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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방장 Jun 06. 2019

장래 희망이 어떻게 되세요?

2018. 9.16.

상반기 손에 꼽는 단 하나의 질문이라면 소개팅남의 "(결혼도 안 하고)앞으로 뭐 되고 싶은게 있어요? 뭐가 그렇게 하고 싶어요?" 였다.
초등학생이였다면 빵집 딸, 슈퍼마켓 딸, 선생님, 음악가, 가수 등등 실현가능성이 낮은 것들을 고작 5초 정도 생각하고 대답했겠지만, 이미 현실을 살고 있는 30대에게 '너의 장래 희망은 뭐니?'라는 질문은 당황스러움 그 자체였다. (하지만 그 뒤로 꽤 진지하게, 심심치않게 곱씹고 있는 질문이기도 하다.)
장래 희망이라는 단어는 20대 전후, 그러니까 대학의 전공을 결정짓고 직업을 갖게 되는 것까지에 부여되는 학생들의 단어처럼 쓰이는 것 아니였던가?

그 것이라면 이루었다. 
음악을 하고 싶어서 피아노를 쳐봤고, 오랜 시간 피아노를 가르쳤고, 공연일이 하고 싶어서 진로를 틀었고, 꿈꾸었던 공연장과 직장에서 일을 해보았다. 어느새 돌아 보니 20대까지 희망하였던 일들이 거진 다 이루어져 있었다. 그 과정이 처절했건, 결과가 애매했던, 어떠하였든지. 

지난 주말에는 이렇게 나름의 장래 희망을 이뤘을 어른들이 스무 명 가까이 한 자리에 모였다.
트레바리의 새 시즌이 시작하는 날이였다.
처음 보는 어색한 사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일의 기쁨과 슬픔,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려는 이유, 그 프로젝트가 물질적인 것인지 정신적인 것인지 등등에 대한 이야기를 친구 앞에서보다도 더 활발하게 이야기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글을 써서 사람들이 읽을 만한 책을 낸다던지,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는 수제맥주를 파는 펍에 투자를 해보고 싶다던지, 동양화를 그리고 싶다던지, 상가 건물을 하나 사서 좋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대여할 수 있는 살롱을 만들어 준다던지, 현재 본업 외에 앞으로 살기 위한 여러 개의 구멍을 만들고 싶다던지.
마치 그 곳은 몰래 품어왔던 풋풋한 장래 희망을 남들에게 함부로 발설하는 장 같았다. 어렴풋한 것들, 확실하지 않은 것들, 어떤 것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는 것들이 내뱉어진 말이 되어 지켜야할 약속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희망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다.
인간은 희망 또는 소망으로 살아간다고 믿는 나였기 때문이다. 그 앞에 '장래'라는 말이 어색했을 뿐이다.
작게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맛있는 것을 먹고 싶다는 단발적인 희망, 5일을 잘 버티면 주말을 맞이할 것이라는 희망. 크게는 오늘이 어그러지더라도 내일은 나아질 것 이라는 희망, 힘든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룰 것이라는 소망.
그 것으로 나는 하루하루 잘 일어나고, 잘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의 장래희망은 무엇일까 생각해 본다.
꽤 오랜 시간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꿈이 있다.
나이가 들더라도 언제나 푸른 청년으로 사는 것이다.
사실 이 개념은 성경에 따왔지만, 언제나 신앙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으셨던 할머니를 보며 이해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얼마 전에 오망진창님이 올렸던 그림 그리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면 된다.
그 청년의 마음이 있다면 나는 이 생을 매우, 잘, 즐겁게, 재밌게 살아갈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의 생애 주기 중 청년이라고 불리는 때, 되고 싶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을 때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말이다.

이제 나도 장래 희망을 이룬 어른들에게 물어보려고 한다.
"장래 희망이 어떻게 되세요?"
단어가 어색하다 뿐이지 우리 모두는 마음 속에 이루고 싶은 것 하나쯤은 품고 살고 있을 테니까.
그것이 꼭 직업과 회사의 이름, 규격화된 어떤 일이 아닐지라도.

예를 들면 난 어떤 상황에서든지 농담을 날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라던지, 패션감각을 잃지 않는 할머니가 되고 싶어라던지,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고 싶어 라던지?

                                                            

    

                                                                                    이번주 제비뽑기 단어는 '장래 희망'과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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