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의 가슴에 멍울이 생겼다.
드디어, 대학병원에서 편지가 왔다.
편지에는 일반외과 의사이름과 날짜, 시간, 대학병원 위치, 그리고 준비해야 하는 사항이 적혀있었다.
특히 눈길이 가는 것은 Please bring with You:파트였다.
A list of questions you wish to ask during your appointment.
A list of your current medication.
서울의 유명한 대학병원에 가서 의사를 만날 때 나의 기억으로는 3분을 넘기면 안 되는 것(물론 법적으로는 아니지만, 암묵적으로)으로 알고 있는데, 이곳은 질문사항을 적어오라고 편지에 쓰여있네???
아무튼 새롭다.
딸의 가슴에 멍울이 생긴 후, 3개월 만에 대학병원 진료를 받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기회라는 말은 3개월 만에 대학병원에 가서 외래로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것이 내가 살고 있는 영국에서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암이라든지, 급히 처치를 요하는 경우는 제외하고...
12월 남편이 한국으로 돌아간 후, 딸이 말했다.
딸:"엄마, 가슴에 멍울이 잡혀ㅠㅠ"
나:"뭐! 언제부터"
딸:"11월부터"
나:"근데, 왜 지금까지 이야기하지 않았어?"
딸:"NHS홈페이지에 들어가서 알아보니까, 발견된 후, 4주 동안 지켜본 후, 안 없어지면 그때는 GP예약하라고 해서..."
나:"아니, 이곳에서 GP예약하는 것이 핏케팅인거 몰라? 왜 미리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이곳은 한국이 아니잖아!! 도대체 왜 그러니!!!"
딸:"엄마한테 말하면, 미리 걱정하고 난리가 아닐 거잖아ㅠㅠ"
나:"이것은 신경 쓰고, 걱정해야 할 문제잖아! 문제의 사안을 구별하지 못하니? 이곳이 한국이라면, 별문제가 안 되잖아! 곧바로 병원에 가서 전문의 진료받고, 초음파 찍는데, 이틀이면 충분한데, 이곳은 아니잖아!!!"
"도대체 왜? 너는 왜 너의 아빠랑 똑같니ㅠㅠ. 누가 병원 빨리 가면 누가 잡아먹는데!!! "
아차, 자녀 앞에서 아빠의 허물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는데...
나는 내가 제일 싫어하는 남편의 단점들이 딸을 통하여 나타날 때, 나도 모르게 이성을 잃는다.
남편과 딸은 병을 키우는 사람들이다.
병을 키워서 나를 아주 당황하게 만들곤 한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소뚜컹보고 놀란다고.
주로, 입원이나 수술을 요하는 문제들로 나를 여러 번 가슴 벌렁거리게 만든다.
어떻게 둘이 그렇게 똑같은지... 머리는 좋은데, 고집은 황소만 한 미련곰텡이들이다.
정신을 가다듬고, 동네의원의 의사(GP)를 예약한 후, 진료를 받았다.
진료를 받던 날, 딸은 혼자서 진료실을 들어갔다. 자신이 이제 만 16세가 지났기 때문에 예비성인이므로, 혼자서 의사를 보고, 진료를 받겠다고 우겼다. 어쩔 수 없이 그러라고 했다. 마음 같으면 함께 들어가서 뭐라고 하는지 듣고 싶었는데...
결론은, 의사가 말하기를, 혹시라도 생리전후로 인하여 가슴에 멍울이 생겼을 수도 있으므로, 4주 후 생리가 시작된 후까지 지켜보자고 했다고 하였다.
제기랄, 내가 이럴 줄 알았다.
제주도였다면, 당일 오후 또는 늦어도 그다음 날에게 급하게 초음파 자리를 만들어서 찍을 수 있어서 결과를 알 수 있는데...
아악! 속에서 천불이 나서 밖에 나가서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였다.
영국으로 역이민을 온 후에 제대로 되는 일이 없네ㅠㅠㅠ.
그렇게 딸과 나는 기다렸고,
5주가 지난 후, 딸은 생리가 시작되었지만, 가슴멍울은 없어지지 않았다.
나는 또다시 동네 GP을 예약했다.
그날은 더 이상 딸을 혼자 진료실에 보낼 수가 없었다.
물론 딸은 극구 혼자서 들어가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외동딸을 둔 엄마가 자녀를 양육할 때, 흔히 저지를 수 있는 실수 중에 하나는 친구 같은 역할을 많이 하다 보면, 그것에 빠져서 엄마의 권위와 위엄을 상실해 버릴 수도 있다.
나는 이번만큼만은 반드시 함께 들어가서 의사와 대화를 해야만 했다.
결국 딸은 고집을 꺾고 함께 들어가자고 했다.
그날은 루이자라는 여자의사선생님게서 나와 딸을 맞았다.
이곳은 3~4명의 의사가 돌아가면서 환자를 보는 시스템이다.
아마도 현재의 영국의 GP의원의 시스템이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오늘은 영국인이었고, 굉장히 노련해 보였으며, 환자를 다루는 태도가 수준급이었다.
딸의 마음에 쏙 드는 유능한 의사에게 진료받기를 원했던 바람이 이루어졌다.
그녀와 딸은 증상과 기간등에 관하여 자세히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러는 동안 나는 옆에서 가만히 듣고 있었다. 그 대신 의사가 질문하는 질문 1개에 대해서만 대답했다.
딸의 조건이었다. 진료실에 함께 들어가는 것은 허락하지만, 의사에게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고 듣고만 있으라고^^. 나는 자칭 질문마왕이다.
뇌과학자는 본질을 파악하기 위한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창의력이 있는 사람이고, Ai시대에 필요한 사람이라고 추켜세우는데, 우리 집에서는 나는 말 많은 엄마, 아줌마로 비추어지곤 한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의사가 묻기를, 친가와 외가 쪽으로 혹시 유방암에 걸리신 분이 있었는지를 물을 때에만 대답할 수 있었다.
딸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주장해야 한다는 확고한 정체성이 있다.
질의와 답변이 끝난 후,
의사는 딸에게 문진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때 나는 처음 딸과의 약속대로, 진료실 밖에 나가 있을까?라고 딸에게 물었다.
그때, 딸이 머뭇거리자,
센스 있는 의사는 딸에게 "내가 문진을 할 때, 커튼을 칠 거거든, 그때, 엄마는 여기 의자에 앉아서 우리가 대화하는 것을 들어도 되고, 아니면, 밖에 나가서 기다리셔도 돼. 어떻게 할래?"라고 물으셨다.
Great! 지혜로운 의사시구나.
딸에게는 자신의 의사를 선택할 수 있는 선택권을 먼저 주셨고, 그와 동시에 나에게 걱정하는 엄마의 처지를 생각해서 기회를 주고자 하셨다.
딸은 흔쾌히 엄마가 있기를 선택했고,
나는 감지덕지한 마음으로 커튼밖에서 의사가 문진 하는 상황을 전부 들을 수 있었다.
의사는 차분한 말투와 메너로 딸과 interactive 한 대화를 하면서, 문진을 하셨다.
자칫 여성의 중요 부분을 문진 할 때, 불편한 느낌을 최소화하기 위한 배려심을 장착하시면서도 철저하게 진료하셨다.
문진후, 의사는 말했다.
가족력이 없고, 담배와 술도 하지 않는다면, 현재로서는 Breast Tissue(가슴조직) 또는 Cyst(Cystactic:유방낭종) 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자신의 손이 엑스레이기계가 아니므로, 대학병원의 의사에게 이관하겠다.
2주 안에 대학병원에서 편지가 올 것이고, 그러면 예약날짜를 잡아서, 대학병원에 가서 그곳에 있는 의사에게 다시 진료를 받도록 해라. 절차는 대학병원에서 의사를 본 후, 그 의사가 추후 그에 따른 검사를 진행해야 한다면, 또다시 시간이 걸리겠지만, 진행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2주 안에 대학병원에서 아무런 소식이 없다면, 또다시 자신을 찾아와라.
한국은 대학병원의 전문의에게 이관 시에는 진료소견서 한 장 받아서 가면 되지만, 이곳은 동네 GP가 이 환자는 반드시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아야 한다는 의사소견서를 제출해야 한다. 이곳에 있는 대학병원은 1개이고,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수많은 동네 GP에서는 환자들을 보낼 것이다.
그곳에서는 그것들을 검토한 후, 빨리 봐야 할 것들을 추려서 진료를 보기 때문에
보통 대학병원의 의사를 만날 수 있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자칫하면 몇 달이 지나서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가 진료소견서를 잘 써야 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렇게 되면, 환자와 가족들은 기다림의 수렁에 빠져서 힘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딸은 말했다.
딸:"엄마, 오늘 의사 선생님은 굉장히 좋으신 분 같아"
나:"어떤 점이?"
딸:"저번에 처음 문진했었던 의사 선생님도 괜찮기는 했는데, 그분은 문진 할 때, 차근차근 묻고, 문진 하는 대신 조금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했었던 점들이 있었거든."
다른 이들을 비판하는 것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 딸의 성격으로 인하여,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은 혼자서 저번에 만났던 의사가 그리 썩 마음에 들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좋은 의사 선생님 만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딸은 곧 주제를 바꾸어 저녁은 뭘 먹느냐고 물었다.
밥이라고 했더니, 오늘은 피자를 배달해서 먹으면 안 되느냐고 했다.
그래! 기분이다. 도미노피자 먹자! 제주도였다면 피자알보로 먹자였을 텐데^^.
P.S. 나에게 있어 현재 가장 약한 부분은 딸의 건강이다. 나이 40에 첫딸이자 유일한 딸을 낳을 때,
나는 지극히 높으신 그분께, 딱 1개만 요청드렸다.
손가락, 발가락 10개씩 있는 건강한 아기만 주세요라고
태어나기를 허약한 체질로 태어나 서울의 대학병원을 문지방이 닳도록 넘었던 나였기에,
나는 그것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도 나는 내가 아픈 것보다 딸의 건강을 위해 염려하고 기도한다.
왜 하필이면, 모든 의료가 제대로 갖추어진 제주도가 아닌 영국에서 벌어졌는지에 대한 불평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찰나,
책"사이토히토리의 1퍼센트 부자의 법칙"에서 처럼,
"나는 왜 이렇게 불행한 걸까?" 대신 "나는 참 운이 좋아."라고 소리 내어 말함으로써 혈액 순환부터 마음의 파동까지 모두 좋은 쪽으로 바뀐 것입니다-출처:사이토히토리의 1퍼센트 부자의 법칙, 출판사나비스쿨, page80
대신, "딸은 참 운이 좋아. 빨리 발견되었잖아 그리고 좋은 의사 선생님을 만나서 진료소견서가 대학병원에 접수되었고, 그래서 대학병원에서 진료받을 수 있어서(발견된후3개월만에) 감사하다"를 외쳐본다.
To be contin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