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두 사람이 만나, 오른쪽 두 사람을 만들어 냈다. 우리가 만들어낸 두 아이들이 ' 아이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부부는 그렇게 인생의 모든 희로애락을 함께 할 것이다.
● 2020.8.17.(월)
● 길고 길던 장마가 끝난 건가? 오랜만에 비 안 오는 날
● 예스 맘의 워킹맘 다이어리:: 부부 싸움과 화해
(부제:부부는 무엇으로 사는가? 사랑? 믿음? 책임감? 동료애? 전우애? ㅎ)
남편과 나는
12살 딸, 7살 아들을 함께 키우며
공동운명체로 묶여 산지
13년 차가 된 부부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런저런 사적인 기록들과 사진을 올리고 있는 SNS인 '카카****"를 통해 남편과 나의 신혼시절부터 지금까지의 일상을 보아왔던 지인들은 나에게 말한다.
"언니, 정말 형부같이 자상한 남편도 없을 것 같아요." (난 속으로 대답했다. '네가 살아봐라~~~')
"워니 엄마, 어쩜 그렇게 복도 많아. 그렇게 다정한 애들 아빠 흔치 않아." ( 난 속으로 대답했다. '과연 그럴까요?')
"누나, 복 받았는 줄 알아. 매형 같은 남자 없어. 돈을 못 벌어? 아들. 딸 다 낳고.... 누나한테 잘하잖아."(난 속으로 대답했다. '돈은 나도 벌고, 아들도 딸도 둘 다 내가 생사를 오가며 자연분만으로 낳았거든!')
하아~~~~~~~난 이렇게 내 남편에 대한 과장된 평가가 나올 때마다 말한다.
"그렇다고 해~" " 그런 걸로 하자." 후훗 ㅎ
하나하나 말해 봐야 남들이 내 맘을 속속들이 다 알아줄 리 만무하고, 또 이해하고 알아준들 나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노릇이니.... 그냥 보이는 대로 남편이 자상한 남편, 다정한 아빠로 평가받는 것에 일일이 반박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한편, 나에 대해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누님, 전 정말 회사에서 누님을 몇 년간 보면서 느끼는데, 회사 일도 열심히 하고, 애들도 잘 키우고, 형님은 정말 복도 많으셔요. 그리고 무엇보다 누님은 항상 밝잖아요." (난 속으로 대답했다. '네가 나랑 살아 봤니? ㅋㅋㅋㅋ')
"10년 넘게 알고 지내면서 느끼는 건데, 자기 남편 정말 복도 많다. 와이프가 가까운 곳으로 전입 와서 직장 생활도 오래오래 하고, 딸 낳고, 아들 낳고 두 애들 누구 도움도 없이 혼자 다 키워내며 살림도 똑 떨어지게 하고 자기가 야무진 건지, 남편이 복이 많은 건지 모르겠네~"(난 또 속으로 대답했다. '과연, 내 남편도 이런 생각을 할까요?')
보이는 것과 실상은 많이 다를 수 있다. 아주~~~~~~~~~~ 많이!
sns에 굳이 부부 싸움한 이야기, 절망적인 순간, 고통의 기록을 남기는 이들은 많치않을거다. 나 역시 그렇고... 추억하고 싶고,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을 올리다 보니 당연히 우리 부부가 아주 행복하게 사는 줄만 안다. 움~~ 대체적으로 나쁘지는 않지만,
그러다 어느 봄날 아이들과 서울구경도 하고 하루 자고 올 요량으로 호텔을 예약하고 서울 나들이를 갔을 때였다. 호텔에 짐을 풀고 호텔 앞 덕수궁으로 산책 나가려고 나는 어깨에 메는(저 사진 속 남편이 멘 ) 내 가방에 아이 둘이 마실 물이랑 물티슈 등등 애들 필요한걸 잔뜩 챙겨 넣는데.... 남편은 화장대 앞에서 자기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작은 크로스 백에 세상에~~~~~~~~자기 향수 한 병만 넣는 거 아닌가? (이런~! 정말 욕 나올 뻔..... ) 나는 지고, 이고 애들 거 챙겨서 나가는데 자기 향수만 한병 달랑 가방에 넣는 남편의 홀가분한 산책 준비에 화가 확! 났다.
하아~~" 이 남편님아!!! 내가 너님을 얼마나 더 가르쳐야 하는 거니????? "
맘은 정말 당장 소리 내어 싸우고 싶었으나, 아이들이 지켜보고 있고 올만에 호텔까지 예약하고 온 서울 나들이인데 망칠 수가 없어서...
"오빠?! 지금 뭐해? 향수 빼고, 당신이 이 가방 메고 가요!" (그 후론 나는 외출 시 내 몸만 다니고 있다. 모든 짐은 남편이 지고 이는 걸로~가르쳤다. 더군다나 지금은 내가 심한 목디스크로 인해 귀걸이, 목걸이 조차 안 하고 있으니 모든 짐은 남편의 몫이 되었다.)
흐음~
내가 직장으로 돌아온 지난 3년간 난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한때 '긍정의 아이콘'이라고 불렸던 나는 세상 비관적인 사람처럼 늘 마음이 각박했다. 더군다나 복직 후 너무 힘든 상황에서 친정엄마와도 마음의 거리가 생기며 나 홀로 메마른 사막에서 언제 나올지 모르는 오아시스를 찾아 꾹~ 참아내며 걷고 또 걸어가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워킹맘 전사로 살아냈던 날들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친정 엄마와도 관계가 회복됐고, 남편도 내가 목디스크가 터진 후 수개월을 고생하다 서울 메이저 병원에 함께 진료 갔을 때 교수님이 내 MRI 영상을 보자마자 2초도 안돼서
"왼쪽 신경이 꽉 막혔는데, 왼팔 쓸 수 있어요? 수술해야지."
라고 말하는걸 남편도 자기 귀로 직접 듣고 그간 내가 얼마나 아팠을지 실감이 났던 모양인지, 지금은 내 입에서 이런저런 가사와 육아에 대한 요구 사항이 나오기 이전에 스스로 잘 챙기고 있다. 내가 고생했던 시간의 두배만큼 자기가 더 많이 짊어져야 한다는 각오도 한 듯하다.
불과 몇 달 전 남편과 부부 싸움하며 내가 이런 말을 했다.
"당신과 내 관계가 내 목디스크 같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 시간 어깨가 결리고, 등이 그렇게 아팠는데도, 나 혼자 참고 참고 인내하며 만성 피로려니.. 남들도 다 이렇겠지.. 하고 참다가 알고 보니 신경이 견딜 수 없을 만큼 터져서 흘러내리는 내 목디스크처럼... 이미 터져버린지 한참이 지나 터진 상태가 굳어버려 다시는 원래대로 돌아갈 수 없는.. 그런 관계"
남편은 나의 이런 발언에 적잖이 충격을 받았고, 절망스러운 표정이 역력했다. 그 말을 내뱉을 때 나도 정말 절망스러웠다. 몸이 너무 아팠고... 밤마다 왼쪽 등이 화끈해지고 왼팔이 스르르 힘이 풀리는 이상야릇한 통증의 연속으로 너무 힘겨웠다. 그리고 너무 서러웠다. 내 몸이 이렇게 된 게.. ' 왜? 그렇게 미련하게 나 혼자 다 하고 살았을까? ' 싶었다.
만약에, 만약에 우리 부부 사이에 워니와 쭈니가 없는 상황에 이런 절망이 우리에게 찾아왔다면 각자의 길을 찾아보자고 했을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워니와 쭈니가 있었다. 우리 둘이 만나 이 세상에 없던 워니와 쭈니를 만들어 세상에 내어놓았으니 연약한 이 아이들이 남편과 나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만나는 행복도 스스로 즐기고, 어려움도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성인이 될 때까지는 굳건히 함께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사랑이나 믿음이 아니라 책임감이든, 동료애든, 전우애든 그 무엇일지라도 부부는 공통된 목표가 있다. "내 아이의 행복"
그리고 그 목표를 이뤄가는 동안 남편과 내가 호흡을 맞춰가는 것이 팀워크가 됐든, 서로 간의 의리가 되었든 간에 맞잡은 손을 뿌리치고 한 사람이 아무 데로나 내달려서 마음대로 달아나서는 안 되겠다는 현실적 계산까지 이르렀다. 나도 남편도 건강해야만 한다.
그리고 비록, 오래전부터 터져서 굳어버린 디스크일지라도 수술이라는 의학적 방법이 남아있는 것처럼 남편과 나의 부부관계도 워니와 쭈니에 대한 우리 부부의 애정이 남아있고 남편과 나도 서로의 책임감에 대한 단단한 믿음이 있기에 충분히 회복해나가며 행복한 가정으로 이끌고 갈 수 있다는 것에 합일점이 닿았다.
마냥 자상하게만 보이는 남편, 다정하게만 보이는 아빠인 내 남편과 뭐든 다 잘하고, 언제나 밝고, 무한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는 아내인 나. 우리 부부도 부부싸움을 한다. (그것도 매우 치열하게~~~~^^;;;)
그리고 그 부부싸움은 때론 정말 손에 무기만 안 들었지, 전쟁을 방불케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우린 둘 다 우리가 만든 이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가 만들어낸 워니와 쭈니 두 아이를 세상 그 무엇보다 사랑한다. 그래서 화해한다.
문득 노래 가사가 생각난다.
"우린 늙어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익어간다."는...
노래 가사말처럼
남편과 나는 '싸우고 화해하고 싸우고 화해해며..'
그렇게 함께 익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