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 전쯤,
4년째 참석하고 있는 '독서클럽'의 운영진으로부터 9월부터 전체 팀장을 맡아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70명 정도의 회원이 있는 모임인데, 9월 학기가 되어 재정비하는 중이라고 했어요. 기존에 하고 계시는 팀장이 워낙 유능하고, 개인적으로 친한 분이기도 해서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네? 제가요? 지금 팀장이 잘하고 계시는 데 왜요? 전 아직 맡아서 할 능력이 안 되는데요!'
"아! 그분이 맡은 일이 너무 많아 조정을 하려고 합니다."
'오 마이 갓!!! 전 그다지 책을 좋아하지 않아요. 시작도 책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했고요.'
"몇 달 전에 프리젠테이션하는 것을 보니 글도 쓰시고, 오래 참여하셔서 만장일치로 결정했습니다."
하지 않을 수십 가지 이유를 말하는데도 적임자라면서 전화를 끊지 않았습니다. 마치 누가 이기나 보자!! 시합이라도 하듯이 서로 자기 입장만 고수하면서요. 결국 제가 하루 이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하고, 대답을 미뤘습니다.
팀장은 전체를 아우를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그동안 소그룹 리더만 했던 차라 여간 난감한 게 아니었어요. 좋은 기회일수도 있지만, 자신이 없어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잘 운영되고 있는 북클럽에 오히려 해를 끼칠까봐 걱정도 됐어요. 만만한 남편에게 상황 설명을 하고 의견을 물었습니다. "뭐 그게 별거겠어? 그냥 해봐! "라는 성의 1도 없는 답만 들었어요. 다시, 좀 더 섬세한 딸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전체 팀장을 하라는데 어쩌지?'
"엄마는 어떻게 하고 싶은데?"
'그걸 모르겠으니까 물어보는 거지!'
"아니 그걸 모르면 어떻게 해? 그럼, 누가 알아? 엄마가 할 건데!! 하하!!"
결정장애 증상이 점점 심해지는 저를 탓하며 한참을 서로 웃었습니다.
예전에 딸에게 '성인을 위한 평생 교육센터'를 하고 싶단 말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이번 기회에 경험이다! 생각하고 해 보는 게 어떠냐고 했습니다. 물론 성인을 상대로 한 경험 말이지요. 연령은 달라도 교육센터도 오랫동안 운영했으니 잘할 거라며 응원을 해주었어요. 잠시 잊고 있었던 꿈이 슬며시 떠올랐습니다.
그동안 한국에 갈 때마다 곳곳의 문화센터에서 하는 다양한 프로그램과 각종 자격증을 딸 수 있는 환경이 부러웠어요. 배우고 싶은 과목도 어찌나 많은지 바쁜 한국방문 스케줄에도 새벽부터 일어나 1-2가지 자격증은 꼭 따왔는데요. 그럴 때마다 뉴욕에도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한인을 위한 평생 교육센터'를 해보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었습니다. 물론 이곳에서도 65세 이상은 정부에서 보조를 받는 '시니어 데이케어'에서 다양한 취미활동을 할 수 있긴 합니다.
그런데!!
육아가 끝난 40, 50대부터 60대, 70대 (시니어 데이케어에 가고 싶지 않은/혹은 못 가는)에서는 문화/취미생활을 할 곳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골프 천국이라고 해도 골프를 좋아하지 않은 사람도 은근히 많거든요. 이민자를 위한 Adult Education Center에서는, 거의 영어에 집중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고, 그나마도 많지가 않아요. 오죽하면 제가 드라이플라워 지도자 자격증을 한국에서 따왔겠습니까?
특히 글을 쓰면서부터는 한인교포를 위한 글쓰기, 자서전 쓰기가 꼭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물론 누구나 그렇습니다만, 이민자들에겐 고국을 떠나 새로운 환경에서 겪는 이야깃거리가 책 한 권 분량은 족히 되거든요. 현직에 있건 없건 글을 쓰면서 삶도 돌아보며 외로운 이민 생활에 많이 위로될 거 같았어요. 글쓰기뿐 아니라 사진, 소품 만들기, 영상, 낭독, 영어, 댄스, 정원 가꾸기 등.... 건전하고 재밌는 문화생활을 위한 커리큘럼은 차고 넘칩니다.
막연하게 갖고 있었던 '한인을 위한 평생 교육센터'가 어쩌면 '북클럽 팀장'이란 경험을 통해 조금씩 이룰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처음부터 완벽한 시작이 있겠습니까? 사소한 인연으로 만나, 그 길을 꾸준히 가다 보면, 또 뭔가 좋은 일이 생기겠지요. 계획대로 안 되어도 또 다른 길을 찾으면 되니 느긋하게 하면 될 거 같단 결론을 내렸습니다.
사실 처음에는 왜? 뜬금없이 저를 팀장으로 임명했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요. 지난 몇 년 동안 노력하고 쌓아온 '나를 찾기'의 경험이 많은 사람에게 축복의 통로로 쓰일 수도 있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브런치에서 101번째 글을 발행하고, 300개가 넘는 소품을 만들며 스스로를 독려했던 시간이 새삼 감사함으로 다가왔습니다.
팀장을 하겠다고 결정하니 오랜만에 설렘도 느껴졌습니다. 은퇴 후 또 다른 '의미 있는 꿈'도 꿀 수 있단 생각에 마음이 따스해졌어요. 부족함에도 작은 자를 쓰시는 하나님의 섭리에도 감사했고요. '꿈'을 이루기 위해 기쁘게 살 것이고, 그 과정에서 아주 행복할 거 같단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