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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정 Jul 20. 2023

보리 덕분에 얻은 억지휴가

뇌출혈&쇠골골절 그리고 9일간의 입원

3주 만에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6월 마지막 주... 5주 차 휴가을 앞두고 신나는 마음에 보리와 산책길에 나섰습니다.


보리도 저도 너무 신이 났다 봅니다. 산책을 시작하고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 사고가 났습니다. 퇴근하고 늘 집 앞공터에서 배변을 하고 빌라 광장에서 보리랑 해피와 함께 가볍게 뜀박질을 하곤 합니다. 평소 보리는 빨리 뛰지 않고 목줄이 단기면 뒤를 돌아보고 서기 때문에 그동안 광장을 여러 바퀴 뛰어도 아무렇지 않았습니다. 다만, 함께 뛰다 보니 저만 좀 힘들 뿐이지요~ㅋ  



그날도 어김없이 광장을 들어서면서 뛰어볼까? 하고 생각하던 찰나의 순간 사고가 났습니다...

보리가 순식간에 앞으로 뛰어가서 저는 놀랄 새도 없이 광장 바닥으로 내동댕이 쳐지고 말았습니다... 순간 의식을 잃고 바닥에 누워 기절했습니다.


다행히 보리는 뛰기를 멈추고 곧바로 뒤로 돌아와서 해피와 함께 제 옆에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엄마가 바닥에 왜 누워 있는지 영문도 모른 채요. 1~2분 정도 지나서 곧 의식이 돌아온 저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하고 한동안 바닥이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해피와 보리는 여전히 제 옆에 껌딱지처럼 붙어있었습니다.


해피와 보리도 저를 따라 가만히 앉아있었습니다. 그렇게 잠 쉬 쉬고 나서 집에 들어가려고 일어났는데... 우리 집이 기억나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이사를 온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몇동몇호인지가 기억에서 사라졌습니다.


103동과 104동 사이에서 어정쩡하게 서서 '우리 집은 어디지?'라고 기억해 봤지만 도무지 생각이 나지 않았습니다. 마치 제가 치매에 걸린 사람 같이 느껴졌습니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핸드폰의 가족방에 단톡을 을 찾아보니 다행히 우리 집 주소가 나와서 102동 앞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공동현관 비번이 생각이 나질 않았습니다. 남편이 통화가 되지 않아서 큰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가 넘어져서 공동현과 비번이 생각이 안 나는데... 뭐야?"
큰딸은 장난일 줄 알았나 봅니다.
"엄마, 왜 그래? 장난쳐?"
"아니, 보리랑 산책하다 넘어졌는데 머리를 다쳤나 봐... 기억이 안 나..."

큰딸은 너무 놀라서 비번을 알려주고 괜찮은지 연신 물었습니다.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가서는 침대에 누워 한참을 기절한 듯 누워있었습니다.

보리와 해피는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목줄도 풀지 못하고 침대옆에서 저를 바라만 보고 있었습니다.


얼마 후 연락은 받은 남편이 양평에서 내려왔습니다. 너무 어이없어서 헛웃음이 난다면서... 보리를 혼낼 겨를도 없이 저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습니다. 응급실에서 CT와 엑스레이를 찍고나더니 머리는 '뇌출혈'과'뇌진탕', 어깨는'쇠골골절'이라고 하면서 바로 입원실로 옮겨졌습니다.


9일간의 입원... 감작스런 상황이라 난감했습니다. 어쩔 수업은 상황이니 입원기간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집필 중이었던 원고가 퇴고를 앞두고 있어서 원해 있는 기간 동안 마무리 해보기로 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어쩌면 이 상황이 나에게 주어진 휴식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가벼워졌습니다.


다음날 남편이 노트북을 챙겨 와서 입원기간 동안 열심히 원고를 여러 번 수정하며 퇴고하게 되었습니다. 맞춤법도 많이 틀리고 이야기 흐름도 이상한 부분을 여러 번 수정하고 다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밤이 되어도 잠들지 않는 병원에서의 새벽시간을 글을 쓰며 보내다 보니 그리 길게 느껴지지도 않았습니다.


저에게는 이번사고가 쉼표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비록 아직 오른팔을 쓰기는 힘들지만 일의 매듭을 짓듯이 잠시 쉬며 마무리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퇴원 후 양평으로 나로 올라갔는데... 10일 만에 본 엄마를 반가워하며 껌딱지처럼 붙어있는 보리를 보니 오히려 사랑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사고는 사고일 뿐 다음엔 더욱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은 보리 덕분에 억지로 얻은 휴가로 퇴고를 마치고 투고를 한 첫날입니다.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기를 누르는데 어찌나 설레던지요. 두근두근해서 클릭하는 순간... 전율이 올라왔습니다.



글쓰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을 다시한번 하게되고 글을 통해서 새로운 인연을 만나고 아픔과 슬픔, 즐거움과 희망을 나눌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인연을 많이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요즘 수해로 많은 사고들이 있어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에 비하면 저의 사고는 새발에 피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수해피해자분들의 빠른 복구를 기원하고...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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