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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02. 2020

내 인생, 다음 장면은?

젖병에서 맞술까지

아장아장 걷다가 뒤뚱뒤뚱 좌우 흔들리다가 꽈당. '으앙~' 울음을 터뜨린다. 얼른 뛰어가 "괜찮아, 괜찮아, 잘했어" 달랬다. 녀석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이지만 혼자 일어서 걷는 과정을 웃으며 지켜본다. 좋았다.


배고파 운다. 기저귀 갈아달라고 울어 제친다. 낮은 포복으로 기어간다. 일어섰다 털썩 엉덩방아 찢고, 한 두 걸음 떼다가 쿵 주저앉는다. 몇 발자국 앞으로 내딛다가 꽈당. '으앙~' 모두 이뻐 죽겠다.

기저귀를 던져버려도, 외래어인지 우리말인지 쉴 새 없이 쫑알거려도, 혼자 쉬~하러 가서 옷에 흠뻑 묻혀와도 이뻐 미치겠다.

시도 때도 없이 씨부리는 옹알이 중에 우리말이 하나 둘 튀어나오면 기뻐 날뛰었다.

이 녀석이 울고, 넘어지고, 떼쓰고, 쉴 새 없이 떠들고, 먹고 싸는 이 모든 게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무럭무럭 자라나는 걸 지켜만 봐도 흐뭇했다.


젖병을 입에 문 채 온 방을 휘젓고 다닌다. 놀이에 흠뻑 빠져 있다. 옆에 있나 없나 흘깃 쳐다보고는 하던 놀이를 계속한다.

놀 때도, 뒤뚱거리며 걸을 때도 젖병은 항상 물고 있다. 녀석은 젖병이 좋은가 보다.

한가로운 저녁, 맥주 캔을 딴다. 녀석이 입에 물고 있는 젖병에 '짠'하며 살짝 부딪힌다. 영문을 몰라 어리벙벙한 모습이 귀여워 웃음이 나온다. 한 모금 넘기며 누가 좀 들으라고 "카~~"  

'카~' 하는 소리에 뭔가 싶어 눈이 말똥말똥, 아빠가 마시고 있는 게 맛있어 보이는지 뚫어져라 쳐다본다. 고사리 같은 손을 내민다. 술이라 안된다며 맥주 캔을 뒤로 뺀다. 녀석은 포기하지 않는다. 달라고 '이잉' 소리를 낸다. 두 손으로 잡기엔 힘이 턱없이 부족하다. 맛만 보게 할까? 맥주를 아이의 입에 조심스레 갖다 댄다. 첫 모금을 넘긴다. 입을 오물거린다. 혀를 날름거리며 오만 인상을 찌푸린다. 속았다는 표정이다. 혼자서 뭐라고 떠드는데 뭔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아듣지 못했다. 좋은 말은 아닌 듯싶었다.

세상에 믿을 인간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처음, 온몸으로 느꼈나 보다.  


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달라는 아들의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난다. '호호' 불어가며 그릇 위에 얹어 준다. 녀석이 지 팔길이만 한 젓가락을 쥐어보려 애쓴다. 서투른 손짓으로 젓가락을 겨우 잡는다. 아빠를 보고 배웠다는 듯 젓가락 한 쌍을 엄지 손가락과 집게손가락에 올린다. 손가락 위에 젓가락 두 짝이 착 달라붙어 움직이지 않는다. 젓가락과 친해지려면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다. 포크로 바꿔준다.

'고기가 있으니 술 한잔 해야지'하며 소주를 시킨다. 저 녀석도 입이라 사이다를 시켜 달란다. 소주 한 잔 따르고 아들에게 사이다를 따라준다. 둘이서 '짠~' 잔을 부딪힌다.

조그만 입에 고기 한 점 오물오물 씹어대는 모습이 귀엽다. 사이다 한 모금 마시고는 "카~" 외쳐댄다. 귀엽다. 이 모습까지는.

맛없는 술을 왜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소주 맛을 모르는 나이, 마실 생각조차 없는 지금이 귀엽다. 아직까지는.  




학교 집 학원 집을 오가는 일과가 바쁘다. 직장 집을 왔다 갔다 하는 일과도 마찬가지다. 아침에 잠깐 얼굴을 보며 생사확인을 한다. 밤늦게 집에서 마주치며 오늘도 무사 귀환을 알린다.  

아장아장 걸으며 부모를 졸졸 따르던 귀여움은 성큼성큼 제 방으로 휭 하니 들어가는 씩씩함으로 변했다. 귀여운 맛은 온데간데없고 의젓함을 거쳐 징그러움이 느껴진다.

놀이에 흠뻑 빠져 놀던 모습은 게임에 목숨 거는 열정으로 바뀌었다.   

쫑알쫑알 대던 청명한 목소리는 중저음의 바리톤이 되고, 고사리 같던 손은 솥뚜껑으로 변해간다.

키도 자라고 몸집도 커졌다. 덩치가 커질수록 아빠와의 대화는 급속히 줄어든다. 눈빛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한다. 질풍노도 시기에 사고 안치고 조용히 있어주는 걸로 위로 삼는다.

그나마 몇 마디 목소리라도 듣고 싶으면 방법은 한 가지.

'옛다. 사고 싶은 거 사라.' 엄마 몰래 집어 주는 용돈에 '씩~' 하니 웃으며 "고맙습니다" 한마디를 건진다.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아들 모습에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

"언제 이렇게 컸지?"

나보다 더 큰 나를 닮은 녀석을 보기만 해도 신기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세월의 빠름을 실감한다.

대학생이 되었다. 고생이 많았다. 바라마지 않는 최상은 아니더라도 긴긴 세월 고생한 노력은 인정해주고 싶다.

삼겹살에 소주를 시킨다. 혹시 나도 한 잔 주지 않을까 하는 애절한 눈빛이 보인다. 첫 잔을 따라준다. 마실까 말까 눈치를 본다. 망설이는 척 하기는.

"아빠와 있는데 뭔 상관이냐, 마셔라. 괜찮다."며 잔을 권한다.

잠시 망설임은 원샷 한 번으로 날려버린다.

아빠에게도 한 잔 따르며 녀석도 한 잔 내민다. 마시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한두 번 마셔 본 솜씨가 아닌 듯싶다.   


엊그제 젖병에 잔을 부딪히며 깔깔 웃었던 것 같은데.

얼마 전까지 사이다 한 잔에 희희낙락 거렸던 것 같은데.

이제 소주를 앞에 두고 맞술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세월이 참 빠르다' 같은 상투적인 감상을 자주 느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 다른 걸로 느끼겠지.




내 인생의 다음 장면은 무엇일까?

이 녀석이 직장을 구하고 결혼을 하고 손주를 낳을까? 아니면 자유가 좋다는 이유로 혼자 살까? 살기 팍팍해서 N포 세대가 되어 내 옆에 죽치고 붙어 있는 건 아닐까?

나는 어떤 모습일까? 직장에는 더 붙어 있을 수 있을까? 녀석이 군대 갔다 오고 대학 졸업하고 취직할 때까지는 뒷바라지를 해야 할 텐데. 적어도 그때까지는 일을 놓으면 안 되는 형편인데. 만약 직장 그만두고 일을 못 구하면 애는 어떻게 되나? 식구들은? 아무 장면이 아무렇게나 마구 떠오른다. 괜한 걱정에 마음이 어지럽다.


A.I가 갈수록 진화하여 인간의 직업을 대신한다고 하는데 그 때문에 이 녀석이 직장을 구하지 못하면 어쩌지?

경제가 어렵다고 난리인데, 다들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인데 녀석이 들어갈 곳은 있을까?

'조물주 위에 건물주'라고 하던데 '흙 수저로 태어나 이 모양이다'라며 아비 원망을 하지 않을까?

캥거루족이 되어 독립을 안 하면 내가 뒤치덕 거리를 언제까지 해야 하나?

요즘 젊은 애들은 삼포 세대를 넘어 오포, 칠포, 구포 세대라고 하던데 손주는커녕 결혼은 하려고 할까?

욜로족이니 소확행이니 하며 혼자만의 삶을 누리려 하지 않을까?   


다음 장면은 도통 감을 못 잡겠다.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살고 있을지...

젖병에서 사이다, 그리고 맞술 하는 오늘까지 잘 버텨 왔다. 다음 장면은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서 불안하다. 걱정된다.

하긴. 다음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 알 수 있다면 지금껏 이렇게 버티며 살았을까? 돗자리 펴고 떼돈 벌어 건물 하나 올렸겠지. 고민한다고 알 수 있는 게 아니라면 여기서 그만. 무탈하게 살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할 따름이다.

언제가 될지 몰라도 손주 녀석과 젖병에서 맞술 할 그 날까지 무탈하기만을 한번 더 바랄 뿐이다. 이 꿈도 너무 크지 않은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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