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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04. 2020

웬수 같은 짝꿍, 아름다운 짝꿍

 난생처음 학교라며 가본 초등학교 입학식 날, 그리고 한 학년 올라 개학한 첫날.

 선생님은 옆에 앉을 짝꿍을 정해주셨죠. 지금은 한 반에 기껏해야 20명 남짓이지만 한 세대 전만 해도 기본이 60-70명이었습니다. 게다가 왁자지껄 떠들고, 책상 위를 날아다니고 한시라도 가만히 있지 않은 철부지 코흘리개들이었습니다.


 애들이 너무 많아 아직 이름을 다 못 외우신 선생님은 제일 먼저 남학생과 여학생을 짝을 지어 앉게 하셨습니다. 마음에 드는 여학생과 짝이 되면 속으로는 좋아 어쩔 줄 몰라하면서도 겉으로는 부끄러워 얼굴이 벌게지곤 했습니다. 나보다 더 코흘리개 학생과 짝이 되면 입이 툭 튀어나온 채 말도 안 했습니다.   


 짝꿍, 살아오면서 참 많은 짝과 만났다 헤어졌습니다. 학년이 오를 때마다 새로운 짝꿍을 만났고요. 중학교, 고등학교 때 남자들만 득실거렸던 학교에도 짝은 늘 옆에 있었습니다. 붙어 있지는 않아도 수업 시간에 떨어져 함께 졸고, 쉬는 시간에 다시 모여 함께 떠들었던 영혼 같은 단짝도 있었습니다. 도시락은 언제나 같이 먹었고 나름 심각한 인생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인생에 가장 기억에 남는 짝꿍이 되기도 하죠.

 

 대학교에 진학하면 나이도 차이 나고 출신 지역도 다른 새로운 친구들을 대거 만납니다. 다들 성인이라 스스럼없을 것 같고 대학 캠퍼스의 낭만을 함께 즐길 것 같은데 천진난만함이 없어져 그런지 오히려 낯을 더 가립니다. 모여도 마음 맞는 이들끼리 모입니다. 동아리를 해도, 스터디를 해도 어울리는 사람들과 늘 어울립니다. 먹고사는 일이 바빠도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는 짝꿍이 됩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의무적으로 복무한 군대에서는 사회 계급장을 다 떼고 만나죠. 몇 살 차이 나는 나이는 짬밥에 밀립니다. 혈기왕성한 청춘에 기합과 군기로 가득한 단체생활을 합니다. 적응이 안돼 도망치고 싶을 때도 있고 고된 훈련에 이 곳을 벗어날 수는 있을까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럴 때도 어떻게 친해졌는지 모르지만 초코파이를 내미는 짝꿍이 있었고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흐른다는 위로를 건네며 함께 견뎌냈습니다. 불현듯 그리워지는 짝꿍으로 남습니다.


 사회에 나와 연애를 하며 결혼에 골인을 합니다. 그동안 만났던 숱한 짝꿍이 있었지만 지금 내 옆에 있는 인연이 평생 함께 하자고 맹세한 짝꿍이 됩니다. 수줍게 웃고 부끄러워 얼굴을 붉혀도 서로 손잡고 거친 세파를 향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인생의 반려자, 짝꿍과 하나가 됩니다.  




 짝꿍은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말은 아닐 거예요.

 대표적인 짝꿍 하면 떠오르는 게 어떤 것이 있을까요?

 젓가락만큼 잠시라도 떨어져 있지 않는 짝꿍은 없을 거예요. 둘은 늘 붙어 다닙니다. 일할 때도 함께 하고 쉴 때도 같이 있어요. 심지어 씻을 때도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혼자서는 힘을 못 쓰고요. 그렇다고 다른 짝을 지어주면 너무나 어색합니다. 하나가 멈추면 나머지 하나도 일상이 멈추어버립니다.

 생긴 것도 다르고 성격도 전혀 다른 짝꿍이 있어요. 근데 일할 때 보면 서로를 동여매고 끝날 때까지 떨어지지 않죠. 바늘과 실입니다. 누구 하나가 없으면 나머지 하나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가 되어버립니다.  


 음식에도 짝꿍이 있다고는 하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아귀찜이 군침을 돌게 합니다. 매운맛이 혀를 마비시키고 연신 물을 찾게 합니다. 근데 아귀찜에 빠져서는 안 될 짝꿍이 있습니다. 바로 아삭한 콩나물이죠. 콩나물 없는 아귀찜, 상상이 되시나요?

 죽고 싶지만 떡볶이가 먹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떡볶이 하나만 달랑 먹으면 뭔가 허전합니다. 허전함을 달래려 튀김이 튀어 오르고 순대가 따라 나옵니다. 죽고 싶은 생각이 한순간에 사라집니다.


 주룩주룩 비가 내립니다. 창가에 맺히는 빗줄기가 오늘따라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마음이 한구석이 텅 비어있는 듯합니다. 비 오는 날, 괜히 우울해집니다. 내리는 빗소리가 마치 파전을 부치는 소리처럼 들려요. 힘든 하루를 보낸 뒤라 당도 떨어졌겠다, 기분도 뒤숭숭하겠다, 파전이 땡깁니다. 파전하면 막걸리를 빼놓을 수가 없죠.

 농경사회였던 옛날, 비 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 파전을 부처 먹으며 막걸리를 마셨다고 하죠.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통이라는 설도 있어요.


 가족끼리, 친구끼리 모여 이글이글거리는 불판에 삼겹살을 구워요. 고기가 익어가는 빛깔, 타는 냄새. 상상만 해도 예술입니다. 삼겹살 하면 당연히 소주를 떠올립니다. 서민의 애환을 달래주는 대표적인 술, 소주는 삼겹살과 마셔야 제맛이라고 하죠.


 치킨이 가만히 있지를 않습니다. 치킨도 짝꿍을 찾아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치킨이 맥주를 만납니다. 2002년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가 한 골 넣을 때마다 한 손엔 맥주, 다른 손엔 닭다리를 들고 열광을 했습니다. 붉은 옷을 입고요. 이후 치맥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음식 문화 중 하나로 자리 잡았고 우리나라를 외국에 알리는데 효자노릇을 했었죠.   




 그동안 스쳐 지나간 짝꿍들, 사물과 음식에 비하면 지금 옆에 있는 짝꿍은 차원이 다릅니다.

 짝꿍의 연을 맺고 사회에 첫날을 내디뎠던 예비신랑, 예비신부는 어느덧 머리는 희끗희끗, 나이는 지긋한 노부부가 되었습니다.

 깨소금도 쏟아내 보고 온갖 바가지를 긁어대며 아옹다옹하며 살았습니다. 어려움을 버틴 세월이 적지 않을 터인데,  함께 해온 세월만큼 서로를 잘 알 텐데도 허구한 날 옥신각신 다투기 바쁩니다.  


 하늘에 걸린 별을 따다주겠다는 맹세는 뻥친 사기꾼 캐릭터가 되어버렸습니다.

 수줍게 웃으며 바람이 불면 날려갈 듯했던 가냘픈 몸매는 집안을 뒤흔드는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두 겹 세 겹 뱃살 접힌 중년 아줌마로 변신했습니다.

 사랑 고백은 돈타령으로 바뀐 지 오래고, 입만 열면 웬수라고 소리칩니다.

 근데 신기한 건 그렇게 못 잡아먹어 안달하면서도 뭐든지 둘이 함께 한다는 거예요.


 아름다운 노년 하면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있잖아요.

 흔히들 다정히 두 손을 꼭 잡고 서로 그윽한 눈빛을 주고받으며 여유롭게 거니는 커플의 모습 말입니다.

 짝꿍이라고 해서 늘 잘해주고 늘 이쁜 짓만 하고 늘 예쁜 소리만 하고 늘 친근해야 하는, 꼭 그래야만 짝꿍은 아니죠. 현실에서 그런 커플이 얼마나 있을까요?


 모처럼 큰 맘먹고 ‘사랑한다’라고 하면 ’또 어디서 무슨 사고 쳤나?’라고 핀잔 듣고

 멜로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내 사랑아’라고 불렀다가 ’이 웬수야!’라며 구박받아요.

 가끔 들이대기도 하고 이판사판 싸우기도 합니다. 흡사 전쟁을 방불케 하죠. 언제나 스펙터클 합니다. 그러다 화해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든 짝꿍입니다.


바가지 긁으면서도 같이 밥을 먹고

내 인생에 참견하고 토를 달고 때론 태클을 걸면 대부분은 귀찮고 짜증이 나지만

내가 아플 때 제일 먼저, 가장 많이 걱정해주는 사람.

그래도 지난 세월 생각하면 고맙고 든든한 짝꿍입니다.


옆에 있으면 ’ 귀신은 뭐하나, 저 인간 안 잡아가고’ 귀찮아하다가도

막상 없으면 ‘어디 가서 뒤졌나?’ 걱정부터 되는 짝꿍,

티격태격하면서도 늘 같이 있는 모습이 아름답습니다.

웬수 같은 짝꿍, 아름다운 짝꿍, 옆에 두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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