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은 온통 새것의 냄새로 가득하다. 빳빳한 새 다이어리의 첫 장, 서점 매대를 채운 신간들, 그리고 오가는 희망찬 덕담들까지. 나 역시 작년까지는 출발 신호를 기다리는 마라토너처럼 한 해의 계획을 빼곡히 적어 놓곤 했다. 하지만 올해는 그 출발선 앞에서 조용히 뒷걸음질을 쳤다. 대신 익숙한 책상 앞으로 다시 돌아앉았다. 내게 새해는 눈부신 시작이 아니라, 매듭짓지 못한 일들을 정성껏 갈무리해야 할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지나간 1월은 조금 독특한 풍경이었다. 루틴 마니아인 내가 일상의 루틴을 하나둘 지워나가는 '뺄셈의 시간'을 보냈다. 엄격하게 지키던 여러 루틴의 강도를 낮췄고, 일주일에 세 번은 숙제처럼 올리던 인스타그램 게시물도 한 번으로 줄였다. 오랫동안 해오던 습관을 포기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만큼 '선택과 집중'이 절실했다. 에너지를 싹싹 긁어모아 공저와 개인 출간의 마지막 문장을 다듬고 마침표를 찍는 데 모든 화력을 쏟아부었다.
그 간절한 몰입 끝에, 지난 3여 년 동안 글을 함께 써온 '내글빛' 작가님들과의 공저 『그저 그런 일상이 행복이더라』가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작년 늦은 여름, 무언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하다고 느끼던 시점에 내가 먼저 단톡방에 공저 제안을 했다. 다행히도 모두 기쁘게 공감해 주었고, 두 번의 마감 연장은 있었지만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서쪽하늘님, 사월님, 일과삶님, 희망님, 그리고 나. 우리 다섯 명은 똘똘 뭉쳐 글을 쓰고, 모으고, 편집했다.
나이도 직업도 환경도 모두 다르건만 불협화음 하나도 없이 서로 양보하고 배려한 신기한 경험이었다. 공저 작업을 하며 마음의 거리도 더 가까워졌고. 그 사이 누군가는 아이를 출산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맞았고, 누군가는 새로운 직장에 적응하며 치열한 하루를 보내기도 했다. 삶의 파도 속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문장을 써 내려갔다.
책을 마무리하던 중, 감사하게도 글 벗들의 추천으로 내가 만든 소품 사진이 책의 표지에 실리게 되었다. 세 개의 작은 리스가 서로 연결되었다는 의미가 좋다면서. 혹여 다른 분들의 소중한 글에 혹여 누가 될까 노심초사했지만, 대장이신 일과삶 작가님이 편집 덕분에 따스한 온기를 품은 한 권의 책으로 완성되었다.
공저라는 든든한 동행을 끝내고 나니, 이제 오롯이 혼자만의 힘으로 넘어야 할 마지막 산이 보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숱하게 고민하고, 때로는 막막함에 몸부림쳤던『행복한 가드너 씨』의 마무리 작업이었다.
수없이 교정을 거듭하며 많은 공을 들인 것은 표지였다. 내가 꿈꾼 이미지는 책만 보아도 따스한 햇살과 밝은 기운이 전해지는 동화책 같은 느낌이었다. 그 첫 단추는 딸이 끼워주었다. 나의 의중을 담아 표지의 초안을 만들어 주었고, 출판사로 이어져 다듬어졌다. 나의 바람과 딸의 감각, 그리고 전문가의 손길이 합쳐져 비로소 내가 꿈꾸던 모습을 담은 책이 완성됐다. (이 이야기는 다음 화에....)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는 건, 어떤 면으로는 쉽다. 새해의 설렘과 기대가 등을 밀어주니까. 새 노트를 펼치는 일도 언제나 즐겁다. 하얀 페이지 위엔 무한한 가능성만 있을 뿐이니. 하지만 마무리는 다르다. 벌여놓은 일을 제대로 끝맺는다는 건, 내가 쏟아부은 시간과 노력을 한곳에 모아 세상에 내놓는 일이다. 평가받을 준비가 되었고, 더 이상 수정할 수 없으며, 완벽하지 않은 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마무리에는 시작과는 다른 용기가 필요하다. 열심보다는, 결과물을 겸허히 바라볼 수 있는 느긋한 마음이랄까. 1월 한 달, 루틴마저 포기하며 보낸 정적의 시간도 좋은 매듭을 짓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었다.
이제 내 책상 위엔 지난했던 퇴고의 흔적 대신, 한국행 비행기 티켓이 놓여 있다. 내가 쏟아부은 지난 시간의 결과물, 그 벅찬 선물을 직접 맞이하고 싶어 곧 한국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새롭게 태어난 나의 분신들을 만날 것이다. 1월을 통째로 바친 후 얻어낸 이 평온함과 홀가분함! 마무리를 끝내고 나니 이제 진짜 새해가 시작된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