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한국 나가면 양말 좀 사다 줘.”
한국행 비행기에 오르기 전, 딸이 내게 건넨 부탁이다. 화장품이나 옷, 혹은 특별한 물건을 기대했는데 고작 양말이라니. 트렁크의 금쪽같은 무게를 할애하기엔 너무도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소모품이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딸이 보내온 온라인 쇼핑몰의 링크를 클릭하는 순간, 내가 알던 ‘양말의 세계’가 얼마나 소박했는지 알게 되었다. 컴퓨터 화면 가득 보인 것들은 내가 평생 신어온 무채색의 면양말과는 차원이 달랐다. 은하수를 옮겨놓은 듯 반짝이가 촘촘히 박힌 긴 양말, 수줍게 달린 레이스, 세밀한 자수로 새겨진 이름 모를 들꽃들까지. 그것은 단순한 양말을 넘어 하나의 정교한 공예품 같았다. 양말이란 그저 발을 보호하고 신발 속 땀을 흡수하는 도구로만 여겼던 내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문한 양말들이 도착했고 택배 박스를 열자 화사한 꽃밭이 펼쳐져 있었다. 당당한 자태를 뽐내면서 반짝이고, 살짝 보이는 레이스는 사랑스러움 그 자체였다. 마치 패션의 조연이 아니라, 당당한 주인공이라도 된 듯했다.
화려한 양말들의 매무새를 보고 있자니 이와는 정반대인 투박한 양말 더미가 기억 너머에서 떠올랐다. 바로 친정엄마가 보내주던 것들이다.
오래전, 내가 처음 미국 생활을 시작했을 때 엄마는 계절마다 소포를 보내셨다. 상자를 뜯으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양말 뭉치였다. 미국 집은 바닥이 차다며 엄마는 물건 사이의 좁은 틈새마다 양말을 빼곡히 끼워 넣으셨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흰색이나 연회색 면양말이었다. 세련됨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투박한 뭉치들을 보며 나는 철없이 투덜거리곤 했다.
“양말값보다 비행기 운송료가 더 비싸겠네. 미국에도 양말이 널렸는데 뭘 이렇게까지 많이 보내셨대?”
그땐 젊었고, 발끝의 시림보다는 구속 없는 자유가 더 소중했다. 양말은 발을 답답하게 조이는 거추장스러운 물건일 뿐이었다. 서랍마다 양말이 수북하게 쌓이면 나는 그것들을 지인들에게 나눠주며 은근슬쩍 짐을 덜어내기도 했다. 엄마의 정성이 담긴 양말들이 그저 넘쳐나는 재고처럼 느껴졌던 속없던 시절이었다.
이제 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엄마가 내게 양말을 보내던 때가 지금의 내 나이쯤이었던 것 같다. 엄마도 그 나이가 되자 발이 시렸고, 딸이 발이라도 따뜻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소포의 빈 공간을 양말로 채우셨던 모양이다.
시간이 흐르며 나 역시 어느 순간부터 양말을 찾게 되었다. 여름에도 에어컨을 틀면 발가락 끝의 온기가 그리워졌고, 찬 바람이 부는 계절엔 보드라운 수면 양말에 기대야 하는 나이가 되었다. 맨발의 자유를 즐기다 양말이 주는 안도감까지 느낄 줄이야! 발이 따뜻해지니 몸도 마음도 여유가 생겼다. 신발과 발 사이에서, 혹은 공기와 내 살 사이에서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양말. 어느새 양말은 구속이 아니라 나를 지켜주는 든든한 벗이 되고 있었다.
이제 곧 미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딸이 부탁한 양말들을 하나하나 정성껏 개켜 담았다. 반짝이는 레이스와 화려한 무늬가 즐겁고 유쾌하게 보인다. 예전의 것처럼 칙칙하지도 않고 발랄하다. 글을 쓰다 보니 엄마가 보낸 생존형 양말부터 시작해 친구 같은 시기를 지나, 딸을 반짝이게 해줄 양말까지. 한 편의 ‘양말 연대기’ 같다.
마지막 짐을 챙기며 트렁크의 지퍼를 닫았다.
'부디 딸이 걷는 길이 차갑지 않기를, 딛게 될 하루가 조금은 덜 거칠기를' 바라면서. 이제서야 알 것 같다. 오래전, 소포 상자의 빈틈을 투박한 양말로 빼곡히 채우던 엄마의 마음도 이와 다르지 않았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