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체육관에서 몸풀기 달리기를 운동 시작 전에 하고 있는데 코치가 옆에서 말을 걸었다.
"회원님, 운동 시작 전에 30분은 뛰셔야 합니다."
"예? 그렇게나 많이요? 전 힘들어서 못 할 거 같은데요."
"달리기는 운동뿐 아니라, 지루함을 이기는 훈련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좀 힘들어도 참고 하세요."
그러면서 코치가 하는 말이 자기도 운동을 오래 하고 있지만, 하기 싫을 때가 많다고 했다. 근데 그게 꼭 운동이 싫다기보다 지루하고 지겨워서란다. 그러니 내가 30분 달리기를 힘들어서 못 하는 게 아니고 그 시간의 지루함을 못 참는 것이라 한다. 가만 생각해 보니 그 말에도 일리가 있다.
"그러면 지루함을 어떻게 이겨내세요?"라고 물었다.
"그건요. 꾹 참고 하는 방법밖에 없어요. 음악을 들으면서 하기도 하지만, 그건 운동에 집중이 되지 않아 권하고 싶진 않네요. 참고 하다 보면 지루함이 조금씩 줄고, 운동에 점점 몰입되는 것을 느끼실 거예요"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와 비슷한 경험을 최근에도 했다.
얼마 전부터 브런치 스토리에 "브런치북 출판 프로젝트"란 광고가 계속 올라왔다. 처음엔 나와 같은 새내기작가에겐 너무 높은 장벽이라 여겨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근데 계속 보게 되니 호기심이 생겨서 이번 기회에 응모라도 해볼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상 준비하려니 번거롭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잘 쓴 글을 보고 오히려 의욕만 떨어질까 봐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다가 어차피 그동안 써온 글을 정리도 할 겸 해서 이번 기회에 브런치 북이라도 만들자! 란 결론을 냈다.
그동안 발행한 스토리를 찾아보니 53편이었다. 1년 동안 일주일에 한 번씩 빠지지 않고 꾸준히 글을 올린 셈이다. 우선, 주제별로 글을 묶기 위해 인덱스카드에 글 제목을 다 적었다. 역시 자연과 꽃에 대한 글이 대다수였다. 그리고 포스트잇을 붙여 아날로그식 분류를 하고, 브런치 북에 들어갈 5가지의 소제목으로 나눴다.
종이에 쓴 제목을 한꺼번에 보는 순간, 그동안 글을 쓰며 보낸 수많은 지루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심지어는 "이거 내가 왜 하고 있지?"란 후회 섞인 마음은 또 얼마나 많이 가졌던가? 뭘 써야 할지 막막하고, 생각이 나질 않아 어렵다고만 생각했는데 운동 코치의 말대로 책상 앞에 앉아 있어야 하는 지루함이 힘들었을 수도 있었단 생각도 든다.
사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하면서는, 무슨 이유에선지 몸이 아파도, 뭘 써야 할지 막막해도, 미련스러울 정도로 책상에 오래 앉아있긴 했다. 그러다가도 다른 사람의 글을 보면 한없이 위축되고 비교되어 "난 글쓰기에 재능이 없어"란 생각도 동시에 수없이 하며 지나온 시간이다. 그럴 때마다 강원국 작가님의 " 글은 머리로 쓰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쓰는 것이다"란 글을 떠올리며 스스로 위안하기도 했다.
학생이 원하는 목적을 이루러면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해야 하고, 피아니스트가 좋은 연주를 위해선 누가 보든 안 보든 쉼 없이 연습해야 함은 만고의 진리다. 운동 코치의 "지루함을 견디라"는 말이 브런치 스토리의 글을 정리하며 다시금 와닿았다. 따분함을 이겨낸 후의 결과물이 포스트잇으로 분류할 수 있는 만큼의 글로 남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3주 동안 발행한 글을 재정비하고 다듬어 드디어 나의 첫 브런치 북을 발행했다. 표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센트럴파크에서 찍은 사진을 선택했다. "은퇴한 뉴요커의 행복가꾸기"로 제목을 정하고, 17편의 글을 실었다. 누군가에겐 명함도 못 내밀 작은 숫자의 미미한 글이지만, 나의 글쓰기 일 년이 담겨 있어 부족해도 뿌듯해하련다. 잠깐만이라도 지루함의 끝에서 맛보는 짜릿하고 달콤한 즐거움을 느껴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