는 거의 묘기에 가까운 기술을 선보여야 하는 스키 점프. 보는 것만으로도 아찔하기만 한 이 종목에 열정만 가지고 도전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에디는 올림픽 출전권을 얻기 위하여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도전한다. 그것이 무모해 보이지만은 않았던 것은, 그가 어려서부터 했던 도전들이, 남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결과를 만들어내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도전'이라는 것 자체에 의의를 두었던 순수한 열정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올림픽 도전도 마찬가지였다. 올림픽의 가치는 이기는 것이 아니라 참여하는 것이라고 했던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쿠베르탱의 말처럼 에디는 도전하고 즐기는 선수로 올림픽 정신을 세계에 보여주었다. 

한겨울 새하얀 눈 위에서 펼쳐지는 스키 점프. 그 새하얀 눈이 주는 서늘함에, 90미터 상공에서 날아오르는 모습을 보는 아찔함까지 더해지니, 영화를 보는 내내 더위가 조금은 가시지 않을까?


[여름 5일] 쿨 러닝 Cool Runnings, 1993


감독 존 터틀타웁 Jon Turteltaub

각본 린 시퍼트 Lynn Siefert, 토미 스워들로우 Tommy Swerdlow, 마이클 골드버그 Michael Goldberg

출연 리온 Leon, 더그 E. 더그 Doug E. Doug, 로울 D. 루이스 Rawle D. Lewis, 말릭 요바 Malik Yoba, 존 캔디 John Candy

아버지의 뒤를 이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기 위해 매일 끊임없이 훈련을 이어가는 단거리 육상선수 데리스. 그는 88년도 서울 올림픽 출전을 위한 자메이카의 대표선수 선발전에서 옆 레인 선수가 넘어지는 바람에 올림픽 금메달이라는 꿈을 그렇게 접어야만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이 상황이 부당하다고 여긴 데리스는 자메이카 올림픽 위원회에 찾아가 항의를 하지만, 그저 4년을 더 기다리라는 말만 들을 뿐이다. 그러다 그는 위원회 사무실 벽에 걸려있는 아버지의 사진을 발견한다. 메달을 목에 건 채 환하고 웃고 있는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고 함께 웃고 있는 누군가. 데리스는 그가 미국인 봅슬레이 메달리스트인 어빙 볼리저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가 아버지를 봅슬레이에 끌어들이려고 했다는 것도 알게 된다. 그리고 그가 아직도 자메이카에 있다는 사실도. 올림픽 메달이라는 오랜 꿈을 포기할 수 없었던 데리스는 친구 쌍카와 함께 그를 찾아가 자메이카 봅슬레이팀을 맡아달라고 부탁하고, 그는 데리스의 끈질긴 설득에 결국 봅슬레이팀을 결성하기로 한다. 


겨울 스포츠 하고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나라 자메이카. 그도 그럴 것이 자메이카는 열대기후라서 연평균 기온이 20도 이상이다.  그러니 봅슬레이라는 얼음 위의 무동력 차가 그들에겐 매우 생소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데리스는 어빙 볼리저를 설득하고 선수들을 모아 88년도 캐나다 캘거리 동계 올림픽에 출전한다. 처음 겪어보는 추위에, 처음 출전하는 올림픽 경기. 제대로 연습할 공간도, 장비도 없었던 그들인지라 캘거리에서 모두의 웃음거리가 되지만, 끝내는 모두의 박수를 받게 된다. 그들이 메달리스트로서 포디움에 올라서가 아니라, 올림픽, 그리고 스포츠 정신에 어울리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보니 88년도 캘거리 올림픽에는 이야깃거리가 매우 풍부했던 것 같다. 자메이카 봅슬레이팀도 그렇고, 영국의 스키 점프 선수 에디도 그렇고. 경기장 어딘가에서 서로 마주쳤을지도.

캘거리에서 처음 겨울을 경험하는 자메이카 선수들을 보며 한여름의 더위를 모두 잊으시길. 


[여름 6일] 사랑은 은반 위에 The Cutting Edge, 1992


감독 폴 마이클 글레이저 Paul Michael Glaser

각본 토니 길로이 Tony Gilroy

출연 D.B. 스위니 D.B. Sweeney, 모이라 켈리 Moira Kelly, 로이 도트리스 Roy Dotrice, 테리 오퀸 Terry O'Quinn

1988년 캘거리 동계 올림픽, 미국 아이스하키팀 선수인 더그 도시는 늦잠을 자고 간신히 경기에 임하게 된다. 그러나 경기중 부상을 당하고, 이로 인한 영구적 시신경 손상으로 더 이상 하키 선수로 뛸 수 없게 된다. 같은 올림픽에 출전 중인 케이트 모슬리는 미국 피겨스케이팅 페어 대표 선수로, 독단적인 성격으로 인해 코치와 불화를 겪고 있고, 경기 중 파트너가 그녀를 떨어뜨리는 바람에 메달마저 놓치게 된다. 이후 2년의 시간이 흐른다. 더그는 공사장에서 일하며 아마추어 리그에서 뛰고 있고, 케이트는 2년 간 8명이나 되는 파트너를 갈아치웠다. 케이트의 코치 팜첸코는 피겨 스케이팅 선수들 중에서 더 이상 케이트의 파트너를 찾을 수 없게 되자 눈을 돌려 더그에게 손을 내민다. 더그는 강력한 몸싸움 속에서 스케이팅을 하던 하키 선수가 피겨 스케이팅을 한다는 것이 마음에 내키지 않았지만, 그리고 파트너인 케이트와도 첫 만남부터 불꽃이 튈 만큼 삐걱거렸지만, 올림픽에 나가 메달을 딴다는 일념으로 케이트의 파트너가 된다.


철부지에 고집까지 센 부잣집 외동딸 스케이터가 바람둥이 마초 하키 선수를 파트너로 맞는다. 이것만으로도 둘 사이에 어떠한 대화들이 오가며 어떤 신경전이 벌어질지 대충 그림이 그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러는 와중에 두 사람의 감정이 서서히 말랑해질 것이라는 것도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두 사람의 이러한 감정의 흐름은 내 기대에 못 미쳤지만, 케이트 역할을 맡은 모이라 켈리가 너무 예뻐서 그쯤은 용서해주고 싶어 졌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스케이터들을 섭외한 것인가 했는데, 두 배우 모두 캐스팅이 된 이후에 세 달 간 스케이팅을 배웠다고 한다. 특히 모이라는 촬영 초반에 발목을 다쳐서 깁스를 하고 있어야 했고, 스케이팅 장면은 촬영 후반으로 모두 이뤄야 했다고 한다. 전반적으로 화려한 스케이팅 기술이 나오지는 않지만, 그래서 마지막 두 사람의 '팜첸코' 기술이 더 화려하고 극적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겠다. 시원하게 얼음을 가르며 질주하는 두 사람을 보며 더위 대신 사랑의 설렘을 느낄 수 있는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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