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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랑하던 보노보노 Feb 24. 2024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는데

그 '때'가 지금일까?

 제과제빵에 대한 내 관심의 시작을 거슬러 올라가면 다분히, <내 이름은 김삼순>이라는 드라마가 그 시작이었을 것이다. 검색해 보니 이는 지난 2005년 6월 1일부터 7월 21일까지 MBC에서 고작 한 달 반 정도 방영한 16부작 드라마. 하지만 파급력이 워낙 컸던지라 방영 이후 관련학과의 입학 경쟁률이 한껏 치솟았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당시 드라마 속 삼순이 언니는 서른의 (그 시절 그 표현 그대로라면)노처녀였고, 뚱뚱했고, 그러나 자기가 좋아하고 잘 하는 일을 업으로 하며 능력을 인정받는 당찬 모습이 매력적인 여성이었다. 거기다가 키 크고, 잘생기고, 오천만 원짜리 수표쯤은 앉은 자리에서 박박 찢어버릴 수 있을 정도의 재력이 있는 동시에, 어딘가 애처로워 십대 여중생의 본능 깊숙이 파묻힌 모성애까지 끌어낼 지경의 남자친구마저 쟁취해내는 멋진 언니였고 말이다. 간단히 쓰고 보니 참 전형적인 신데렐라(에 더해 약간의 평강공주) 스토리인어쩜 요소요소들을 그리 맛깔나게도 버무려 놓으셨는지…. 그야말로 국민을 웃고 울린 명작 중 하나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센세이셔널했던 드라마 덕분에 나도 '홈베이킹'이라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지금에 와 생각해 보면 그것 역시 서울에 터를 잡으신 부모님의 은혜로, 지하철이며 시내버스를 타고 한 시간 정도면 드라마 속 삼순이 언니가 장을 보러 가던 방산시장에 직접 갈 수 있었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미리 학교 컴퓨터실에서 인터넷에 접속해 쪽지 한 장에 빼곡히 적은 정보들을 한손에 쥐고 골목골목을 헤맸다. 주말 같은 때에 부모님 가게를 봐드리고서 탄 용돈을 모아 홈베이킹에 필요한 온갖 기초 기물들을 하나둘씩 사 모으고, 마침 그 가게가 책방이었기에 홈베이킹 책도 몇 권이고 가져와서 보고, 또 마침 집에 있던 가스 오븐레인지를 이용해 첫 쿠키를 구웠다.

 오븐이 필요해서 산 게 아니라 그 집을 살 때에 애초에 설치되어 있던 가스레인지가 하단에 오븐이 있는 제품이었던 터라 쓰지 않는 오븐 공간은 주방 잡동사니를 넣는 서랍 정도로 방치되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안에 들어 있던 물건들을 전부 끄집어내서 내부를 깨끗이 닦고, 책에서 시키는대로 예열을 해서 정성껏 반죽한 쿠키들을 넣어 알람을 맞춰놓고 기다렸다가 꺼냈다. 그런데 책에 나온 사진만큼 먹음직스러운 비주얼이 전혀 아니었다. 가족들은 막내딸이 온 주방을 폭탄맞은 것처럼 만들어놓으면서 구웠다는 손바닥만한 과자를 그럭저럭 먹을만 하다며 드셔주셨지만, 결과물은 실상 잘못하면 이가 부러질 정도로 딱딱한 석탄 쿠키였다. 당시에는 한두 번을 더 구우면서 책에서 말한 시간이 다 되기 전에 꺼내보는 등 나름대로 해결하고자 노력을 했지만 반죽한 것을 다 버릴 때까지 제대로 된 쿠키맛이 나지 않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다. 그렇게 한동안 의기소침에 있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보니, 오븐이 외제라 화씨로 표기된 것이 실패의 이유였다. 다시금 신이 나서 레시피상 섭씨로 표기된 온도를 화씨로 변환해 구우면서는 그럭저럭 재료값은 하는 완성품들을 만들어내 주변에 선물도 하곤 했다.

 그렇게 열성적으로 구워대던 것도 잠시, 원체 한 가지를 오래도록 좋아하는 일이 잘 없던 나는 방산시장에서 잔뜩 사가지고 온 재료가 채 다 동나기도 전에 홈베이킹에 흥미를 잃어가고 말았다. 아무래도 사먹는 것만큼 완성도 높은 맛이 나오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데다, 일머리가 있을리 만무한 나이라 온통 어지럽힌 주방을 정리하는 데에도 너무 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 컸던 것 같다. 그래도 잊을만하면 베이킹에 대한 열정은 다시 또 다시 솟아오르기 일쑤였고, 그때마다 까눌레 틀이니, 식빵 틀이니, 바게트 틀 따위가 하나둘 늘어났다. 한번은 충동적으로 고가의 반죽기까지 산 일도 있고, 십여 만원짜리 온라인 강의를 구매해서 끝까지 다 수강하기도 전에 기한이 만료된 일도 있었다.


 이쯤 되면 '베이킹은 나랑 안 맞는구나'하고 생각하는 것도 평소 내 사고의 흐름상 불가한 일이 아니건만…. 왜 또 2024년 3월을 앞두고 그 해묵은 열정이 문득 되살아나버린 것일까.


 이번 이직을 준비하면서 제주로의 이주를 다시 꿈꿔보며, 당장에 게스트하우스를 개업할 셈이 아니라면 어딜 가든 당분간은 피고용인으로 살아야만 하니 몇 가지 자격증을 갖추어볼까 하는 생각이 스쳤던 건 사실이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습관처럼 생각만 하는 일로 그칠 수 있었는데, 이왕 이 지역을 떠나지 않기로 결심한 이상 이 기간을 무언가 더 의미있게 보내고 싶은 욕구가 솟았는지도 모르겠다. 단숨에 근방에 국비지원 자격증반이 있는지부터 검색해 봤고, 사장님께 제안받은 새로운 퇴근시간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더라도 꼭 알맞게 도착할 수 있는 곳에 학원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게다가 지역 특성상 인구감소인지 하는 취약 지역으로 분류되어 올해 6월까지는 자기부담금 없이 전액 국비지원으로 무료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어버렸다. 하지만 주 5일 근무를 하며, 주 4일 학원을 다니고, 틈틈히 한국어교원 자격증 수업도 온라인으로 수강하겠단 계획은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을런지. 모든 걸 열심히 하려고 하던 것도 잠시, 이내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버릴까 걱정이 되는 것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라 아직 망설이는 중이다.


 이럴 때는 역시나 내면의 운명론자가 고개를 불쑥 든다. 기도와 명상으로 신청기한이 임박할 때까지 이 사안에 대해 깊이 고민해보기로 하자. 어찌 보자면 별것 아닐지 모를 자격증 한 장이지만, 오래 묵은 숙원사업(?)이니만큼, 이 때가 과연 드디어 찾아온 운명의 그 때인지를 알기 위해 스스로의 내면을 꼼꼼히 살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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