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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피가드너 Nov 04. 2023

한국여행 와서 병원부터 갔다

짧은 한국 여행 중

올해도 10월이 되자, 엄마가 기다렸다는 듯이 카톡을 보내셨다.

분명 딸 귀찮게 할까 봐 참고 있다가 보내셨을 거다. 작년에 내가 머물렀던 방이 너무 지저분했다고 일 년 내내 미안해하시더니 카톡 첫 문장부터 방 정리 다 했으니 한번 다녀가란다. 최근에 엄마가 자주 쓰러지셔서 몇 번 응급실에 실려 가셨던 말을 동생에게 듣던 터라 마음이 바빠졌다.


옆에서 카톡 내용을 듣던 착한 남편이 음식은 알아서 먹을 테니 걱정하지 말고 갔다 오라고 한다. 그래도 어디 그런가! 각종 국과 마른반찬, 김치를 이틀에 걸쳐 정신없이 만들어 빼곡하게 냉장고에 넣어두고 뉴욕을 떠났다. 15시간 30분의 지루한 비행 끝에 드디어 한국에 도착했다.



1년 만에 만난 엄마는 몸은 더 작아지셨고, 좀 더 노쇠해지셨다. 요즘 들어 자꾸 토하고 심장이 뛰고, 정신이 없어져서 몇 번 쓰러졌다고 하신다. 글쓰기를 하면서 의욕이 생겨 좋아했는데 갑자기 몸이 안 따라와 준다고 속상해하셨다. 말하고 있는 동안에도 엄마가 식은땀을 흘리며 손발이 차가워지고 축축 늘어지셨다. 남동생이 팔과 다리를 한참 동안을 주물러드리니 조금 나아지신 듯하다가 다시 똑같은 증세다. 엄마의 몸이 생각보다  많이 심각해 극단의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


동생과 나는 식탁에 앉아 한참 동안 여러 의견을 나눴다. 난 엄마가 다니는 K 대학병원에서 동네 심장 전문 병원으로 옮겨 자세한 상담을 는 게 우선일 거 같다고 했다. 그 말에 동생도 좋은 생각이니 일단 그렇게 해보자고 한다. 한국에서의 첫날밤을 그렇게 보내고, 다음 날 침 일찍 인터넷으로 "심장내과 동네 전문병원"을 찾았다. 환자들의 리뷰부터 학력, 경력들이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중 집에서 가깝고 경험이 많으신 분을 선택해서 병원에 연락했더니 20일 후에나 진료가 가능하다고 한다. 그럼 난 벌써 한국을 떠나는데 어떡하나?


그래도 최선을 다하자! 싶어 다급한 상황이라고 자세히 설명했다. 그랬더니 간호사가 오랫동안 기다릴 수도 있지만, 일단 와보라고 한다. 부랴부랴 그동안 먹은 약과 처방전을 가지고 힘들어하는 엄마와 동네병원에 갔다. 1시간 정도를 기다리는 동안 심전도와 혈압검사를 했다. 진료순서가 되어 의사 선생님을 처음 만났는데 경험이 많아 보이셔서 일단 안심이 됐다. 선생님이 엄마에게 어떤 세가 있고, 무슨 병으로 알고 계시냐고 물었다.


엄마가 머뭇거리며, 협심증, 심근경색, 부정맥... 등등 여러 병명을 말하자 의사 선생님이 심전도 결과를 보고 병명이 "부정맥"이라고 설명했다. 좀 더 자세한 처방을 위해 30분 동안 자세하게 초음파를 찍고, 그동안 복용한 약을 점검하셨다. 결론은 그동안 먹은 약에는 부정맥을 위한 약의 용량이 부족하고, 필요 없는 약이 많다고 한다. 다행히 시술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약만 처방해 주고 다음번 진료 예약을 했다.  

        


그동안 엄마는 유명 심장전문의를 만나려고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학병원을 10년 이상 다니셨다. 가서도 한참 동안을 기다리고 워낙 짧은 진료 시간이라 확실하게 소통 못 했다고 하신다. 몸이 갑자기 나빠져도 상담할 수가 없으니 답답해하셨다. 그럼에도 병원을 바꿔 볼 생각은 미처 못 했다. 대학병원에서 2달 정도 걸릴 과정을 하루 만에 동네병원에서 하고 결론을 알았다고 좋아하셨다. 무엇보다 집에서 가까운 동네병원에 언제든지 가서 상담받을 수 있다고 안심하신다.


약대 교수인 동생도 이번에도 누나가 와서 현명한 결정을 해줬다고 고마워했다. 난 나대로 그동안 왜 병원 옮길 생각을 못 했나? 자책도 했지만, 지금이라도 바꿀 수 있어 다행이다. 그동안에도 한국을 방문하면, 늘 크고 힘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고 가긴 했다. 함께 살았으면 타성에 젖어 안 보였을 여러 상황이 오랜만에 보면 좀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하나 보다.


엄마는 동네병원에 다녀온 후, 약을 바꾸고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자 조금씩 회복하고 계신다. 그동안 글 쓴 것도 보여주시고, 엄마 자서전을 드린 분들이 다들 "훌륭하다고 했다"는 자랑도 비로소 웃으며 하신다. 이참에 병원 에피소드도 글로 써보시라고 말씀드렸다.


나 또한 기다리는 절친들과 편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줄줄이 약속한 그리운 사람들과의 만남이 기대되고 설렌다. 미국 가기 전까지 오랫동안 살아 눈에 익숙한 동네의 단풍을 보며, 개운한 마음으로 산책했다. 가을을 가슴으로 느끼며, 짧지만 많이 행복할 한국 여행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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