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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감의 기술 Oct 08. 2020

모으고 버리기보다는 좀 비워야 할 텐데

 어릴 때부터 모으라는 교육을 받고 자랐습니다.

 물 한 방울도 아끼고, 전기도 아껴 쓰고, 쌀 한 톨도 함부로 버리지 말라고 배웠습니다. 어른들은 누구나 할 것 없이 용돈은 꼭 필요한 곳에만 쓰고 나머지는 저금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속담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죠. 돼지 저금통에 동전을 채우고 통장을 만드는 저축 습관도 길렀습니다.


 어른이 되어 직장을 다녔습니다. 첫 월급을 받아 부모님께 빨간 속옷을 사드렸습니다. 그리고는 하시는 말씀은 ‘돈을 아끼고 저축하라’였습니다. 1천만 원부터 모으고 1억, 10억을 모아 부자가 되라고 합니다. 종잣돈을 마련해야 마중물 역할을 하여 부자가 되는 길로 들어설 수 있다고 하시면서요. 그러려면 친구도 덜 만나고, 술도 덜 마시며,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모아 하루라도 빨리 목돈을 만들어야 한다며 자나 깨나 저축이었습니다.


 사람은 버리기보다 모으는 것을 좋아합니다.

 내 손에 들어온 동전 한 닢, 물건 하나도 내 허락 없이 사라지는 건 참을 수 없습니다.

 어릴 때부터 모으라는 교육을 받은 영향도 있겠지만 가져야만 무시당하지 않는 현실을 뼈저리게 실감한 탓도 있습니다.


공수래공수거(空手來 空手去)라며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가는 인생이니 욕심을 부리지 마라고 합니다.

욕심이 지나치면 화를 부른다며 겁을 주기도 합니다.

사람 마음이 갈 때는 빈손으로 가더라도 지금은 두 손 가득 쥐고 싶습니다.

화가 올 때 오더라도 일단은 내 것을 꼭 지키고 싶고 하나라도 더 가지기를 원합니다.




 사람들은 모으는 것을 좋아하다 보면 처지 곤란할 때가 닥칩니다.

 어릴 때 갖고 놀던 자동차와 비행기, 총, 인형, 로봇 장난감이 있었습니다. 온갖 떼를 쓰며 겨우 얻은 장난감을 애지중지하며 잘 때도 꼭 껴안고 잡니다.

 어느 날 방 한구석에 바퀴가 없는 자동차, 날개 꺾인 비행기, 허리는 돌아가고 눈깔 하나 없는 인형, 방아쇠를 잃은 총, 팔이 빠진 로봇 장난감이 바구니 속에 서로 뒤엉켜 방치되어 있습니다. 갖고 놀기엔 머리가 컸고 버리자니 아까워 쌓아만 둡니다.

 딱지 치기를 이겨 한가득 쌓여있는 딱지를 보며 뿌듯했습니다. 우표를 수집하고 카세트테이프를 모으고 LP판을 사는 취미도 있었습니다. 연예인들의 브로마이드를 사서 벽에 하나씩 걸 때마다 흐뭇한 미소를 짓습니다.

 열과 성을 다해 모으고 모았는데, 지금은 온데간데없습니다. 추억의 한 컷으로 기억에만 남았을 뿐입니다.


 땀 흘려 노는 건 시키지 않아도 잘하지만 매일매일 땀 흘려 일하기엔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돈이라도 많이 모으면 이 고생을 안 할 것 같아 애쓰지만 모이자마자 나갈 일이 생깁니다.

 종잣돈이 모이면 기쁨도 잠시, 귀신같이 그 돈이 꼭 필요한 사연이 나를 찾아옵니다.

 모아도 모아도 제자리에서 맴도는 것 같아 의욕이 떨어집니다. 기분이 다운되어 있으면 지름신이 강림하십니다. 기분 전환에 지름신만 한 쾌감도 없습니다.  


 지름신이 지르는 대로 하나 둘 사모은 물건이 집안 곳곳에 자리를 잡습니다.

 1년에 한 번 쓸까 말까 한 물건은 그나마 봐줄 만합니다. 몇 년 동안 어디 있었는지도 모르는 물건들, 이런 게 있었나 싶은 기구들, 샀던 기억마저 가물가물한 잡동사니들까지.

 티끌모아 태산을 이루기는 했는데 티끌은 여전히 티끌입니다. 이 또한 막상 버리자니 언젠가 쓸 것 같아 망설입니다. 한때 바쳤던 정성과 열정, 관심이 떠올라 떠나보내지를 못합니다.  


마음을 비우라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왔지만 마음속에 자리 잡은 욕심은 꿈쩍도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비우라는 건지, 뭘 내려놓으라는 건지 잘 모를 때가 있습니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녀석이 단순히 욕심인지, 자기만족인지 분간이 안될 때도 있고요.

그렇다고 나만 마음을 비우면 되는가?라고 생각하면 그리 썩 내키지 않습니다.   




저마다의 물건에 사연이 깃들고 추억이 담겨 있어 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언젠가 다시 쓰임이 있을 것 같은 기대가 결심을 주저하게 합니다.

버리기 전의 망설임도 과감하게 버리고 나면 홀가분합니다.

비좁았던 집이 넓어 보이고 사나웠던 정신도 차분해집니다.

오히려 ‘진작 버릴 걸' 하는 후회가 듭니다.


모을 때도 후회, 버리기 전에 망설임, 버리고 나도 후회, 버리나 안 버리나 고민.

이럴 바엔 모으고 버리기 전에 비우는 방법부터 배워야 할 것 같습니다.

비우기가 말처럼 쉽지 않지만, 일단 모으고 버리기 전에 생각부터 해야겠습니다.

"모으고 버리기보다는 좀 비워야 할 텐데.."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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