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국밥 집에서 첫 출간 기념을....
교대역 5번 출구는 한국을 방문할 때마다 지인이나 친구를 자주 만나는 곳이다. 친정집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이면 닿는 거리. 맛집과 카페가 즐비한 이곳은 오랜 시간 소중한 인연들과의 대합실이자 재회의 광장이었다. 이날도 서울의 날씨는 살을 베어낼 듯 매서웠지만, 깜짝선물을 안고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은 설레기만 했다. 45년 절친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하면서.
마을버스에서 내려 5번 출구로 가니 익숙한 그녀의 실루엣이 보인다. 2년 만에 만난 우리는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일단 뜨끈한 점심을 먹기로 했다. 교대역 뒷골목으로 들어서자 줄지어 선 음식점들 사이로 통영 00 굴국밥 집이 눈에 들어왔다. 요즘 같은 추위에 우리의 몸을 데워주기엔 더없이 어울리는 음식이었다.
친구와 나는 동시에 여기다! 하며 국밥집 안으로 들어섰다. 비릿하면서도 싱싱한 굴 내음이 어린 시절 목포 선창가에서 맡던 냄새 같아 반갑다. 낡은 탁자와 한글 차림표. 분주히 오가는 뚝배기 소리까지 더해지니 비로소 내가 한국에 있다는게 실감이 났다. 타국에서 나도 모르게 긴장해 있던 신경세포들이 부드럽게 깨어나는 느낌도 들면서.
잠시 후, 부추를 소복이 올린 굴국밥 두 그릇이 뚝배기 안에서 사나운 기세로 끓어오르며 식탁에 놓였다. 보글거리는 소리와 함께 뽀얀 김이 피어오르는 국물을 한술 떴다. 입천장이 델 듯한 뜨거움이 혀끝에 닿았다가 이내 목덜미를 타고 식도 깊숙한 곳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러자 웅크렸던 몸과 마음이 나른하게 풀리기 시작했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굴을 베어 물었다. 제철을 맞은 굴은 비리지 않고 달큰했다. 겉은 미끄러지듯 부드러웠으나 속살은 탱글탱글하게 씹혔다. 입안에서 툭 터지는 바다의 풍미. 그것은 책상 앞에서 씨름하던 지난 일 년을 보상해 주는 깊고 눅진한 위로였다. 뜨거운 국물을 넘길 때마다 몸 안에 쌓여있던 피로가 콧잔등으로 송골송골 배어 나왔다.
뚝배기의 바닥이 보일 때쯤 가방 깊숙이 넣어두었던 깜짝선물을 꺼내 테이블 위에 놓았다. 아직 잉크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나의 첫 책이었다.
"있잖아. 네게 주는 깜짝선물이야. 어서 풀어봐."
“어머 어머. 이게 뭐야? 설마.... 네 책이야? ”
국밥의 열기로 발그레해진 친구의 얼굴이 순간 멈칫했다. 책상 앞에서 보낸 수많은 밤과 퇴고 끝에 얻어낸 문장들이 드디어 책 한 권이 되어 우리 앞에 놓였다. 그녀는 떨리는 손끝으로 책 표지를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빳빳한 종이의 질감이 그녀의 손끝을 타고 전해지는 듯했다. 친구는 제목을 소리 내어 읽더니 이내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그래 알지. 그것은 오랜 시간 함께 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안쓰러움이고 격려라는 것을. 친구의 눈물은 방금 비워낸 굴국밥의 국물보다 깊게 내 마음을 데워주었다.
우리는 한동안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식당 안의 왁자지껄한 소음은 아득히 멀어졌고 서로의 진심만이 묘한 정적을 만들어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고맙고 짠한 감정이었다. 콧잔등에 맺혔던 땀이 식어갈 무렵, 다시금 느꼈다. 책은 내가 썼지만, 그 시간을 견디게 한 힘은 이런 따스한 마음들이었다는 것을.
식사를 마치고 가게 문을 밀고 나오자 바람은 더욱 거세게 뺨을 스쳤다. 그런데도 춥지 않았다. 친구가 건넨 온기와 굴국밥의 열기가 몸 안을 가득 채웠기 때문이다. 그렇게 교대역 뒷골목의 작은 국밥집에서 소박한 나의 첫 출간 기념을 했다. 그날 느꼈던 온기는 앞으로 써 내려갈 문장들 사이에 오래 스며 있을 것이다.
PS:
지난 한 해 동안 쓰고, 또 쓰며 정성을 다 한 제 책의 출간 소식을 전합니다. 기쁘면서도 짠하고 쑥스러운 마음도 드네요. 그동안 부족한 저의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 인사 드립니다. 더 좋은 글, 진솔한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행복한 설 연휴 보내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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