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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Nov 01. 2020

밋밋한 달, 11월에는


한 해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해를 맞이할 무렵이 되면 다들 새해 소망을 떠올립니다. 올해 아쉬웠던 점은 무엇인지 반성도 하고 내년은 올해보다는 나은 한 해가 되기를 소원하죠.

그리고 챙겨 보는 게 있습니다. 올해는 노는 날이 며칠이나 될까? 공휴일을 세어 보곤 하죠.


2020년 올해 법정 공휴일은 총 67일이었습니다. 1월에는 신정과 설날이 있었고요, 3월에는 3.1절, 4월은 부처님 오신 날. 5월과 6월은 말할 필요 없죠. 변함없는 어린이날과 현충일. 7월은 공휴일이 없었네요. 8월은 광복절. 9월과 10월에는 추석 연휴가 무려 5일이나 있었습니다. 게다가 10월은 개천절에 한글날까지, 노는 날이 많아 조금은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12월에는 크리스마스가 있죠.

2월은 설날이 들어서지 않더라도 원래 짧은 달이니 공휴일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리 아쉽지는 않습니다.

7월은 제헌절이 법정공휴일에서 제외되어 노는 날이 없지만 예년 같으면 방학에, 여름휴가철이니 공휴일 이상입니다.

공휴일이 단 하나도 없는 달, 해가 바뀌어도 공휴일을 가질 수 없는 달이 있어요. 오늘부터 시작된 11월입니다.




11월. 이래저래 구박만 받는 달이 아닌가 싶어요.

달력상 9월, 10월, 11월은 엄연히 가을로 분류되지만 11월은 가을이라도 주목을 덜 받습니다. 가을 같지 않다고 해야 되나? 그렇다고 겨울도 아니고요.

11월 7-8일에 입동(立冬)이 들지만 아직 추위라고 하기엔 좀 이른 감이 있습니다. 춥기라도 하면 때 이른 추위라고 원성만 듣습니다. 22-23일에 소설(小雪)이 들어 이를 전후로 찬 기운이 돈다고 하죠. 그러니 가을이라고 하기엔 절기상 겨울로 들었고, 12월과 1월이 너무 막강해서 겨울이라 부르기엔 한참 모자란 듯싶습니다.


11월은 등장하면서부터 기가 죽어요.

앞선 10월, 사람들이 열광하는 달이죠. 특히 올해는 황금 같은 추석 연휴가 5일, 길게는 1주일 가까이 있어 연휴절이라 부르며 좋아했습니다. 노는 날도 많은 데다 가을은 절정으로 달립니다.

놀러 다니기 딱 좋은 달입니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든 단풍으로 아름답다는 말로도 모자라고요, 하늘은 높고 맑아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가슴을 쫙 펴게 합니다.

10월에는 사람들이 노래도 많이 불러요.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부르면 꿀꿀한 내 인생도 잠시나마 멋져 보이기도 하고요. 10월의 마지막 날에는 '잊혀진 계절'을 목놓아 불러 봅니다.


11월을 이어 올 12월은 그야말로 범접 불가한 달입니다. 카리스마가 장난이 아니죠.

11월이 나가자마자 거리엔 온통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집니다. 구세군의 종소리를 들으며 이웃과 훈훈한 정을 나누고요. 올 한 해를 마감하는 아쉬움을 섣달 그믐날에 카운트다운과 함께 새해의 희망과 맞바꿉니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인사를 주고받는 달이기도 하죠. '근하신년' 그리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외치면서요.

노는 날도 하나 없는 달이 하필이면 10월과 12월에 끼여 있어 지금껏 기 한번 제대로 펴 본 적이 없습니다. 노래도, 축하도 없으니 밋밋하기 그지없습니다. 기껏해야 자본주의 상술에 의해 하나 건진 11일에 긴 막대 과자를 쪼개 먹는 게 전부입니다.


그런 11월도 관심받는 날이 있어요. 수능입니다.

예년에 비하면 관심도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이맘때가 되면 전국에 있는 사찰, 교회, 성당에는 수능 합격을 기원하는 기도가 끊이질 않습니다. 엿과 떡을 건네주며 합격을 염원하고 1년 농사, 어쩌면 운명을 좌우할 문턱에서 그저 잘 되기만을 빌고 또 빕니다.

춥지 않던 기온도 온 국민이 바짝 긴장해서 그런지 때아닌 수능 한파가 몰아치기도 하죠.

수능이 끝나면 어른으로 들어갈 채비가 끝이 납니다. 수능보다 더한 책임감을 짊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이제부터 뼈저리게 실감할 텐데 아직은 전혀 모르죠. 그저 청춘의 자유를 만끽하는데 여념이 없습니다.




10월의 여운이 가시지 전이지만 11월은 조용히 자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올해는 수능마저 12월로 연기되어 주목받는 큰일도 없는 11월입니다.

11월도 우리가 살아가야 하는 달입니다. 소중한 하루하루가 똑같이 주어진 달이고요.

절정의 가을이 다 갔다고, 공휴일이 하나도 없다고 아쉬워 말고요. 다음 달이면 한 해를 마감하며 느낄 아쉬움을 11월에 먼저 느껴 보면 어떨까 싶어요.

12월이 되어서야 올해 뭘 못했느니, 뭐가 빠졌느니 후회하지 말고 11월에 미리 생각해서 지금이라도 부족한 점을 채우면 보다 의미 있는 달이 되지 않을까요?

12월이 오기 전, 밋밋한 이 달에 뜻깊은 추억도 만들고, 후회의 여지가 있는 일은 제대로 마무리하면 11월도 멋진 달이 될 것 같은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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