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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로 시작된 딸과의 갈등/한 발짝 물러서며

부모의 마음과 딸의 선택/한 발짝 물러서며, 딸을 바라보다

by 해피걸

타이틀: Why로 시작된 딸과의 갈등/한 발짝 물러서며, 딸을 바라보다
부제: 부모의 마음과 딸의 선택/딸의 진로 결정을 말하며:


총 2주간의 이스터 홀리데이가 지나가고 있었다. 딸은 첫째 주에는 마음 편하게 집에서 설렁설렁 공부하면서 보냈고, 그다음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친구의 18번째 생일 파티로 타지방에 놀러 갔다. 그 친구는 이미 원하는 대학에 합격했으므로 A레벨에 대한 압박이 적었다. 그러나 딸은 달랐다. A레벨 시험이 정말 중요했기에, 수시로 원하는 대학의 오퍼를 받지 못한 후, 이제는 A레벨 점수만으로 대학에 입학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건 한국의 수시와 정시의 차이만큼 큰 차이다.


친구는 본인 입장에서 여행을 계획할 수 있었지만, 딸은 다른 처지였다. 딸은 재수는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에, 이 시점에서 여행을 간다는 것이 나를 불편하게 했다. 그러나 딸은 이미 18살이 넘은 성인이었기에, 내 생각을 강요할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딸이 자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그냥 두어야 했다.


잘 놀다 온 딸은 아침 11시까지 잠을 자고 일어난 후, 점심을 먹고는 넷플릭스를 보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마음이 불편했다. A레벨 시험까지 4주도 남지 않았는데, 이건 단순한 여유가 아닌 중요한 시점이었다. 결국 오후 3시, 나는 딸에게 물었다.


"너 A레벨 시험이 4주밖에 안 남았는데, 여행도 다녀왔으니까 시험 준비를 조금 해야 하지 않겠니?"

딸은 앙칼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 또 공부 얘기야?"


그 순간, 내가 참아왔던 말이 입 밖으로 나왔다.

"너와 000과의 입장이 다르잖아. 그 친구는 A레벨에서 최소 점수만 받으면 되지만, 너는 그렇지 않잖아."


딸은 불만을 드러내며 말했다.
"왜 엄마는 공부만 얘기해?"


나는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내 생각을 말했다.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나는 네가 몸이 약하다고 생각해서 공부와 숙제는 평균만 하라고 했고, 잠을 많이 자라고 했지. 나는 공부를 잘했지만, 그것만으로 인생에서 큰 이득을 본 적은 없어. 그래서 굳이 네가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았잖아."


딸은 대답했다.
"엄마, 내가 대학에 못 가면 엄마 탓이야!"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나는 네가 대학에 가라고 한 적 없어. 대학을 가야 할 필요도 없다고 항상 말했잖아. 그 대신 전공은 신중히 선택해야 한다고 했지."


딸은 조금 더 흥분하며 말했다.
"엄마는 내가 변호사 되는 걸 응원하지 않잖아."


나는 말했다.
"요즘처럼 AI 시대에는 대학을 가서 공부를 하려면 이과를 하는 게 더 좋다고 말한 적 있잖아. 그래서 이과 쪽으로 기술을 익히는 게 더 좋을 것 같다고 말했지."


딸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래도 엄마는 내가 좋은 대학 가기를 원하잖아."


나는 조금 더 차분하게 말했다.
"절대로 그렇지 않아. 나는 네가 실력이 있으면 어떤 대학을 나왔든 중요하지 않다고 항상 이야기했잖아."


딸은 여전히 불만을 품고 말했다.
"그럼 왜 엄마는 내가 변호사 되는 걸 응원하지 않아? 왜? 의사가 아니라 변호사가 되고 싶냐고 자꾸 물어봤잖아."


나는 천천히 또다시 설명했다.

"그건 네가 진로를 어떻게 결정했는지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야. 사실은, 내가 너의 선택을 온전히 응원해줄 수 있을지 솔직히 자신이 없어서 그런 말이 나왔던 것 같아. 알다시피 나는 항상 사람들에게 ‘왜?’라는 질문을 많이 하잖아. 그래서 너에게도 그 질문을 던졌던 거야."


"그런데, 너는 진로결정부터 전부 너가 결정했고, 그렇게 결정한 것에 관하여 대충만 이야기해주었잖아.

그리고 나는 네가 꼭 대학에 가야 한다고 말한 적 없다는 걸 너도 알잖아."


"수없이 얘기했지만, 대학을 간다고 해서 반드시 행복해지는 것도 아니고, 원하는 직업을 얻거나 기대만큼의 수입을 보장받는 것도 아니야. 특히 문과 쪽은 AI의 발전으로 인해 앞으로 더 큰 도전을 맞이할 가능성이 크고."


"실제로 이과 계열조차도 예전만큼 사람을 많이 뽑지 않는 게 현실이야. 한국의 대표적인 명문대 중 하나인 고려대를 졸업하고도 대기업 취업이 어려워서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으면 해외로 진출하는 경우도 많아졌어."


딸은 짜증을 내며 말했다.
"그럼 내가 대학 가는 거, 명문대 가는 것 바라지 않아?"


나는 숨을 한 번 내쉬고, 침착하게 말했다.

"그런 뜻이 아니잖아. 다만, 나는 영국에서는 입학보다 졸업이 더 어렵다고 생각해. 그리고 설령 억지로 명문대에 입학하더라도, 졸업을 못 하고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정말 많아."


"그래서 굳이 자기 수준과 맞지 않는 대학을 무리해서 가는 건 추천하지 않는 거야. 물론 실력이 된다면, 왜 명문대를 추천하지 않겠어? 당연히 가는것이 좋지. 그리고 그 말은 네가 명문대를 못 간다는 뜻은 전혀 아니야. 다만 그런 대학에서는 엄청난 학업 부담과 압박을 감당해야 한다는 거야."


"너도 말했잖아. 이곳 사립학교 출신 언니가 캠브리지에 갔다가, 1년 만에 자퇴하고 런던에 있는 대학으로 다시 입학했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랑 아빠는 대학보다 네 건강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그래서 한 번도 너에게 꼭 대학에 가라고 한 적 없어. 오히려 네가 스스로 대학에 가고 싶다고 했던 거잖아."


"엄마는 한국이 후진국일 때 태어났고, 늘 문제를 일으키시는 외할아버지 때문에 가정형편도 어려웠어. 물론 엄마 자신도 당시에는 지혜롭지 못했지. 그래서 가끔씩 엄마는 생각해 누군가가 나에게 진로에 대해 제대로 된 멘토 역할을 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그랬다면, 지금처럼 늦은 나이에 공부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나는 네 가가 엄마처럼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런 조언을 해주고 싶었어. 그런데, 너는 네가 원하는 진로를 선택한 이유를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아서. 그냥 대충 이야기하는 것처럼 느껴져.

예를 들면, 네가 왜 그 진로를 선택하게 되었는지, 얼마나 네가 그것을 원하는지 제대로 이야기한 적이 없잖아. 그러니까 엄마는 계속해서 너에게 의구심이 들고.

그리고 무엇보다 네가 대학에 가고 싶다면 적어도 A레벨시험이 끝날 때까지는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시험 끝나면 너는 충분히 놀 수 있잖아. 지금까지 2년 동안 영국에 와서 공부방법부터 적응하느라고 거의 2년 동안 힘들었잖아. 이제는 그 끝이 보이는데, 왜 끝에 와서 이러니?"


딸은 더 이상 대화가 하기 싫은지, 입을 닫아버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꽝 닫았다.

나의 경솔함으로 시작된 갈등은 날까로운 말들과 공기를 남기고 끝나버렸다.


나는 출산을 한 후, 늘 생각해왔다. 나 역시 나의 부모로부터 "너, 세상에 태어날래? 말래?" 하고 물어보는 일 없이 그냥 세상에 나오게 된 것처럼, 나 또한 내 딸에게 태어날지 말지를 묻지 않았다. 남편과 함께 딸을 낳기로 결정했기에, 그에 따른 책임을 적어도 딸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온전히 져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평생 결혼도, 출산도 생각해본 적 없던 나는 결혼 생활도, 자식을 기르는 일도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더 어렵게 느껴진다. 아마도 선천적으로 약한 몸을 타고난 탓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자식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숙제였고, 지금도 여전히 어려운 숙제다.


진로 전문가인 내가 딸과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은 마음을 참 답답하게 했다. 말없이 아래층으로 내려가 성경 말씀을 듣기 시작했다.


왜? 딸은 본인이 좋아서 시작한 공부를 하면서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까? 그 이유를 나는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한 번도 내가 좋아서, 내가 결정한 일에 대해 부모를 탓해본 적이 없다. 아니, 탓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비록 가난했지만, 친정엄마의 무한한 사랑과 친구들, 지인들에게서 받은 따뜻한 우정과 온기로 마음을 채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이 나에게 "엄마 때문이야"라고 말할 때마다, 그 말의 깊은 뜻을 나는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와는 다른 감성을 지닌 남편을 꼭 닮은 딸을 이해하는 일은, 내게 여전히 낯설고, 그래서 더 외롭고 서운하다.


연구에 의하면,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18세가 되면 성인의 몸으로 완성된다고 한다(16세인것 같은데?) 하지만 두뇌와 정서적 지능은 만 25세가 되어야 성숙된다고 했다. 그래서 18세의 청소년들은 성숙한 어른들의 조언이 필요하다고 항상 말해왔지만, 나의 딸은 그런 이야기를 귀담아 듣지 않는다.


나는 계속해서 '왜?'라는 생각을 반복하며 두 시간이 흘렀다. 당혹감, 죄책감, 그리고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의구심이 마음을 맴돌았다.


그때, 문득 한 문장과 단어가 떠올랐다.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부담감, 공부에 대한 압박감, 그리고 본인이 잘하고 싶은 열망.'
이건 어쩌면 내가 아니라, 딸 스스로가 자신에게 주는 부담감 때문이 아닐까?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만들어낸 부담감은 아닐까?

자신이 세운 목표에 도달하고 싶은 간절함과, 그로 인한 압박감 때문은 아닐까?

딸은 매일 자신에게 "너는 더 잘할 수 있어" 라는 말을 반복하며, 자신을 압박한다.
성적을 잘 내야 한다는 생각, 실수를 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이 딸을 괴롭힌다.
이런 부담감이 점점 더 쌓이면서, 때로는 혼자서 이를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지 않았을까?

본인이 본인에게 주는 부담감!

그 모든 감정이 딸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딸은 외부의 압박보다, 스스로에게 주는 압박이 더 클지도 모른다.


그 순간, 나는 꼭 딸에게 이 점을 확인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마침 그때, 집 위층에서 딸이 무언가를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뭐 하고 있냐고 물었더니, 딸은 “엄마가 공부하라며”라는 말과 함께 책상 위에 놓여 있던 모니터, 키보드, 마우스, 마이크까지 모두 정리해버렸다. 여전히 뚱한 얼굴을 한 딸은, 혼자만의 전쟁을 묵묵히 이어가고 있었다.

Why로시작된딸과의갈등한발짝물러서며딸을바라보다부모의마음과딸의선택딸의진로결정을말하며.jpg 책상 위에 있던 모니터와 키보드,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마이크까지 모두 정리된 모습. 대신 벽에는 공부한 내용이 담긴 마인드맵이 빼곡히 붙어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딸은 블루택(bluetack)을 찾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다.
“마인드맵을 벽에 붙여야겠다”는 짧은 말만 남기고.
그 후, 딸은 한동안 2층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TMI: 나중에 딸이 자신의 방을 보여주었는데, 벽에는 족히 30장이 넘는 마인드맵이 붙어 있었다.저녁식사를 준비한 후, 딸에게 내려오라고 말했다.


얼굴을 보니, 아까보다는 훨씬 부드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한번 말해볼까?"

“혹시 네가 지금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이유가,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더 잘하고 싶다’는 부담감 때문이니?”

딸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맞아, 엄마. 그게 맞아.”


그 순간, 딸은 마치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내가 대신 꺼내준 것 같다는 표정을 지었다.

딸은 자신의 마음속 생각을 길게 설명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엄마는 가끔 딸의 머릿속과 마음속에 있는 생각을 단어로 끄집어 내기 위해 미로 찾기나 퍼즐 맞추기를 하는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속으로 외쳤다. “유레카! 드디어 찾았다. 딸이 힘들어했던 이유를.”

이제 답을 찾았으니 된 거다. 더 이상 이 문제로 딸과 갈등을 빚지는 않을 것이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나는 내가 좋아서 선택한 일에 대해 남을 탓해본 적이 없다. 항상 ‘내가 부족해서 그렇지’라고 스스로를 자책하곤 했다. 자책을 많이 하는 편이다.


그래서였을까, 자신이 선택한 공부에 대해 남을 원망하는 딸의 태도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본인이 원해서 하는 공부인데, 왜 다른 사람을 탓하지?’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원래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공부를 잘하던 사람들은 공부를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반대로, 학창 시절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데 더 열중했던 부모들이 오히려 공부하지 않는 자녀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한다고들 한다.


물론, 이 말이 모든 경우에 다 맞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반화의 오류일 수도 있고, 편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 고등학교 시절을 돌아보면, 그 말이 전혀 틀리지만은 않다고 느낀다.

당시 3년 내내 공부보다는 동네 오빠와 연애하며 놀러 다니던 친구가 있었는데, 지금은 우리 중 가장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고, 자녀 교육도 참 잘해낸 후, 결혼까지 잘 시켰다.

그래서, 적어도 내 경험을 바탕으로 보면 그 말에는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시작된 나와 딸의 대화는 주제를 바꾸며 한참 동안 이어졌고, 결국 딸이 안아달라고 하여 서로를 안고 마무리되었다.

이제 더 이상 나와 딸은 이 문제로 갈등하지 않을 것이다.


딸의 진로 결정을 말하며:

딸: "엄마, 나는 의사가 되는 게 정말 싫어. 아무리 기술적으로 좋은 직업이라도, GP처럼 매일 아프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계속 만나는 일은 너무 힘들 것 같아. 그들의 고통을 계속 듣고, 그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너무 크고, 내 마음이 점점 고갈될 것 같아. 그리고 Surgeon은 더 싫어. 밤낮으로 수술을 하느라 나만의 시간이 전혀 없잖아. 나는 그럴 수 없을 것 같아"


"엄마 말대로, 제주영어교육도시에서 의사인 친구들의 아빠들이 자녀들과 시간을 제대로 보내지 못한다고 하잖아. 나도 그런 삶은 못 살겠어. 약사도 나랑 맞지 않아. 매일 약을 조제하면서 단조로운 일만 반복하는 것도 너무 지겹고, 물론 언어학을 공부하거나 선생님이 되어 영어를 계속 공부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방학이 길고 세계를 돌아다닐 수 있는 기회는 좋지만, 특히 시끄럽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은 내게 맞지 않는 것 같아."


"그래서 나는 변호사가 되고 싶어. 다른 사람을 돕는 일이지. 엄마처럼, 아빠처럼, 그런 일을 하고 싶어. 그리고 엄마가 말한 것처럼, 나는 유죄를 무죄로 만들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형량을 줄여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잖아. 케이스마다 다르고, 매번 새로운 도전이 있다는 점도 흥미롭고 지루하지 않아서 좋아. 게다가 나중에 직장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일할 수 있는 것도 큰 장점인 것 같아."


"엄마, 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게 변호사가 되고 싶었고, 그 막연함은 중학교 때 MUN 경험을 통해 확실해졌어."


마침내, 딸은 3년 동안의 진로 결정을 엄마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자세히 설명해 주었고, 나는 더 이상 의구심을 품지 않게 되었다. 결국, 딸은 변호사가 되기로 결정을 내렸고, 나는 그 결정을 존중하며 응원할 수 있게 되었다.


때로는 갈등을 진실되게 보여주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이는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이다. 특히 성격이 완전히 다른 모녀 사이에서는 더더욱 필요하지 않겠는가.

Why로시작된딸과의갈등한발짝물러서며딸을바라보다부모의마음과딸의선택딸의진로결정을말하며2.jpg A레벨이 끝날 때까지 책상 위에 있던 모니터와 키보드, 마우스, 친구들과 화상통화를 할 때 쓰던 마이크까지 모두 가져다가 내 방에 두었다.

한 발짝 물러서며, 딸을 바라보다:

요즘 딸의 친구들이 인스타그램을 통해 대학 합격 소식을 하나둘 전하고 있다. 물론 그들 역시 5월에 치를 IB 시험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지원한 대학에 무난히 입학할 것이다. 그중에는 딸이 지원한 런던의 대학교에 합격한 친구도 있다. 전공은 다르지만, 총 13년 동안 제주국제학교에서 함께한 친구들이 새로운 출발선에 서 있는 모습이 참 예쁘고 대견하다.


하지만 우리 딸이 지원한 런던의 대학에서는 아직 아무런 답변이 없다. 혹시 인터내셔널 학생들만 먼저 입학을 허락한 것일까? 아니면 갭이어를 한다고 해서 떨어진 것일까? 딸은 잘 모르겠다고만 한다.

어차피 갭이어를 하기로 했으니, 올해는 입학하지 않을 것이므로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려 한다. 대신, A레벨 시험 결과는 반드시 좋아야 한다. 정시 결과를 바탕으로 다시 입학 원서를 넣어야 하기에, 지금은 시험 준비에 집중해야 한다.


친구들보다 1년 늦게 시작한다고 해도, 그게 무슨 문제겠는가? 딸이 스스로 선택한 공부와 진로를 따라 대학에 가고, 그 이후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그것은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행운일지도 모른다.


제주영어교육도시의 학생들 중에는 진로가 아직 명확하지 않은 채 대학을 선택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떤 부모들은 대학 입학 후 자녀가 길을 다시 고민하더라도,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여유가 있다. 그렇기에 진로를 뚜렷하게 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영국의 A레벨은 IB와 달리, ‘왜?’라는 질문에 깊이깊이 파고들어 공부하는 방식이다. 창의성이 중요한 IB와는 또 다른 결이다. A레벨은 한국의 수능과 IB의 중간쯤 되는 시험 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A레벨 시험은 과목별로 각각 다른 날에 치러진다. 5월 중순부터 6월 초순까지 일정이 분산되어 있어, 학생들은 자신이 치를 시험 날짜에 맞춰 등교해 시험을 본다. 아직 자세한 구조는 모르지만, 이렇게 정리해 본다.


가끔은 평범한 부모로서 제주국제학교 학부모들의 든든한 재력과 지원이 부럽다. 자녀가 길을 바꾸더라도, 언제든 새로운 선택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어 보인다. 그만큼 자녀 입장에서 입시 부담이 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일까, 요즘 A레벨 시험을 앞두고 나는 매일같이 기도한다. ‘제발 딸아, 시험에 떨지 말고, 네가 공부한 만큼만 펼쳐보기를.’ 그리고 또다시 이상한 떨림을 느낀다. 딸이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서 대학과 사회로 나아갈 준비를 마쳐가고 있다는 실감이 점점 더 또렷해진다.


외동딸을 둔 엄마는 다자녀 가정의 엄마와는 다르다. 모든 것이 새롭고 놀랍고, 때론 혼란스럽다. 엄마라는 역할, 입시생의 엄마라는 역할 모두 처음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딸이 세상에 온 그날부터 나는 이 아이를 책임지기로 선택했다. 이제 곧 그 선택에 대한 가장 기본적인 의무를 다하는 날이 다가오고 있다.


시험이 끝나면, 우리는 함께 여행을 다녀올 계획이다. 그 후 딸은 직업을 찾을 것이고, 나는 딸에게 살림하는 법을 하나하나 가르쳐주려 한다. 특히 한식을 좋아하는 딸에게, 된장찌개 끓이는 법부터 김치 담그는 법까지 가르쳐야겠다.


갭이어가 끝나면 딸은 대학에 가고, 나는 90년 된 낡은 부엌에서 또 하나의 빈자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처음엔 그 자리가 허전하고 적막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 자리도 딸의 이야기로 채워질 것이다. 내가 만든 된장찌개를 떠올리며, "엄마 밥 먹고 싶다"며 툭 내뱉는 메시지를 받는 순간들이 그 빈자리를 따뜻하게 채울 것이다.


그런데도 나는 감사하다. 딸이 건강하게 자라준 것, 자신의 길을 스스로 찾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또 생각한다. 어쩌면 제주 어딘가에서 또 다른 엄마가 같은 마음으로 딸을 키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곳 학교는 괜찮은지, 그 딸의 꿈은 어떻게 자라나고 있는지.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어도, 우리는 같은 걱정과 기도로 아이들을 키워가고 있는 것 아닐까.


딸이 떠난 자리마다 부모는 조금씩 침묵을 배운다. 그리고 그 침묵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을 돌보며 키우기 시작한다. 이제는 누군가의 부모로서가 아닌,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연습을 시작해야 한다.

딸이 자신의 세계를 향해 힘껏 날아갈 수 있도록, 나는 오늘도 한 발짝 물러서며, 그 자리를 조용히 비워두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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