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딧불이의 위로
딸과 사위가 3박 4일간의 짧은 휴가를 마치고 뉴욕에서 애틀랜타로 돌아갔다. 작별 인사를 나누는데, 집 앞의 커다란 단풍나무가 유난히 빨갛고 예쁘다. 서운한 마음을 위로라도 해주는 걸까. 딸을 유난히 따르는 강아지 쪼코도 잠시의 이별을 아는지 표정이 애처롭다. 남편도 나도 이런 헤어짐이 아직 익숙지 않다.
그들은 가고 나는 집으로 들어왔다. 떠나기 전 끓여준 떡국을 깨끗하게 비운 그릇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냉장고에는 미처 만들어 주지 못한 재료가 다섯 가지도 넘는다. 이렇게 많은 음식을 언제 다 먹고 간다고 준비했는지. 설거지하고, 커피를 마시며 지난 며칠간의 즐거웠던 시간을 정리했다.
그중에서도 지난 주말에 브로드웨이에서 함께 본 뮤지컬은 아직도 여운이 남아있다. 티켓이 늘 매진이라 가볼 엄두도 못 내던 '어쩌면 해피엔딩'을 딸의 선물로 보게 되었다. 마침 맨해튼에 나간 김에, 우리는 하루를 온전히 즐기기로 했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미드타운의 데보시온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역시나 '핫플'답게 커피와 크루아상의 맛과 향은 부드럽고 달콤했다. 떨어져 지낸 사이에 있었던 여러 이야기를 나누고 브로드웨이 극장을 향해 걸었다. 여러 번 다녀와 눈에 익은 록펠러 센터 앞을 지났다. 늦가을의 노란 은행나무잎이 바람에 흩날리고, 그 사이로 맨해튼의 빌딩들이 햇살에 반짝였다. "역시 뉴욕은 가을이 제일 멋지다."라며 동시에 말했다. 딸은 나와 감성이 비슷해 신기할 때가 많다.
벨라스코 극장 앞에 도착하니 끝도 보이지 않게 길게 늘어선 줄이 보였다. 극장 앞 간판에서 익숙한 한글이 영어와 함께 보여 더 반가웠다. 한국인 작사가 박천휴와 미국인 작곡가 윌 애런슨이 만든 이 작품이 토니상 6개 부문을 수상하며 브로드웨이를 사로잡았다니, 한국인으로서 자부심이 느껴졌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미래의 한국을 배경으로 수명을 다한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이야기다. 더 이상 인간에게 필요하지 않은 두 로봇이 만나 사랑에 빠진다. 사랑을 하면서 그들은 인생의 슬픔도 알게 된다. 이별의 아픔, 상실의 두려움 같은 감정들이 사랑과 함께 찾아온다. 약 1천 석 정도 되는 극장의 무대는 아날로그의 따스함과 첨단 기술의 정교함이 절묘하게 섞여 있었다. 컴퓨터 그래픽을 연상시키는 프레임형 세트장은 때로는 서울의 좁은 방이 되고 때로는 제주의 밤하늘이 되었다.
특히 제주를 배경으로 두 로봇이 반딧불이를 바라보는 장면은 감동이었다. 무대 위 수많은 반딧불이가 스스로 빛을 내다가 서서히 사라지는 순간. 웅장하면서도 뭔지 모를 먹먹함이 느껴졌다. 옆에 앉아 있던 딸도, 극장의 관객도 모두 숨을 죽인 채 무대를 바라보고 있었다.
박천휴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관객들이 일상에서 작은 위로와 희망을 느끼게 하고 싶었다." 무대 위 반딧불이를 보니 그 말이 더 와닿았다. 딸과도, 어쩌면 한국에 계신 엄마와도 반딧불이처럼 짧지만, 환한 순간들로 서로를 비추며 사는 건 아닐까 싶었다. 뮤지컬은 관객들이 답을 찾는 오픈 엔딩으로 끝났다. 나에게 이 이야기는, 함께한 시간을 소중하게 기억한다면 그것이 해피엔딩이라는 메시지로 다가왔다. 극장을 나서는데 맨해튼의 상징인 노란 택시의 행렬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아름다웠다.
지난 며칠 동안의 풍경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음식을 해주고, 가지고 갈 밑반찬을 만들고, 딸과 나눈 모든 순간이 마음속에 남아 있다. 딸이 떠난 뒤 쪼코는 한동안 현관문만 바라보았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창밖을 보니 여전히 빨간 단풍나무가 햇살에 눈 부시다. 당분간은 아니 아주 오랫동안, 나는 이 따스한 기억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짧지만 환한 반딧불이 같은 순간처럼. 이 가을의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