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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05. 2020

인생의 모범답안을 찾아서


 엄마 젖을 떼면서 한글을 배웁니다. ㄱ, ㄴ, ㄷ. 그리고 가, 나, 다. 말로만 하던 엄마, 아빠를 이렇게 쓰는구나를 알게 되고 글자를 나란히 세워 단어를 알아갑니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죠.

 영어를 배웁니다. 걸음마를 하자마자요. A, B, C. 그리고 I, You, hello, Thank you. 들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면서 단어를 외웁니다. 문장을 머릿속에 집어넣습니다. 그리고 문법이 어쩌고 저쩌고. 우리말도 아직 서툰데 영어까지. 머리가 아픕니다.  

 수학도 배워야 합니다. 1+1=2, 2X2=4, 연산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전에 이미 조기교육은 시작되었어요.

 '아빠가 붕어빵을 10개 사 왔는데 엄마가 4개를 먹고 이모가 3개를 먹었다. 그럼 몇 개 남았을까?' 

 아이의 대답 '내 꺼는?' 

 머리가 크면 방정식을 필두로 집합, 함수, 미적분, 기하 등등. 수학의 길은 멀고 험합니다.

 답안지에 적힌 모범답안대로 문제를 풀고 맞히면 기뻐하고 틀리면 야단을 듣기도 하죠. 그래도 모범답안이 있어 편했습니다. 모르면 답안지를 보면 해결이 되니까요. 하지만 인생은 답지가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학교를 갑니다. 처음엔 왜 가는지도 몰라요. 남들 다 가니까 당연히 가는 걸로 압니다. 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야 한대요. 공부 잘해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쳐요. 학교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는 착한 아이가 되라고 가르칩니다. 틈만 나면 들어왔던 이야기, 어른이면 누구나 할 것 없이 한 번쯤은 덕담이라며 하신 말씀입니다.

 공부 못하면 훌륭한 사람은 못 되는 것일까요? 이런 생각은 잠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말고 책 속에 길이 있으니 얼른 찾으라고 합니다.


 사회에 나와서는 번뜻한 직장을 가져야 합니다. 열심히 일해서 승진도 하고 인정도 받아야 하고요.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다 보면 부모의 심정을 알게 되고 비로소 어른이 된다고들 하죠.

 '세상에서는 착한 일을 하고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 '불쌍한 사람은 도우며 형제와 친구끼리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노력만 열심히 하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으니 땀 흘려 일하라', '돈 많이 벌어서 얼른 부자가 되어라'

 지금껏 살아오면서 마치 인생의 정답이라고 들었던 내용입니다. 이렇게만 살면 모범 답안을 찾은 마냥 행복해질 거라 하면서요.  


 하고 싶은 건 다음에, 원하는 건 공부 다 마치고 해도 늦지 않다고 하죠. 여태 그렇게 달려왔습니다.

 타고난 재능도 다르고 관심사도 제각각인데 누구나 똑같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든 사람이 가던 길로 가야 한다면서 말입니다. 적성에도 맞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아 방황도 하지만 그렇게들 살아갑니다.

 하지 못한 일에, 이루지 못한 일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 아쉬움마저 살면서 잊어버립니다.


 시키는 대로, 하라는 대로 살아왔지만 이룬 것보다 아직도 모자란 게 많습니다.

 나이는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뿌듯한 마음보다는 갈수록 불안하고 걱정만 쌓여갑니다.

 내가 한 일보다 하지 못한 일이 더 많고 나보다 앞선 사람들만 눈에 들어옵니다.

 노력이 부족해서일까요? 정성이 모자란 걸까요?  혹시 답을 잘못 찾은 건 아닐까요?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려갑니다. 어느 날은 시간이 왜 이리 더디게 가나 싶은 날이 있고 1분이 1년 같은 힘겨운 날도 있었죠. 하루가 365바퀴를 돌고 나면 다들 드는 생각은 비슷합니다. '진짜 시간 빠르다.'

 시간이 빠르다고 몇 번 아쉬워하고 나면 이미 어른이 되어 버렸습니다.

 살아온 날들과 살아갈 날들이 엇비슷해질 때쯤이면 '나는 뭐하고 살았나?' 한 번쯤 돌아보게 됩니다.




 그제야 또 다른 모범답안을 받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모범답안에 눈길이 갑니다.

 '하고 싶은 거 하고 살아라', '한 번뿐인 인생인데 마음 가는 대로 살아라', '꿈을 실현시켜라' '인생을 소중히 여겨라'라고 합니다. 들을 때마다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한편으로 지금까지 살아온 여정이 마치 아무 생각 없이 허비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어릴 때 이미 생각했던 것들이니까요.


'내가 하고 싶은 게 뭐였지?'

'나에게 꿈이라는 게 있기는 했나?'

'마음 가는 대로 살면 누가 밥 먹여주지?'

신이 주신 망각으로 꿈은 잊었고, 현실과 이상의 괴리 앞에 가슴은 뛰어도 머리로는 망설여집니다.


 지금껏 모범답안을 찾으려고 애썼습니다.

 국어 문법, 영어 단어, 수학 공식처럼 삶이 단순하지 않잖아요.

 듣도 보도 못한 여러 법들, 예로부터 내려오는 도덕, 인간이라면 가져야 한다는 상식, 자본주의 사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제 논리까지 이 모든 건 인간 스스로가 모범답안이랍시고 만들어낸 관념일 뿐입니다.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아니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데 딱 들어맞는 모범답안이 어디 있을까요?

수많은 사람들이 얽히고설킨 세상에 똑 부러진 정답이 얼마나 되겠어요?


 사과로 태어났으면 사과 주스로 만들어져야 제대로 된 삶이잖아요. 모든 사람들이 오렌지 주스를 좋아한다고 사과를 오렌지로 바꿔보려 헛힘만 쓰며 살지 않았나 싶어요. 

 노력은 노력대로 들고, 생고생만 하고, 실망은 내가 하고, 결과는 참담할 뿐이죠.  

 사과는 사과다워야, 오렌지는 오렌지다워야 제맛이 난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제야 알게 될까요?




 인생에 모범답안, 정답을 찾아 참 많이도 돌아왔습니다. 

 정답인 줄 알고 좋아했다가 얼마 안 있으면 오답이었고, 오답인 줄 알았는데 그게 정답이 되어 기뻤던 적도 있었죠. 내일이면 도로 오답이 될지 다시 정답이 될지 모르면서 말입니다.


 인생에 분명한 정답은 있습니다.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이 정답을 받아 들어요.

 "인생은 단 한 번뿐이라는 것, 두 번의 기회는 없다"라는 사실입니다.

 모범답안이 시시하다고 되는대로 살아서는 곤란하겠죠. 그렇다고 한 번 뿐인 인생이라며 너무 집착하면 정답이 진짜 빨리 와버릴지도 몰라요.

 한 번 뿐이기에 소중하게 사는 게 삶에 대한 의무이지 아닐까 싶습니다.


 과거는 지나간 역사, 히스토리라고 합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미스터리하고 하죠. 그래서 현재를 감사하라며 현재를 '선물 Present'라는 유명한 말을 되새겨봅니다.

 바보들은 오늘을 잊은 채 내일을 꿈꾼다고 해요, 오늘을 버려둔 채 지난 향수에 푹 빠져 있기도 하고요. 내일이 다가와 내 것이 될지 안 될지 모르는데, 향수가 되살아 현실이 되지도 않는데 말이죠.


 지나간 과거, 내 역사 속에는 숱한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다가올 내 미래는 어찌 될지 알 수 없지만 그 속엔 꿈이 들어 있습니다. 추억을 모으고 미래를 꿈꾸며 지금을 살아갑니다.

 지나간 추억에 빠져도 보고 꿈꾸는 미래를 상상합니다.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이 순간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보다 더 나은 모범답안을 찾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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