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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04. 2020

“No”라고 말할 용기, 거절하기

사람들로 번잡한 버스터미널, 구부정한 허리를 힘겹게 펴며 할머니가 학생에게 사정을 한다.

"며칠 동안 먹은 게 없어서, 너무 배고파서.. 국수 한 그릇 먹으려고 해도 돈이 모자라서.."

허름한 차림에 주름이 깊게 파인 얼굴은 울상이다.

국수 한 그릇 해봤자 3-4천 원, 드려야 될 것 같은데 드리자니 학생 호주머니 사정이 빠듯하고 그냥 가자니 삼강오륜도 모르는 패륜아가 된 듯하여 망설이는데, 할머니의 한 마디가 고민을 싹 해결한다.

"천 원만 있으면 되는데..."

학생은 얼굴에 환한 미소를 지으며 거금 천 원을 드린다. 뿌듯한 기분을 느낀다. 잠시 뒤 버스에 오른 학생은 천 원을 손에 쥐며 홀연히 사라졌던 할머니를 다시 본다. 국수를 드시는 게 아니라 또 다른 젊은이에게 사정사정을 하고 있었다.

뿌듯했던 기분은 사라지고 왠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왜지?


"이 일 좀 해줄 수 있어? 내가 바쁜 일이 있어서 말이야."

상사가 나에게 자신을 잡무를 던지다시피 한다. 처음엔 인정받고 싶어서, 아랫사람이 위 사람을 위하는 마음이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상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떠민다. 중요한 일도 아니고, 내 할 일도 아직 많은데, 나도 고민할 시간이 필요해서 "안됩니다"라는 대답이 턱밑까지 올라온다.

"고마워, 역시 믿음직해. 정말 든든해."

상사는 잠시 망설이는 순간을 포착해 입에 발린 칭찬을 남발하며 돌아선다. 상사의 마음이 다칠까 봐 그동안 쌓아 올린 관계가 무너질까 봐 'No'라고 하지 못한다. 유유히 사라지는 상사의 뒷모습과 내 앞에 잔뜩 놓인 잡무를 번갈아 보며 한숨만 쉰다.

거절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하며 떠맡은 일을 한다.  


할머니에게 헌납하다시피 한 돈 천 원과 천사의 미소를 가장한 상사에게 받은 업무는 애교 수준이다.

"보험 하나만 들어주라. 이달만 잘하면 진급도 가능하다고! 나 좀 도와주라. 우리가 남이가?"

친척이 들이미는 보험 계약서다. 모르는 사이도 아닌 데다가 거절했다간 평생 원망을 들을 판이다. 나 때문에 진급을 못하다니? 이 정도면 부탁이 아닌 협박 수준이다. 한 달에 고작 몇만 원 때문에 진급을 못해 출세길이 막힌다면 앞으로 어떻게 얼굴을 보고 살 것인가? 생각이 여기까지 들면 마음은 한없이 약해진다. 결국 싫어도 보험을 계약하고 만다.

몇 달 뒤 승진에 도움을 준 은혜를 갚기는커녕 또 다른 보험을 들이미는 행동에 할 말을 잃었다.  


"우리 친구 아이가?"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했다.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사귀는 친구를 보라는 말도 있다. 어릴 때부터 친구와 사이좋게, 친하게 지내야 한다고 배웠다. 남는 건 사람뿐이라는 말과 함께.

친구 따라 강남은커녕 친구 믿고 보증 섰다가 패가망신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본다.

친구의 간곡한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눈물로 애원하는 친구를 진심으로 믿었다가 뒤통수를 맞는다.  

부탁할 때는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고, 사고 나면 철천지 원수가 된다.  




남의 부탁을 거절하기 힘든 사람이 많습니다. 상대가 친한 친구이거나 직장 상사, 친척이라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싫은 일은 물론 내가 손해 보는 일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릿속은 '안돼'라고 외칠뿐 거절하지 못합니다.

들어주지 않고는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고 심하면 내가 이기적인 인간인 것 같아 괴롭기까지 합니다.

상대는 이처럼 착한 사람의 어질고 여린 면을 이용해 미안한 감정을 유발합니다. 단호하게 거절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괜한 죄책감이 일어나 거절하지 못하게 합니다.


부탁을 받게 되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합니다. 대개 다음과 같은 반응을 보입니다.

부탁을 받으면 거절하지 못해서, 상대가 기분 나빠할까 봐 일단 수용부터 하는 사람입니다. 이러다가는 남의 뒷치덕 거리만 하는 불상사가 생깁니다.

부탁을 받으면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걸 나보고 하라는 거야?" 하며 놀라거나 화를 내는 경우입니다. 거절은 잘됐지만 인간관계는 엉망이 됩니다.

부탁을 받으면 "일단 생각해볼게"라고 대답합니다. 생각해보겠다, 알겠다 같은 대답은 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많습니다. 그러나 상대는 긍정적인 답변으로 받아들여 기대를 합니다. 계속 피하고 기다리게 하면 믿음 없고 말뿐인 사람이 됩니다.

모두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관계 형성에 적잖은 어려움만 남깁니다.


거절을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거절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거절을 잘할 수 있을까요?

하기 싫은 부탁을 거절하지 못하고 후회를 하면 자칫 병이 됩니다. 싫고 좋고를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Yes"라고 하는 사람은 더욱 심각합니다. 이런 사람은 우선 시간을 끄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부탁을 받고 성급하게 대답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지, 꼭 해야 되는지, 나에게 더 중요한 일은 없는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받자마자 승낙부터 할수록 후회할 가능성이 많습니다.


흔쾌히 들어줄 수 없는 부탁이라면 거절에 대한 상대방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미안하지만 내가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정중히 거절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거절을 하고 나면 그 뒤가 편치 않습니다. 다음날 얼굴 볼 일이 걱정이 되고 차라리 들어줄 걸 하며 후회를 합니다. 하지만 그러는 게 낫습니다. 부탁을 들어줘도 후회, 거절해도 후회가 든다면 후자가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들어주고 열 받는 것보다 거절하고 좀 미안한 게 낫다는 논리입니다.

살다 보면 모든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실망을 하는 건 당연합니다.

거절하는 경험을 하게 되면 다음에는 거절하기가 훨씬 수월해집니다. 조금씩 스스로를 삶의 중심에 두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들어줄 건 들어주고 안 되는 건 안된다고 명쾌하게 밝히는 태도가 부탁한 사람과의 관계에도 긍정적입니다.


친구만 무조건 믿었다가 낭패를 보고 상사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해 쌓인 일에 허덕이다 건강을 상합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는 의사 표현이 한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일을 받고 안 받고는 내가 들일 시간입니다.

보험을 들고 안 들고도 내가 지급하는 돈입니다.  

투자를 하고 안 하고도 내가 감당해야 할 결정입니다.

이 모든 게 나의 권리이자 책임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며 쩔쩔매며 미안해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거절해서 끝나는 관계라면 거기서 끝내는 게 더 낫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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