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한다. 좋은 일과 나쁜 일이 반복되어 예측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남편이 퇴사하고 본부장으로 승진하고 얼마 안 된 나는 갑자기 유방암 진단을 받았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처음 의사 선생님께 결과를 들으며 많이 놀랐다. 하지만 그보다 남편과 아이들, 폐암 전이로 수술하신 아버지, 직장동료들에게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할지가 더 걱정이었다.
남편은 퇴사하자마자 폐암투병을 하시는 친정아버지를 간병했다. 그게 얼마나 되었다고 나까지 암이라니... 그래서 유방암 진단 때도, 수술 일정을 잡을 때도 혼자 해결하려고 했다. 나 때문에 괜한 걱정으로 신경을 쓰는 게 싫었다. 처음에는 남편도 퇴사 중인데 나까지 이런 병을 얻다니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오히려 혼자 암투병을 해야 하는 상황에서 남편이 옆에서 지켜주는 것이 버팀목이 되었다. 일주일간 입원을 했을 때는 한시도 옆에서 떨어지지 않고 간호해 주었다. 내가 힘들어하면서 내는 짜증도 다 받아주었다. 장인어른과 나의 간병을 둘 다 맡아서 해야 하는 남편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유방암 수술을 하고 항암을 시작하고 그 해 12월 항암치료를 마칠 때쯤 되어서야 주변 사람들에게 암 소식을 알리게 되었다. 모두들 전혀 아픈지 몰랐다면서 놀라기도 하고 걱정하기도 했다. 저는 힘든 내색을 안 하는 성향이다. 힘들어도, 아파도 참고 불만이 있어도 잘 표현하지 않는 편이다. 내가 좀 참고 이해하면 모두가 편하다고 생각하니까.
18년간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일하면서 아이 키우는 게 참 쉬워 보인다면서 "국장님 아이는 원래부터 워킹맘 아이로 세팅된 것 같아요."라고 애기들 했다. '힘든 내색하지 않고 표현하지 않으면 다 쉬워 보이는구나.'라는 생각에 조금은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나도 사실 많이 힘들었다. 겉으로 씩씩한 척하지만 장녀로 맏며느리고 본부장이라는 위치라서 혼자서 다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이고 책임감으로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묵묵히 했을 뿐이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생각으로...
잘 표현하지 못하는 나의 성격상 ‘지치고 힘들다’라는 말을 가족에게 하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있다. 그저 나만 감내하면 되겠지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큰 딸이 항암을 마치고 난 후 ‘엄마가 암이라고 했을 때 너무 놀라고 겁나서 혼자 울었다며 엄마가 더 힘들까 봐 차마 표현하지 못했어요’’라는 편지를 전해줬을 때같이 끌어안고 펑펑 울기라도 할 걸 그랬다는 아쉬움이 많이 남았다. ‘나만 힘든 건 아니었구나’ 곁에서 그걸 지켜보는 가족이 있다는 걸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힘든 일을 겪고 나니 슬프면 슬픈 대로, 힘들면 힘든 대로 가족과 함께 나누고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라는 것을 느꼈다. 꼭 위기와 정면돌파해서 싸워 이기는 것만 정답이 아니다. 비바람이 불 땐 잠시 멈춰서 비를 피하고 다시 길을 나서도 된다.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벼랑 끝에 내몰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내 옆에는 든든한 남편과 가족이 있었다. 그래서 힘들지만 회사생활을 병행해 가면서 일을 지속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