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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슈보다 손수건이기를. 코로나 세대

by 공감의 기술


1980년대.

서울의 봄에 이은 광주 민주화 운동. 그리고 6.29 선언까지 대한민국은 정치적, 사회적으로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대학 캠퍼스는 일 년 내내 최루탄이 끊이질 않았다. 80년대 중반 저유가, 저금리, 저물가 이른바 3저(低) 현상으로 경제만은 단군 이래 최대 호황을 누렸다. 경제성장률이 해마다 10% 이상 넘었으니 하루가 다르게 나라는 커졌고 일자리는 넘쳐났다. 대학 강의실 대신 교문에서 돌멩이를 던져도, 학점이 바닥을 기어 다녀도 졸업장만 있으면 취업 걱정은 없었다.


1997년 11월.

나라가 망했다. OECD 가입과 동시에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이 되었다며 샴페인을 터뜨렸다. 몇 달도 지나지 않아 국가 부도가 났다. 세계 통화기구(IMF)에 구제 금융을 신청했다. 환율은 거침없이 치솟았고 굴지의 대기업마저 비틀거렸다. 온 국민이 부도난 나라를 살리려고 집집마다 보관한 돌반지, 금반지를 비롯하여 있는 금 없는 금 다 긁어모았다.

IMF의 도움을 받은 대가는 혹독했다. 대기업은 연쇄적으로 쓰러졌고 구조조정은 하루가 멀다 하고 단행되었다. 고용시장은 매서운 한파로 얼어붙었다. 어제까지 멀쩡히 다니던 직장에서 쫓겨나고 그 자리는 고용 유연화가 들어섰다.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비정규직 일자리가 생겼다.

1980년대 취직 걱정하지 않던 세대도 IMF 외환위기는 피할 수 없었다. 양복을 입고 회사 대신 오락실로 출근했던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2015년.

이 시대의 든든한 미래가 되어야 할 젊은이들이 N포 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치솟는 물가, 허리가 휘는 등록금과 학자금 대출 상환, 기약 없는 취업난, 자고 일어나면 일 년 치 연봉보다 더 오르는 집값... 과도한 삶의 비용으로 경제적, 사회적으로 압박을 받는 젊은이들이 하나둘씩 포기를 시작했다.

연애, 결혼을 포기하고 결혼을 하더라도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가 등장했다. 친구 만나고 인간관계를 맺는 것도 돈이 들어 부담스러웠고 치솟는 집값은 언감생심이었다. 내 집 마련과 인간 관계도 포기한 5포 세대가 되었다. 나아가 계층 간의 사다리는 사라지고 개천에서 용 나는 시대는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꿈도 희망도 물거품이 된 7포 세대가 냉혹한 현실이 되었다.

포기해야만 할 게 너무 많은 이 세대를 가리켜 N포 세대라고 불렀고 지금까지 이어졌다.


2020년 봄, 여름 그리고 가을

1991년 생 A군이 7년째 근무하던 직장에서 쫓겨났다.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여파로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자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권고사직을 당했다. 말이 구조조정이지 강제해고나 다름없었다. 바이러스가 7년의 세월을 추억의 뒷장으로 넘겨버렸다.

1992년 생 B군. 오랫동안 준비해 작년에 취득한 자격증이 아무 쓸모가 없게 되었다. 나이 제한에 걸렸던 작년 여름, 마지막 도전에서 가까스로 합격한 국가 항공 정비 자격시험이었다. 작년엔 일본 여행 불매 여파로, 올해는 코로나 창궐로 하늘 길이 막히자 채용하는 곳이 한 군데도 없었다. 손 놓고만 있을 수 없어 공무원 시험 쪽으로 방향을 틀었으나 공무원 시험 합격은 하늘에 별따기라 쉽지 않다. 여러 번 겪어 놀랍지는 않으나 실은 자포자기 상태다.

1993년 생 C양. 올해 초까지 복지 센터에서 강사로 일을 했다. 코로나 19 사태로 센터가 폐쇄되었다. 몇 달이 지나도 감감무소식이다. 눌러앉아 있자니 부모님 볼 면목이 없고 모아놓은 돈도 없어 사정이 점점 어려워진다. 시간제 아르바이트 자리를 찾고 있으나 이마저도 코로나 여파로 여의치 않다. 오늘은 아버지뻘 되는 아저씨와 한 자리를 놓고 면접을 봤다.




국가가 망해 먹고 살기 힘들어지고 일자리마저 없어 심한 취업난을 겪었던 당시 20-30 세대를 'IMF 세대'라고 일컫었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나라가 부도난 그때를 지금도 IMF 사태라고 부를까요.

IMF 사태를 겪은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중년이 된 IMF 세대보다 더 힘든 세대가 생겨났습니다.

학자금 상환, 경기 침제로 인한 취업난, 치솟는 집값. 사회, 경제적으로 압박받던 N포 세대를 비롯한 청년층이 코로나발 직격탄을 맞아 생긴 '코로나 세대'입니다.


코로나 판데믹 이전에도 정부는 청년 고용 정책을 최우선시했지만 단기 아르바이트 일자리 만들기에 급급해 일명 '일회용 티슈 일자리'란 말이 나올 정도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는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코로나의 유행으로 코로나발 고용대란을 겪고 있습니다. 전 세계 경제가 마비되고 각 나라마다 국경을 폐쇄했습니다. 전 세계 경제가 어려움에 빠졌고 수출만이 살길인 우리나라 기업들은 일자리 창출은 고사하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위기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코로나 이후 경영난에 시달리자 신규 채용을 축소하고 비정규직 직원들을 내보는 등 권고사직만 늘어나는 실정입니다. 직장인 70% 이상이 코로나로 실직당할 수 있다는 불안을 안고 산다고 합니다.


언제 종식될지 모르는 불확실성과 글로벌 경제 침체로 코로나 세대는 취업, 실업, 실직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돈, 인간관계, 결혼, 내 집 마련, 꿈과 희망 모든 걸 포기한 마당에 이제 뭘 더 포기해야 할까? 남은 건 쌓아만 놓은 스펙뿐입니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해 밤낮으로 공부하고, 학점을 잘 받기 위해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했습니다. 취업을 하려니 토익점수도 있어야 하고 어학연수도 필요하다고 해서 아르바이트해가며 점수를 따고 연수를 다녀왔죠. 자격증이란 자격증은 죄다 응시했고, 없는 시간 쪼개서 봉사활동도 했습니다. 정규직 취업을 위해 인턴으로 열정 페이를 바쳤고 공모전에서 상 하나 받아보려고 무진장 애를 썼습니다. 최종 면접이 당락을 좌우하기에 운명을 바꾸고자 성형수술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른바 '취준생 9종 세트' 스펙을 쌓느라고 보낸 청춘도 보람 없이 현실은 채용소식 감감, 알바마저도 별따기입니다.

단군 이래 최대의 스펙을 가진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올해 상반기 채용기업이 적어 몇 군데씩 지원했지만 아예 면접조차 불러주지 않는 곳도 수두룩했다고 합니다.

'백수보다 코로나가 더 무섭다'는 말이 실감 나는 현실입니다.




앞으로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코로나 세대가 IMF 외환 위기, 글로벌 금융 위기 때보다 훨씬 절망적인 시간을 보낼 가능성이 크다는 현실이 난감합니다.

우리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청년들이 아직 제대로 된 출발조차 못한 채 인생의 행복을 맛보기도 전에 시작부터 위기에 빠져 힘겨워합니다. IMF 세대보다 더 불행한 코로나 세대라며 자조합니다.

하루아침에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에, 누구나 힘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기에, 코로나가 언제 끝날지도 모르기에 당장 나아지지는 않을 거라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자리가 성장이며 복지이고, 행복한 삶의 시작'이라는 일자리 위원장이자 대통령의 말이,

'내일을 기대하며 희망을 키워갈 수 있는 사회를 기필코 만들겠다'라고 외친 힘 있는 정치인 말이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기를 기대해 봅니다.


한두 번 쓰고 버리는 티슈가 아닌, 진득하게 오래 쓰는 손수건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쓰다 아무렇게나 버려지는 티슈가 아닌, 땀도 닦고 눈물도 닦아주는 손수건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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